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7.24 오늘 춤 한 번 추실래요? (4)
  2. 2011.06.30 내 삶이 참 못마땅할 때 (7)
  3. 2010.11.13 세 권의 책을 집안에 들이며
  4. 2009.12.21 명랑 인생 (6)


띄엄띄엄 쓰는 나의 온라인 일기장의 7월 1일 날짜에는 두 줄의 글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2011년 하반기의 첫 날을 아주 생산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궁금하여 1일자 캘린더를 확인했는데, 그 날엔 아무런 약속도, 일정도 없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했던 날인 것 같습니다.

홀로 집에 있을 때에도 나는 부지런한 편입니다. 열심히 업무를 하고, 집안 일도 합니다. 업무라 함은 와우카페 방문, 강연 준비, 메일 회신, 블로그 업데이트 등을 말합니다. 강연 준비를 제외하면 매일 해야 하는 나의 일상이요 업무입니다. 이런 업무를 하다가 잠시 쉴 때면 청소기를 돌리기나 정리 정돈을 합니다.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행복입니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 특별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님을, 실패와 상실을 통해 깨달아 왔습니다. 어떤 일을 그르쳤을 때, 또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마다 그토록 바라던 것이 7월 1일과 같은 평범한 일상이었으니까요. 편안한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매우 감사한 것임을 깨달았으니, 상실 역시 인생 수업이었습니다.

(이건 딴 얘기인데, 실패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덜 중요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기도 합니다. 실패 이후에 더욱 큰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많은데,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과 자기 생각대로 살아갈 용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실패와 실수를 수용할 수 있는 힘이 곧 인생의 지혜일 것입니다.)

다시 일상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우리는 종종 원하는 것을 취하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행복은 오직 우리 마음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매년 다사다난한 인생살이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불확실하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한 인생을 유연하게 받아들여야지요.

오늘 아침, 한 청년으로부터 자신이 요즘 슬럼프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는 최근 핸드폰을 잃었고, 여유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날들 때문에 속상해 하는 메일이었습니다. 자괴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메일을 정독하고서 회신을 보냈습니다.

"슬럼프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나 오르막과 내리막을 번갈아가며 인생길을 걷기 마련입니다. 어떤 날에는 거울 속 자신이 참 초라하게 보일 때도 있지요. 굴곡이 있는 인생 사이클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가 비상과 슬럼프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인생은 때로는 신나게 때로는 차분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강 사이클을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빨리 자신의 기분을 전환시켜 하강 국면을 상승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아닌지 점검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는 노력도 해야 합니다. 행복은 스스로 창조해야 하고, 우울한 기분은 스스로 떨쳐내야 하니까요. 

자기 실현을 위해 힘차게 노력하다가도, 힘들면 힘든 대로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하고, 실수나 실패를 하면 그런 자신을 너그럽게 용서도 하는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인생에는 그야말로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까요.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과거를 호연하게 흘려 보내고 자신의 현재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즐거움도 없고, 영원한 힘겨움도 없습니다. 힘겨움은 지나가기 마련이니 가장 힘든 그 때 자신을 다독이며 조금 더 견뎌야지요. 머지 않아 평범한 일상을 맞게 되면 반드시 그 평범함을 찬양하고 감사해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지요.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춤이라도 한 번 추는 것은 어떠세요? 평범함을 예찬하는 춤이니 평범함 춤이라도 어울릴 거예요.

니체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춤 한 번 추지 않은 날은 아예 잃어버린 날로 치자"고 썼습니다. 그는 강인하고 명랑한 정신을 사모했던 철학자입니다. 사실, 힘겨운 날에도 춤을 출 수 있습니다.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아닌데 어떻게 춤을 추느냐고 말한다면 강인하지도 명랑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춤을 추면서 슬픔을 떨쳐 낼 수 있으니까요.


오늘 춤 한 번 추실래요?
나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들으며 추었습니다.
춤인지 체조인지 모를 춤이었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기분 좋음이었지요.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전문가/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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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주 2011.07.27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과거를 호연하게 흘려 보내고 자신의 현재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는 문장 앞에서 멈추어 서 봅니다.

    그러게요. 인생은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져 있는 것임을.
    기뻐서 호들갑 떠는 날이 있는가하면, 슬픈 눈물로 앞가슴을 다 적시우는 날도 있음을.
    돈이 많아 여유부리는 날도, 돈 한 푼 없어서 스스로를 초라하게 느끼는 날도 있음을.
    아무거나 다 잘 먹고 건강하게 보내다가, 건강이 무너져 먹는 것을 조심해야 날도 있음을.
    저는 잘 몰랐네요. 이렇게 배우니 좋으네요.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유연해지는 느낌입니다.

