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 266

카프카다운 이야기 두 편

20세기를 빛낸 작가 목록은 길 테지만, 20세기다운 작가라고 제한하면 목록은 짧아진다. 토마스 만이나 존 스타인벡처럼 리얼리즘이 빛나는 소설은 19세기에도 존재했으니까. 반면 제임스 조이스나 마르셀 프루스트처럼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며 쓴 소설이나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처럼 시대의 불안을 복합적인 알레고리로 포착한 시는 20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작품이었다. 카프카는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20세기를 빛냈으면서도 20세기적 특징을 보여주는 작가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네.” 카프카가 1904년 문학 친구 오스카 폴라크(Oskar Pollak)에게 보낸 편지에서 문학에 대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문학적 이상을 실현했다. 무턱대고 단정한 것은 ..

칸트의 식사 시간은 길다

“칸트는 오후 1시에 그가 초대한 손님을 맞았습니다. 초대받은 손님들은 식당으로 안내되었는데 식당에서는 평균 4시까지, 손님이 많은 때는 6시까지도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뒤 약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합니다. 처음에는 ‘철학자의 길’을 산책하다가 아무데고 앉아 사색을 하고 때로는 중요한 착상을 수첩에 적기도 했습니다. 산책은 항상 혼자 했습니다. 산책한 후 나머지 시간을 독서로 보냈는데 그 시간에 또 친구가 찾아오면 그 친구랑 즐겁게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칸트는 정확히 10시에 취침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칸트의 제자 제자 야하만의 전언인데, 칼같이 정확하게 생활했던 칸트에게도 지적 교류를 위해서는 융통성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칸트는 3시간 동안이나 식사를 했다. 통상적으로 세 시간,..

나는 왜 공부하는가

1.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를 많이 하는 요즘이다. 천성이 치열하지 못해 매일의 공부량은 들쑥날쑥하다. 익힌 것도 있지만, 여전히 지성에 목마르다. 깊이 알고 싶고 제대로 알고 싶다. 본격적인 공부는 이제부터인지 모른다. 지금까지는 서양철학사의 얼개와 문예사조의 흐름을 잡은 공부였다. 지성사의 맥락을 잡은 것만으로도, 공부 갈피를 잡고 통합적 관점을 취했다는 점에서 유익했지만, 앞으로는 그 유익을 더욱 절절히 느낄 것 같다. 새롭게 배운 지식을 정돈하고 정리할 지식 아카이브를 만들어 둔 셈이니까. 지적 아카이브를 세우는 일은 3년 정도 걸렸다. 그리스 - 로마 - 영국 - 미국 - 이스라엘 다섯 나라를 중심으로 서양사의 거시적 흐름을 잡았고, 역사적 명장면과 핵심인물을 중심으로 얼개를 세웠다. 연표와 지..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20년 가까이 적지 않은 책을 읽어왔다. ‘앞으로 몇 권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인생의 유한함에서 기인한 자조적 질문이 아니다. 독서에 할애한 시간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싶은 열망에서 온, 정열의 질문이다. 하지만 지혜롭지 않은 질문이다. 몇 권을 읽느냐보다 무엇을 읽느냐가 중요하고, 읽은 것들을 얼마만큼 살아내느냐가 성장의 관건일 테니까. 무엇을 읽을 것인가? 다시 말해, 한 개인의 조화로운 성장을 위해 어떤 텍스트를 읽어야 할까? 이 질문으로 한동안 고민했다. 세 가지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는 일차적 결론을 얻었다. 주체적 텍스트, 인문적 텍스트, 시대적 텍스트가 그것인데, 자기 삶의 발전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둔 이들이라면 세 가지 텍스트가 모두 중요하다. 주체적 텍스트는 세상 ..

균형과 깊이를 갖춘 비평가

저는 요네하라 마리의 를 읽고서, “설명하거나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마리의 매력”에 빠졌다며 호들갑 떠는 서평을 썼습니다. 그것은 서평이 아닌 감상문이었습니다. 해석은 하지 못한 채로 마리에게서 느낀 친밀감과 감상만을 잔뜩 늘어놓았으니까요. 사실은 찬미였습니다. 에세이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형식미에 대한 감탄! 인물을 그려내는 표현력과 서사를 꾸려가는 감각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감탄하고 찬미하느라 해석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탄탄한 서사에 몰입하느라 생각하고 음미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긴 에세이인데, 라면 면발처럼 후루룩 마셔버린 느낌입니다. 어쩌면 나는, 서평은 가급적 (혹은 반드시) 해석을 포함해야 한다고 믿어왔기에 글을 쓰는 게 힘겨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64년, 수잔 손..

