정직하라, 성실하라. 그리고 가치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실천하라.
좋은 말이다. 하지만, 추상적이어서 우리는 이런 말을 실천하고자 할 때에 개념과 실천 사이의 큰 간격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때, ‘본보기’야말로 가장 큰 용기를 안겨 준다. 정직의 효용이 이렇게나 크다는 사실을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을 때, ‘정직이라니? 그건 시대착오적인 가치야’라고 빈정대던 냉소적인 시선을 거두게 될 것이다. 어두운 시대에 소망을 불어넣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촛불과 같은 가치들을 피워내는 일이다. 피워내는 방법은 자신의 삶에서 가치를 실천함으로, 그러한 가치들이 삶을 어떻게 바꿔가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삶이야말로 진정으로 강력한 메시지다.

좋은 마사지를 받아 본 사람이 누군가에게 시원한 마사지를 선사할 수 있듯이,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누군가를 현명하게 사랑할 수 있다. 사랑하기를 실천하려 할 때에 부모님의 내리사랑을 떠올리면 실천에 대한 힌트를 얻는다. 나는 누군가를 섬기고자 할 때마다, 사랑하고자 할 때마다 두 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하나는 군에 입대하던 날, 할머니가 보여주신 사랑이다. 2003년 5월 2일, 이 날은 내가 만 26살의 늦은 나이에 입대했던 잊지 못할 날이다. 나의 늦은 입대를 아쉬워하던 친구들과 함께 시작된 술자리는 입대하는 당일날 새벽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집에 들어가는 중에 날이 새었다. 밤새 기다렸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참으로 죄송스러웠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와야 했으니 할머니가 화를 내실 것 같았다. 다른 날도 아니고, 입대하는 날이 아니던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뜬눈으로 손자를 기다리신 것 같았다. 죄송한 마음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사랑할수록 걱정이 되고, 걱정이 될수록 분노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하지만, 그 날은 특별한 날이었고, 할머니께서는 손자와의 오랜 이별을 즐겁게 맞고 싶으신 듯했다. 나는 들어와서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샤워하고 옷을 입었다. 할머니께서는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셨다.

 

군입대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안절부절 못하던 심정을 감추고자 일부러 태연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할머니는 나의 초조함을 눈치 채셨을 것이다. 가져갈 게 뭐 있겠나. 집에 들어온 지 30여분 만에 입대할 준비를 마쳤다. 삼촌과 숙모, 그리고 할머니가 현관문까지 따라 나오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꿋꿋하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대문을 나와 골목어귀까지 나오셨다. 대문 앞에서 할머니를 안고 “걱정하지 마세요. 손자 잘 다녀올테니 건강히 잘 계세요.”라고 인사를 하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잘못하면 엉엉 울 것 만 같다. 할머니 손을 한 번 꼬옥 잡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골목을 돌아서자마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밤새 기다리고 나서도 손자의 떠나는 마음을 생각해 따뜻하게 맞아주신 할머니의 사랑에 너무나도 가슴이 절절했다. 군에 있는 동안 할머니는 여자 친구보다 더 자주 내게 편지를 쓰셨다. 할머니에게서, 언제나 오래참고 기다리면서도 온유한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할머니로 인하여 나는 기다림의 미덕을 조금씩 몸에 익힐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부대에서 만난 신용백 목사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모습이다. 군생활 중 맞이한 크리스마스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가족과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친구들과 추억을 만들기를 바라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부대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오전 성탄예배로 시작되었다. 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은 나에게 군용 백에다가 쵸코파이와 차를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추운 날에 경계 근무를 서는 장병들에게 위문 차를 돌리러 가자고 하신 게다. 그렇게 출발하여 3시간 가까이 관악산 정상을 돌며 초소마다 근무를 서는 초병들에게 간식과 따뜻한 차를 건넸다. 그리고 그들을 꼬옥 포옹하시며 그들의 건강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하셨다. 어떤 장병은 눈가에 눈물이 맺힐 만큼 감격스러워했다. 목사님을 따라다니며 나 역시 사랑의 차 전령이 되어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었다. 목사님은 누군가가 가장 외로움을 느낄만한 때에 당신의 편안함을 뒤로 한 채 그들의 외로움을 어루만지신 것이다.

 
한번은 목사님과 함께 목욕탕에 간 일이 있는데, 목사님께서 너무나 정성스럽게 등을 밀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맛있는 간식과 영화까지 보여주신 목사님의 사랑에 또 한 번 감동을 하였다. 목사님께 배운 사랑은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을 기꺼이 주는 나눔과 베풂의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상대방의 기대 수준을 적당히 만족시켜주는 베풂이 아니라,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사랑 말이다.

