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 266

손택과 조르바 만큼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구나.’ 마음이 괴롭지는 않으니 자책은 아니다. 얼마간의 부끄러움을 동반한 현실 인식이다. 겸허함도 아니다. 오만과 겸손에 대한 인식조차 없다. 그보다는 이미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앞으로 알고 싶은 것들에만 시선을 둠에서 생기는 지적 열망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의 눈에는 나아갈 길만 보이는 법! 문득 이렇게 모르는데 강연을 하며 살아가는 삶의 관용이 고마워진다. (누군가에게 속삭이고 싶다. 저기요, 강사들의 얄팍한 지성을 주의하세요! 예외는 아주 드물 거예요.) 물론 내게도 열정이란 게 있어서 오랫동안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왔고, 꾸준히 글을 썼다. 공부한 내용을 긴 글로 정리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내게 남은 것은 몇 가지의 ..

어떤 날은 3분이면 족하다

아침에 신문을 들고 오는 시간은 3~4분이다. 빈 손으로 나간다. 핸드폰도 필요치 않다. 한 시간 외출에도 핸드폰을 두고 가기도 하니, 잠깐의 외출이야! 책을 들고가는 일도 거의 없다. 시간이라면 찰나까지 아끼고 싶긴 해도 틈새 시간에 할 일들은 많다. 잠시 멍 때리기, 체조하기, 콧노래 부르기, 아무도 몰래 춤 추기, 하루 일정 돌아보기 등.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린다고 해도 괜찮다. 스트레칭을 길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오가는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웬일인지 오늘은 책을 들고 나갔다. 조셉 캠벨의 산문집 『신화와 인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무렇게나 펼쳐 한 문단을 읽었다. "우리가 과학적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 항상 ..

밤과 낮의 책읽기

어느 일요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었다. 전날 밤, 침대 맡에 미리 놓아두었던 책이었다. 책 선택은 즉흥적이었다. 계속 읽어오던 책이 아니었고 수개월 전에 몇 편의 에세이를 골라 읽긴 했던 산문집이다. 요즘의 독서테마와 연결되지도 않았고, 계획된 강연과도 연관되지도 않았다. 한 마디로 지금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었다. 삶의 소소한 습관이 지적 생활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친다. 최소한 내게는 그렇다. 그것도 막강한 영향이다. 이 책을 읽는 바람에 휴일 아침 시간이 나의 학창시절 회상과 한 작가의 젊은 시절을 정리하는 일로 채워졌다. 눈을 떠서 읽은 글이 헤르만 헤세가 1923년에 쓴 ‘자전적인 글’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였던 것. 사실 어제 저녁만 해도 이튿날 오전 시간을 이렇게 보내리라고는 생각지도 ..

훌륭한 책만을 읽어야겠다!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주머니 속의 돈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을 벌지 말자는 뜻도 아니고, 돈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돈을 버는 활동만큼이나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살뜰한 관리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섣불리 말하기 전에 주어진 시간을 살뜰히 경영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인지상정은 어쩔 수 없다. ‘읽을 책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 말이다. 24시간을 들여다보면 낭비하는 시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낭비의 틈을 다 메꾼다고 해도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인생의 필멸성과 시간의 유한함이 삶의 본질이니까. 결국 아쉬움을 줄여주는 것은 ‘욕망의 우선순위’와 ‘살뜰한 시간 관리’에 대한 지혜로운 실천..

읽었는데도 몽땅 잊어버렸다

어느 휴일 오후, 느긋한 시간이었다. 양평 서재의 책들을 만지작거리며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다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를 발견했다. '쿤데라의 책이 여기에 있었구나.' 이 책을 찾았던 것도 아닌데, 반가웠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와 같은 제목이지만, 서로 다른 의미의 단어라는 사실을, 책 뒤표지를 보고야 알았다. 쥐스킨트 책은 화장품의 하나인 향수(Perfume)였고, 쿤데라 책은 그리워하는 마음의 향수(Nostalgia)였다. ‘쥐스킨트의 『향수』는 읽었으니, 언젠가 밀란 쿤데라의 『향수』도 읽어야지’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면서 뒤표지의 글을 읽었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이다. 괴로움은 '알고스'이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탤지어'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는 독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책만큼은 읽으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매년 독서 목록이 쌓여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수상자의 작품을 다 읽을 수도, 읽을 필요도 없지만) 수상자들이 100명을 넘어선 데다 다작하는 작가도 많다. 반면 나는 1인 독서가이고, 읽는 속도도 느려 터졌다. 이것은 자기비하나 체념이 아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독서 목록이 쌓여가는 원인은 또 있다. 나의 문학 사랑이 스스로 기대하는 만큼 깊지 않을 가능성!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문학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문학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문학을 제외하고서도 명저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문학만을 사랑하기에는 독서 욕심이 너무 많다. 나의 문학 사랑의 깊이 역시 현실 인식이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발견한 것

