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 266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 『그리스인 조르바』 독법 하나 순진한 이상주의자는 어두운 현실을 곧잘 외면한다. 꿈을 추구하다가도 현실적인 문제가 나오면 절망하거나 힘들어한다. 이상성을 실현하지 못한 채로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 이상성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지혜로운 이상주의자는 진흙투성이 현실 속에서 이상의 꽃을 피워낸다. 경멸스러운 현실이더라도 직면하여 그 속에서 삶을 일군다. 조르바는 자신의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이상주의자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사람 볼 줄을 알기에, 조르바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매료된다.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조르바와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나'는 자신에게 고용된 인부들을 이해하고 애정하려고 애썼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그들과 형제처럼 지내려는 계획도 세..

양평 아카이브에 대하여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주 책을 읽었고, 돈이 생길 때마다 책을 샀다. 때때로 책 구입비가 버는 돈을 초과하기도 했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3~4천 권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고, 취업하고 수입이 늘면서 책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규모가 커졌다. 장서가 1만 권에 이르고부터는 책 구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20일이 지나고 있는 이번 달에도 구입한 책은 딱 두 권이다. (한병철『에로스의 종말』,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적지 않은 장서는 골치 아픈 문제를 동반한다. 장서의 보관 말이다. 장서는 자신이 머물 공간을 요구한다. 습기가 많으면 안 되고, 바닥이 튼튼한 공간이어야 한다. 장서의 공간은 곧 비용이다. 열렬한 독서가로 산다는 것은 결국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최고의 책읽기 방법은 슬로리딩이다. 천천히 읽을수록 독서의 효과가 향상된다. 많은 현대인들이 냉면을 들이키듯 후루룩 책을 읽는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내용이 나와도 조사하지 않는다. 모르는 단어조차 그냥 건너 뛴다. 조사하거나 사전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2. 진중하게 시간을 내어놓은 이들이 학습에 성공한다. 벼락치기에 성공한 이들은 손에 쥔 단기기억에 잠시 만족하지만, 감(感)하고 동(動)하지 못한 지식은 모래알처럼 움켜쥔 손을 빠져나간다. 현대는 속도전을 벌이는 시대다. 소중한 이에게 느긋하게 편지를 쓰는 기쁨,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는 행복을 앗아간 시대다. 최고의 독서를 하려면 분주한 마음부터 컨트롤해야 한다. 고대든, 중세든, 현대든 시계의 속도는 똑같다. 다른 것은 우리 마..

일급 저술가의 한국현대사

유시민은 일급의 저술가다. 나는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유통업자로 손꼽는다. 유통업의 가치는 유통하는 상품의 가치가 어떠한지 그리고 효과적인 매개가 이루어졌는지에 달려있다. 글로 지식을 유통하는 경우, 다루는 지식의 가치와 전달해내는 필력이 되겠다. 유시민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힘 그리고 정연한 문체와 독자를 사로잡는 문장력을 지녔다.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특히 좋아한다. 서문에서부터 일급의 저술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드러난다. 그는 현대사 서술의 위험성을 몇 문장으로 단박에 전달한다. "우리는 이승만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p.9) 그리..

300년을 살면 얼마나 좋을까

"진지하게 답변하셔야 합니다. 몇 살입니까?" "삼백서른일곱 살이에요." 답변을 한 에밀리아는 무려 337살입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발명한 묘약을 마신 후 영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의 희곡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의 주인공 말입니다.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은 동요합니다. 묘약은 그녀의 후손에게 우선권이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비테크라는 청년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그 약을) 공공의 자산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인에게, 전 인류에게 주어야 합니다. 모두가 똑같이 생명을 누릴 권리가 있단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 삶은 너무 짧아요! 인간으로 지낼 시간이 이토록 짧다니! 상상을 해 보세요, 이 인간의 영혼, 지식을 향한 갈망, 사람의 두뇌, 과업, 사랑과 창..

