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읽었던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나요." 책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에서 종종 듣게 되는 하소연이다. 독서와 기억의 관계는 복잡하고 모호하다. "책을 꼼꼼히 읽어야 합니다"라고 처방한다면 독서 선생으로서의 직무 유기거나 독서라는 행위를 신중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표지다. 독서 후의 허접한 기억을 설렁설렁 읽은 탓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읽은 경우에도 책의 내용을 새하얗게 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다행하게도(?) 우리의 기억력만 시시한 건 아니다.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의 대표 주자인 몽테뉴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년 전에 꼼꼼히 읽고 주까지 이리저리 달아놓은 책들을 마치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최신 저작인양 다시 손에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 기억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