할머니와 목사님의 사랑을 경험한 이후로, 누군가를 섬길 때나 도울 때에 나는 이전보다 더 깊은 마음으로 섬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분들이 보여 주신 사랑의 마음 근처에도 가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 분들을 만남으로 인하여 나는 이전보다 좋은 사람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존재와 존재가 만나면 변화가 일어난다. 사랑이 가득한 존재는 분명 다른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보다. 이렇듯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는 애매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구체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세상에 사랑이 가득하다는 명제를 몸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리하여 결국 상대방을 사랑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때, 상처와 배신으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녹아내린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정말 그런 힘이 있다. 영화 <패치 아담스>에는 주인공이 보여준 사랑의 진정성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 영화가 실화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정직하고 성실하라는 말에 구체적인 모습을 입히고 본을 보이며 가르쳐 준 사람이 안철수다. 정직과 성실이라는 고리타분한 가치를 지키는 것이 정말 인생에 도움이 될까? 비즈니스에는 또 어떨까? 라는 회의감을 싹둑 잘라내고, 지킬 만한 최고의 가치로 복원시킨 장본인이 안철수다. 우리는 그로부터 용기를 얻는다. 용기는 전염된다. 옆의 사람이 일어서면 따라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지고의 가치를 실천하여 의미 있는 인생을 살면, 우리도 함께 그 가치의 효용을 믿고 따를 만한 용기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사회적 자본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인물이 많아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지향적인 삶을 꿈꾸게 될 것이고,그들로 인하여 세상은 이전보다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삶이야말로 강력한 가르침의 자원이다. 안철수의 책이 울림이 있고, 감동이 있는 까닭은 그의 삶이 그의 가치와 원칙을 고스란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탁월한 강사를 꿈꾸는 내가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훌륭한 강연이 만들어지는 곳은 강사가 서게 되는 강단이 아니라, 삶의 현장이다. 삶의 현장에서 강의의 수준이 결정된다. 탁월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강연장에서 그저 자신의 얘기를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것으로도 충분한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왔을 경우에 말이다. 탁월한 삶, 이것이 강사를 직업으로 가진 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다. 그렇다면, 다른 책을 뒤적여 볼 필요도 없다. 책은 강의를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강연을 할 만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읽는 것이리라. 진정한 강연은 삶의 문제이다. 우리의 강연은 두 세 시간만 진행되지만, 우리의 삶은 한 주일 내내 강연하기 때문이다. 책을 쓰는 저자와 강연을 하는 강사의 임무는 자기의 삶으로 강연의 각주를 다는 것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체적인 삶으로 보여준 안철수의 힘!
자신이 평소에 했던 말들을 자신의 인생으로 증명하고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을 따르는 추종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처럼 가치와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면 시작이다!” 가치를 추구한 삶은 분명 힘들겠지만, 불행하진 않으리라는 안철수의 말에 위로와 신뢰와 격려를 동시에 얻는다. 그리고, 최근 나의 가치를 져버린 행동들을 곱씹으며 다시 한 번 전의를 불태워본다.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지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 생각한다.”
가치를 지키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는 안철수의 인생관에 깊이 공감하며 내 삶에 가치지향적 열심을 창조하기를 다짐해 본다.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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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르텔 2013.09.30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강연은 삶의 각주."
    이 글은 2007년에 쓰였군요.
    와! 오늘은 아침과 저녁에 클릭한 글들이 제 감탄을 자아내는 군요.
    아침엔 제가 잘 찾은 것에 먼저 감탄하고 좋은 글에 감탄했고 ^^
    저녁엔 글이 좋아 감탄합니다.

    사실 읽으며 마음이 뭉클뭉클.(잠깐만요. 저 눈물 좀 닦고 올게요.ㅠㅠ/ ^^)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장이라고 하죠.
    오래참고, 온유하고,,,,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고...
    할머니의 사랑을 읽으며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랑의 결실이 어떠하든지, 정말 사랑을 잘 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목사님의 사랑 실천도 마음이 따뜻해지며, 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바람 가졌고요. 원칙을 강의할 때 안철수 영상을 빼곤 했는데, 다시 넣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 더 좋은 사례가 있다면 적절히 배치해도 좋겠어요.

    컬럼의 제목 좋네요. "너의 삶으로 승부하라!"
    도전 받고 갑니다. 감사해요. 보보님 ^^

    • 보보 2013.09.30 10:2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의도대로라면, "삶은 강연의 각주"가 되어야겠지요. ^^
      강연에서 이해안 되는 것이 있으면 내 삶을 보시오, 를 말했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러시면 안 될 테고 앞으로 차차 그리 되고 싶네요.

      할머니에게 요즘은 좀 불효하고 있네요.
      연락을 잘 못 드려서요. 저도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