  2. 성지 2011.08.01 2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생님 마지막글에서 빵 터졌습니다.
    왜자꾸 상상이 될까요? ^-^

    오늘 중 가장 기분좋은 순간이네요.~.^




오늘, 달력을 보셨는지요? 어.느.새. 2011년의 절반이 지나 6월 30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써 두고,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무얼 하며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월말이나 연말 즈음이면, 실행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생각과 계획만 난무했던 지난 날들이 떠올라 약간의 자괴감이 듭니다. 나도 모르게 쩝, 하고 입맛을 다시게 되고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자기 존재를 괴롭히며 자기 모멸감으로 빠져서는 안 되겠지만, 타성에 젖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경멸하는 '건강한 자괴감'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스스로 부끄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당당한 삶을 창조해 갑니다. 배울 때에는 지금까지 배운 것을 비워낼 줄 알아야 더 큰 배움을 얻습니다. 지혜는 양 극단이 아니라, 서로 상반되는 가치 사이의 건강한 중간 지대에 깃들어 있습니다. 

호연지기의 사람이 되려면 부끄러움과 당당함 사이에서의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의 달인이 되고 싶다면 비움과 채움라는 두 키워드를 적절하게 조화시켜야 하겠지요. 이것이 어디 학습과 호연함의 기상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겠습니까? 자기경영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경멸할 수 있어야 스스로 사랑할 만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경멸이 위대한 도약을 돕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경멸하기! 이것은 니체가 말한 '초인'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몰락을 희망하는 것이 초인의 특징이지요. 변화와 성장은 끊임없는 자기 극복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이란 현재 바로 이전의 자기를 스스로 몰락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더 이상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면 그대는 자신의 머리를 딛고 올라설 줄 알아야 한다." 경멸과 도약 사이의 균형을 이룬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짓밟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쏜살처럼 한 해가 저물어갈 때 자괴감과 허무함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 역시 제 삶의 어떤 대목에 대한 씁쓸한 아쉬움입니다. 대다수의 사람이 그런 감정에 빠져든다면, 이런 감정을 부정하기보다는 삶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인정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니체가 말한 '위대한 경멸'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나의 모습이 참 못마땅할 때, 자괴감의 감정을 푸념과 불평으로 풀어내면 삶의 도약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에 건강하게 분노하며, 자괴감을 좀 더 나은 삶을 창조할 에너지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선택은 나에게 달린 일입니다. 어떤 마인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의 인생에 희망과 즐거움이 깃들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살이, 때로는 허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닐 수 있습니다!

                                    <실천을 위한 조언>

1. 내일부터 해야지, 하며 미뤄왔던 일들을 오늘부터 시작합시다. '에이, 6월의 마지막인데...' 하며 7월로 넘긴다면, 우리의 7월도 지난 날들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일'은 자기경영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는 위험한 단어입니다. '오늘'이야말로 안전하고 확실한 단어입니다. ^^

2. 2011년 상반기 '나만의 5대 뉴스'를 작성해 보세요. 성찰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에너지를 얻거나 새로운 목표를 세울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경영이란 타인과의 비교나 세상의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어제와 비교하는 것이고 자신이 가진 것을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성찰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유니크컨설팅 이희석 대표컨설턴트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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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효진 2011.06.30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
    거쳐야 할 일이겠지요.

    플래너에 오늘 퇴근 후 할 일을
    상반기 결산 & 하반기 계획으로 적어두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지는 모르겠으나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잃은 것도 있지만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했고 해서 얻은 게 더 많았던 반년이 아니었나 싶은데
    정리하다 보면 잊고 있었던 것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조언 감사드립니다.

    • 보보 2011.07.01 21: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독일 여행이 효진님의 가장 큰 뉴스겠지요? ^^
      지난 날을 성찰함으로 더욱 멋진 2011년 하반기를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2. 혜주 2011.06.30 18: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반기결산이 필요할 즈음이었네요.
    언젠가부터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맘이 편치 않았나봅니다. 일깨워주셔서 또 감사^^

    • 보보 2011.07.01 2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1년 하반기는 '혜주'님의 시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만들어 버리세요~! 잊지 못할 일들이 가득한 행복과 감사의 시즌으로!