세 권의 책을 구입해버렸다

내가 책 구입을 이리도 자제했던 적이 있던가. 아마도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고, 두뇌는 조종종 지금의 순간을 과장하기 십상이니까. (『뇌 마음대로』라는 책은 자기를 기만하기 일쑤고 착각에 허덕이는 뇌에 대하여 두 챕터를 할애했다.) 나는 지갑이 가벼워질 때마다 서점을 멀리했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수입이 생기면 책을 샀고, 덕분에 다른 살림살이가 늘어날 기회는 없었다. 책 구입에 돈을 많이 쓴 것에는 내 나름의 전략은 없었다. 일관된 방향도 없었다. 장서에 대한 철학과 공부 키워드가 있기는 했지만, 얼마간은 지적 욕망의 노예였다는 말이다. (노예는 과장된 단어지만, 확실히 내 구매욕을 다스리지는 못했다.) 이번 여름부터 시작된 책 구입 자제는 꽤 오래 갈 것 같다. 지금까지 살..

이런 책을 읽어야 할까

개인이 인류 공존의 담론까지 읽어야 할까 -『문명, 그 길을 묻다』를 읽고 "쉴 틈 없이 일했다.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도 그랬고, 2만 달러에서 IMF와 함께 곤두박질칠 때도 다시 그 고지를 넘어야 한다고 힘을 모았다. 이제는 2만 5천 달러를 넘어섰다. 그런데 성장의 열매인 행복한 미래는 만기가 자동 연장되는 이상한 적금 통장이 된 것 같다. 질 높은 교육 혜택, 쾌적한 주거 환경, 맑은 공기, 푸른 공원의 시대는 언제 오는 걸까? 아니면 이런 숫자와는 상관없이 서로 비슷비슷하게 고생도 하고 절약도 하고 먹을 걱정을 덜어냈다며 조금씩 여가를 즐기던 20여 년 전이 더 실질적인 풍요를 누렸던 건 아닐까?" 『문명, 그 길을 묻다』의 저자 안희경 씨가 프롤로그에서 던진 물음입니다...

선택을 돕는 6가지 질문

도무지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습니다. 선택의 상황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분들로부터 카페 운영을 함께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서, 나는 그렇게 몇 주 동안을 고민했습니다. 고민했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떤 선택이 현명한 것인지 몰랐으니까요. 나는 선택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책장을 살폈습니다. 선택과 결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갖고 있으니까요. 헤아려 보니 일곱 권이더군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잘못된 선택은 대가를 치른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로 선택에 관한 좋은 책을 모아 온 덕분입니다. 좋은 선택이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관해 이론적으로 설명한 책이 있는가 하면, 선택의 기술을 실용적으로 다룬 책도 있습니다. 『넛지』는 행동경제학의 이론으로,『탁월한..

탈고를 앞둔 막바지 고민

최근 인문학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출간 되기 전이니 '원고'라고 해야겠군요. 집필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글을 쓰면서 짜릿했고, 감격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날들입니다. 보름 후면 탈고를 마치고 출판사로 보낼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말이죠. 예정을 방해할 요소는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고, 제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죠. 개연성이 낮은 일들이니 헛소리라 치부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생사는 개연성이 아닌 필연성으로 벌어집니다. 우리의 생로병사는 그 필연성 중에서도 확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높은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합리적 인생살이라는 점에서, 출간의 실제적인 장애물을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저의 완벽주의입니다. 이번 원고는 꽤 흡족합니다. '내가 다시 ..

깊은 지성의 3가지 특징

1.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산다. 책을 많이 읽으면 깊어지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여러 가지 시시한 책들을 읽느라 훌륭한 책을 진득하게 파고들 시간이 없다. 시간을 들이지 못해 사유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다. 사유의 힘이 느슨하니 고전의 단단한 지성 세계로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타협한다. 빈약한 지적 생활의 악순환이다. 반면 깊은 지성을 갖춘 사람들은 소수의 고전을 독파하면서 최고의 인식을 만난다. 2.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자주 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같은 주제의 강연을 두 번 듣지 않고, 중요한 텍스트도 두 번 읽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자신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발터 벤야민의 을 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