내 삶에 흥이 필요할 때

허균의 제2권을 읽었습니다. 노장의 학문을 좋아하여 예법을 무시하고, 속세를 피해 죽림에 모여 제멋대로 살았다 해서 ‘죽림칠현’이라 불렸던 이들의 고사(古事)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책의 첫머리에 다짜고짜 등장합니다. 이야기의 전문을 옮겨 봅니다. 혜강, 완적, 산도, 유영이 죽림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왕융이 늦게 왔다. 완적이 이죽거리며 말하였다. “속물이 또 와서 흥이 깨졌다.” 그러자 왕융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도 흥이 깨질 때가 있는가?” 이야기는 끝입니다. 이게 뭐야? 나의 첫 반응입니다. 감흥을 느끼지 못했지만 책 내용은 계속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고사도 짤막한데,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는 매한가지였습니다. 혜강은 성품이 대장장이 일에 잘 맞았다. 집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있어 매..

가볍게 만나는 퇴계 선생

퇴계 선생의 시 한 수를 읊어 드립니다. 선생은 1548년 48세 때 충북 단양의 군수로 부임했는데, 백성들을 섬기면서도 자주 시를 지었습니다. 지금의 단양군 장회리 아랫마을에 있는 여울을 바라보며 지은 시랍니다. 힘을 써야 겨우 조금 앞으로 가고 손 놓으면 대번에 떠내려가지. 자네 만약 뜻이 있거든 잘 봐 두게 여울물 거슬러 올라가는 배를. 편역자의 해설처럼 “마음을 닦는 데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당부로 읽히기도 하고, 공부를 시작했으면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괴로운 과정도 끝내 이겨내야 한다는 엄중한 조언으로 들리기도 하네요. 저의 해석도 그리 틀리진 않을 겁니다. 제자 이함형에게 보낸 편지에 아래와 같은 글도 있으니까요. “이제 겨우 공부를 시작했으면서 대번에 눈에 ..

벤야민 공부와 우정의 추억

눈을 뜨자마자 벤야민이 떠올랐다. 누운 채로 잠시 벤야민을 생각했다. 벤야민의 삶에 대한 생각이기도 했고, '아침부터 왜 벤야민일까'를 묻는 성찰이기도 했다. 잇달아 떠오른 이는 숄렘이다. 게르숌 숄램, 그는 『한 우정의 역사 : 발터 벤야민을 추억하며』의 저자로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였다. 두 학자 모두 유대인이었고 지적 정신적으로 깊은 유대를 나눴다. 생각의 연쇄는 내 친구 P에게로 가서 멈췄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어제 외출하고 나갔던 가방 속 내용을 꺼내 정리하고 책상에 앉았다. 아침 첫 생각은 무의식이 내게 보내는 인생살이의 작은 표지가 아닐까. 눈을 뜬 직후에 의식과 무의식이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교차한다면, 아침 단상은 의식이 달아나려는 무의식을 붙잡은 셈이다. 표지라면, ..

문학 읽기의 저력

3월 GLA 서양문학사 수업에 신청하신 한 분이, 오늘 아침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문학이 무엇인가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 걸까요? 나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질문이 학습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반가운 물음입니다. - 문학이란 무엇인가 -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가 두 질문을 품고 이번 수업을 들으시면 되겠습니다. 여러 문학 텍스트를 접하며 건져 올려야 하는 공부의 최종적 목표가 될 질문이니까요. 주신 물음에 이렇게만 답변드릴 수는 없어서 문학 읽기의 저력에 대해 제가 고민한 흔적도 공유하겠습니다." 라고. (공유한 글을 아래에 옮겨 둡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합니다. 개인의 고유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뜻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면이 있는가 하면, 서로 판이하..

생각의 힘을 키우는 TIPs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생각의 힘을 키워주는 3가지 모습을 살펴본다. 사색적 삶의 모든 면을 다룬 건 아니지만, 일상에서 실천할 만한 가벼운 지침들이다. 1) 생각한다는 것은 이유 찾기다. 누군가가 좋을 때, 왜 좋을까를 묻자. 무엇이 마음에 든다면, 왜 그런지 생각하자. 생각하기의 일차적 연습은 이유 찾기다. 자기감정의 이유, 행동한 이유, 어떤 현상의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것! 물음이 사유를 부른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거지 여기에 무슨 이유가 있어” 라고 말하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성 뿐 아니라 감정도 우리 인격의 중요한 일부지만,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동안에는 지양해야 할 말이다.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은 느낌이요 감정이다. 자연스러운 감성의 귀결이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