  3. 2011.06.30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의 가장 큰 적은 저라고 생각합니다 ^^;스 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성격이라서요 잘 못했다는 생각이들면 자괴감에빠져 스스로 를 경멸합니다 그러면 몸이 스트레스를 받아 아파옵니다 어제도 회사에서 걱정거리가 하 나있어서 안좋았는데 막상 그 일은 문제없이 넘어갔네요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너무 앞서 걱정하지는 말아야겠어요 "건강한 자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새학기가 시작 했다는 마음으로 좀 더 즐겁게 살아야겠어요

    • 보보 2011.07.01 21: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신의 모습을 알고 계시니 행동으로 실천하여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시면 되겠군요. ^^
      힘차게 응원합니다. 즐거운 인생을 열어가시기를!

  4. 하뜻 2011.07.03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학교를 나온 뒤로 제 삶에 부쩍 '분주함'이 늘어났습니다.
    홀로 조용히 지내기 좋아하는 제 성정을 생각하면 외부활동이 늘어난 게
    반가운 변화인 것 같기도 한데,
    요즘 같아서는 혼자서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마음입니다.
    바깥 활동이 많아진 반면, 내면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은 줄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고서 '2011년 상반기 돌아보기'라는 축제도 하지 않은 채 지낸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스스로에게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말해봅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바빠진거야!"

    이제는 잠시 쉼표를 찍어야겠습니다.
    외부활동과 내면세계 여행이 균형을 이루도록 말입니다.
    이 글이 그 시작을 열어줄 것이라 희망하며 글을 남깁니다.

 

세 권의 책을 허벅지 위에 떨어지지 않게 올려 놓고 이 글을 쓴다. 11월 들어, 우리 집에 세 녀석들이 '침입'했다. 내 허락없이 우리 집에 들어왔기에 침입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책 구입을 자제하리라는 내 의지를 짓밟고 들어왔으니 '정복'이라 표현하는 것이 이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그렇다. 11월에도 기어이 나는 두 권의 책을 사고 말았다. (한 권은 선물 받았다.) 먼저, 나를 정복한 두 권의 책. 『왜 도덕인가?』와 『책을 읽을 자유』.


『왜 도덕인가?』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도덕주의의 유익과 한계'는 요즘 나의 최고 관심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가 아니라, '중 하나'라는 게 조금 머쓱하긴 하지만, 요즘의 내가 자주 도덕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분명하다. 도덕주의, 곧 도덕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는 입장은 분명 고결하지만, 순진해 보인다. 순진하다는 인상은 아마도 도덕주의 자체가 아니라, 현실인식이 빈약한 일부 도덕주의자들 때문이리라.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도덕주의자는 유물론에 흠뻑 젖어 보아야 한다. 도덕주의자들은 이상주의자들이어서 육체, 시스템, 현실을 정신, 마인드, 이상보다 열등하다고 여긴다. 저명한 시인은 멋지게 표현했다.
 

영혼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몸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의 말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는 도덕주의자의 말이라면, 나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과 도덕을 자기 삶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마이클 더다는 도덕주의에 덧붙일 만한 가치를 언급했다. 도덕주의자들은 합리주의, 자기 수련, 신념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더다는 도덕주의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세 가지 모두 건강한 자유 시민에게 필요한 자질이기는 하다. 그러나 환희, 공동체 정신, 의혹은 어떤가?"

내가 보기에 더다가 덧붙인 세 가지의 가치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도덕주의는 숭고하고 삶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도덕주의자들이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도 우리를 숭고하게 만들고, 세상에 공헌한다.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결해질 수 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 때 반복과 오해가 생긴다. 더다에 의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 미국인은 유순한 소공자와 착하고 얌전한 소녀를 결코 높이 평가하지 않"고, "미국인의 전형은 허클베리 핀과 스칼릿 오하라, 바트 심슨"이다. 하나같이 규칙을 무시하는 이들이다.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하나? 비도덕주의자? 반도덕주의자? 이것 역시 도덕이라는 가치로 폄하한 언어일 뿐이다.

도덕은 니체에게도 중요한 단어다.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전복의 대상으로서 중요했다. 니체에게 도덕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뛰어넘기보다는 신과 국가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그래서 전복해야 할 가치다. 도덕에 굴복하는 삶은 초인의 길을 포기한 삶이다. 내가 니체의 명제가 다소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열광하는 까닭 중 하나는 도덕의 계보를 파헤친 그의 논리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니체의 망치질은 국가와 도덕 뿐만 아니라, 내 머리를 흔들기에도 충분했다.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을 읽는 수고를 하느냐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 카프카