고대 그리스 세계를 조금은 안다. 머릿속에는 수세기에 걸친 고대 그리스의 역사와 황금빛 아테네의 지적 유산들을 꿰어 찬 지식 꾸러미가 있다. 최근 수년 동안 호메로스와 비극 작가(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읽었다. 플라톤의 대화편과 헤로도토스의 『역사』도 어설프게나마 공부했다. 고대 그리스는 내 독서 인생의 중요한 경유지다. (어쩌면 최종 목적지나 지적 고향이 될는지도….) 아테네 여행을 하다 보니, 첫 문장을 다시 써야겠다. “고대 그리스를 조금은 안다고 착각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모른 채로 그리스에 왔음을 여행 둘째 날부터 절감했다. 헬라어는 알파벳조차 몰랐고, 굿모닝에 해당하는 아침 인사 ‘칼리메라’조차 이곳에 와서야 외웠다. 지역어를 모르고 여행지에 관한 지식이 없어도 여행은 ..

나는 왜 책을 읽는가

부제 : 접붙임을 위한 독서 나에게 독서란, 이해되지 못했는데도 머리를 굴리기 싫어서 계속 책장을 넘기거나 또는 주의가 산만해져 의식하지 못한 채로 몇 줄을 눈으로만 읽었는데도, 무언가 노력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기만적 행위가 아니다. 독서를 진지하게 대한다고 해서, 반드시 마지막 장까지 끝내야 하는 의무도 아니다. 독서가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한 성취는 더더욱 아니다. 삶은 때때로 고되고 힘겹다. 그러니 자신만의 유희를 창조하면 좋다. 내게 독서는 즐거운 유희다. 또한 독서는 지적 생활이다.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하다. 지혜는 책 속에 거주한다. 나는 지혜를 찾고 싶을 때마다 책을 펼쳐 시간을 투자한다. 독서는 실용적인 유익도 제공한다. 자녀를 낳았지만 교육이 걱정인 이들에게, 리더가 되었지..

규율이 빚어낸 자유의 기쁨

1. '오예~! 기쁨이 몰려온다. 나는 자유다. 의무를 완수했을 때의 이 기쁨! 규율이 빚어내는 자유의 이 달콤함!' 나는 책 구입의 자유를 얻었다. 거저 주어진 자유가 아니기에 기쁨이 진했다. 9월 2일 오전, 카뮈의 『이방인』 서평을 쓰고 난 후,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낸 황홀경을 누렸다. 최선의 성실함으로 보낸 날들 후에 만끽하는 휴가처럼, 혹독한 훈련 뒤에 맛보는 휴식 시간처럼, 짜릿한 성취감과 달콤한 자유를 맛보았다. 2.한 달 동안 여섯 편의 서평을 썼다. 지난 달에 구입했던 책값 6만원에 값하는 독서적립금을 모두 쌓았다. 이로써 새로운 책을 구입할 자격을 얻었다. 기쁨이다. 잠시 읽은 책들을 돌아본다. 문학을 읽는 즐거움이 컸다. 전영애 교수님을 (비록 책을 통해서지만) 만난 울림도 컸다...

칭찬은 사람을 당황스럽게 한다

-『어떻게 의욕을 끌어낼 것인가』를 읽고 하이디 그랜트 할버슨 / 토리 히긴스, 한국경제신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캔 블랜차드의 책 제목이다. (물론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문장 끝에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를 붙였으리라.) 고래는 차치하고, 칭찬은 정말 사람을 춤추게 할까? 대다수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칭찬이 모든 사람들을 들뜨게 하지는 못한다. 물론 사람의 내면에는 인정 욕구가 존재하고 많은 이들이 칭찬에 행복감과 에너지를 얻지만, 누구나 칭찬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칭찬을 받으면 자기 소유가 아닌 물건을 받은 마냥 어색해하고 당황해한다. 심지어 칭찬의 내용을 믿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동기를 부여받는 이들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든다. 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