스무살 무렵부터 이십 대 중반까지 나는 분명 도덕주의자였고, 모든 현실에 관련한 것들을 이상보다 열등한 것이라 여겼다. 이후 서른 살까지, 내가 현실 인식이 빈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른 이후부터는 빈약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괴테, 니체, 마르크스로부터 받은 조금씩의 도움으로 현실 인식을 키워오던 중이었다. 그것은 당연한 명제에도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무슨무슨 주의에 의지하지 않고 홀로 사유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현실적인 것들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과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방해하는 것들이 신앙, 도덕, 국가였다. 이것이 나의 결론인지, 니체를 읽은 당연한 귀결인지는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의도적으로 도덕주의의 반대편에 서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진정한 중용은 양 극단이 무엇인지를 아는 이들만이 맛보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도덕주의에 관하여, 나를 흔들어 깨울, 마음 속 견고한 바다를 깰 수 있을 법한 책을 찾던 중이었다. 도덕주의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도 아닌, 감정적인 비난도 아닌 균형있고 건전한 견해를 만나고 싶었다. 저자가 도덕을 찬양하든, 멸시하든지는 상관없다. 그저 자신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잘 전개한 책! 도덕주의자의 전형을 보여 준 칸트에서부터 도덕으로부터의 자유를 설파한 니체가지 이어지는 스펙트럼을 훑어 주는 책이면 더욱 좋겠다.

『왜 도덕인가?』가 적임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구입했다. 도덕주의적인 삶을 살아 온 내가 니체의 메시지에 전율했다가, 다시 니체와는 다른 메시지에 설득당하고 싶은 것이다.  왜 도덕이 구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탁월한 논증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일방적이고 당연한 주장이 아닌, 반대편의 견해를 오목조목 따져 드는 성실함과 예리함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이왕이면 니체의 망치질로 손상된 도덕의 가치를 말끔히 복원해 주었으면 좋겠다. 도덕주의자가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은 좀 더 도덕주의에 대한 반감을 견지하고 싶다.

사실, 내 삶의 방식은 도덕주의적인 모양으로 결론지어진 것인지 모른다. 이번 양양 여행 중 하조대에 갔을 때, 명상에 잠겼는데, 생각이랄 것도 없는 뻔한 결론이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그 뻔한 결론을 옮겨 본다. '바다에서 하는 다짐은 늘 같다. 한 마디로 잘 살자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자! 좀 더 성실하게, 좀 더 순수하게 살자!' 스스로도 허무했던지라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이것은 내 나이 스물 하나였을 때의 다짐이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네.' 나는 원점이 아닌 곳에서 사유하고 싶다. 도덕주의가 자꾸만 '왜'라는 질문을 죽이는 듯 하다. 옳은 것이니까, 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듯 하다. 도덕주의에 대한 내 반감은 의도적이지만, 치열하다. 그 치열함은 사실 중용을 위함이다.  

"극단으로 가기 위해, 확실하게 편들기 위해, 진짜 중용을 찾기 위해!"
- 장정일, 『공부』 서문에서.


『왜 도덕인가?』의 목차를 펼쳤다. 와! 머리를 즐겁게 해 줄 내용들이 가득해 보인다. 경제적 도덕, 사회적 도덕, 정치적 도덕, 교육과 도덕, 종교와 도덕 등 목차가 품고 있는 담론부터 폭넓고 다양하다. 우리에게 도덕적 가치가 왜 중요한가? 모두를 위한 경제정책은 무엇인가? 시민의식은 과연 회복될 수 있는가? 와 같은 질문으로 구성된 챕터는 또 얼마나 매력적인가? 예상했던 대로 칸트(대표적인 도덕주의자다)와 롤스(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의' 학자다)가 보인다. 존 듀이의 등장은 뜻 밖이다. 자, 이제 읽을 준비는 완료 되었다. 시간아, 나를 외면치 말아 다오.


지금 나는 '책을 읽을 자유'로운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선물 받은 『책을 읽을 자유』는 그 자유로운 시공간 속으로 흠뻑 빠져들때 집어 들고 싶은 책이다. 내공 대박인 로쟈의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책읽기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이 깃든 놀이요, 깊은 배움이 있는 학습이다. 80페이지까지 책을 읽은 바로는 정말 그렇다. 이 책을 선택한 까닭은 저자의 전작 『로쟈의 인문학 서재』 때문이다. 세상에는 그런 저자들이 있다.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그의 다른 책들을 구입하여 읽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사람들 말이다. 로쟈 이현우는 내게 자신의 전작을 읽게 만드는 저자다. 다음 책이 나와도 나는 선택할 것이다. 그런 책을 선물 받았으니, 참 기쁜 일이다.


『회의주의자 사전』은 언젠가 교보문고(강남점)에서 살펴 본 후, 구입하고 싶었던 책이다. 하지만 책값이 비쌌다. 32,000원짜리가 인터넷 서점에서 50%이라는 달콤한 특가 세일을 하길래 덜컥 주문했다. 허허. 싸다는 것이 구입 이유라니. 하하. 3권의 책이 손에 들어 온 이유가 갈수록 단순해지고 저렴해지네. 이것이 나다. 이 글의 모양새가 그렇듯이, 초반의 반짝 열정이 내 성정이요, 용두사미가 내 주특기다. 특기를 최대한 살리려면, 어서 슬그머니 맺는 것이 좋으리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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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랑한 인생을 살고 있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더니 명랑해졌다.

간혹 나를 부러워하는 분들이 있다.
기회가 되면 내게 주어진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런 이야기들 속에 '명랑 인생'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내게 주어진 인생이지만 받아들이기 가장 힘들었던 4가지다.

-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 사망 (말하기조차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 새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 대신 종종 매를 맞음.
- 15세 때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사망
- 입사 후, 안 간다고 믿고 있었던 군에 26살의 나이로 입대

또 다른 힘겨움(사별, 상실, 실연 등)들도 많았지만
위의 4가지는 많은 눈물로 받아들여야 했던 일들이었다.
지금은 어느 것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나는 분명 힘들 때마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설 때에는 무언가 하나씩을 주웠기 때문이다.

명랑함은 자기 인생의 일부분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탄생한다.
자기 삶의 실체 중 어떤 하나를 자기 것이 아니라고 거절하면 명랑함도 사라진다.

명랑함은 곧 진짜 긍정을 발휘하는 것이다.
삶의 밝은 면만 받아들이지 않고, 전부를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긍정이다.
덮어두고 싶은 것은 덮어둔 채, "모두 잘 될 것이다"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긍정이 아니다.

스캇 펙의 훌륭한 책 『아직도 가야할 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그러나 이러한 평범한 진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더 이상 고해가 아니다.
다시 말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삶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비로소 삶의 문제에 대해 그 해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진리를 나는 굳게 믿고 이해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때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고 불만스러운 질문이 찾아든다. 

보편적인 문제를 특수한 문제로 인식하면 지혜로운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자기만 골치 아픈 상사를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먼저 알아야 할 한 가지는
그런 상사는 어느 조직에나 한 사람씩 있다는 사실이다.  

불평이 있던 곳에 감사함이 피어나는 것이 명랑의 힘이다. 
감사함이 피어날 수 있는 까닭은 누구나 삶의 모든 순간에서
배울 수 있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명랑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어떤 고난과 슬픔이 닥쳐도 나는 그것을 직면하여
배움을 얻을 각오, 의미를 찾고 싶은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명랑 인생의 대표 주자는 철학자 니체다. 그는 말한다.
"차라리 고난 속에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이런 명랑함의 말들은 종종 마술과 같은 주문으로 오해된다.
(부자연스러운) 의지를 발휘하여 슬픔이나 고난을 외면한 채
스스로에게 "좋게 생각하자"고 주술을 거는 모습은 명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명랑이 아니라 자기 기만이다. 명랑의 첫째 조건은 진짜 긍정을 배우는 일이다. (명랑 = 진짜 긍정)
긍정이라는 말 대신 '명랑'을 선택한 것도 긍정이 이미 오해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진짜 긍정은 자기 삶의 모든 실체를 받아들이며 긍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삶에 고난이 닥쳤다고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그 슬픔을 온 몸으로 통과하겠다고 다짐하면 성장할 수 있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은 30분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않는 용기다.

용기라고 표현한 것은 고난을 직면하기가 매우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난에 직면하지 않은 채 비겁하고 살아가는 것은
내면에 두려움이 숨겨져 있는 것일 뿐,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고난에 직면할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진실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신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으로만 시험(test)한다.
2) 시험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유혹(temptation)이 아니라, 성장시키려는 목적의 연단(test)이다.
3)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은 고난을 겪은 만큼 성장한다.

명랑 인생을 좌절시킬 만한 고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건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와는 별개의 문제다.
명랑은 인간 정신의 위대함이라 불릴 만한 가치다.

※ 명랑 인생을 도울 한 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앞서 언급한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열음사)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책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로 이어가겠습니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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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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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BILLY 2009.12.22 0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희석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 나의 수업을 원하는 학생이 없어지는 것.. 지금 이게 제일 두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벌이가 되기도 하기 때문인가 봅니다~ㅎ

    • 보보 2009.12.22 16: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제가 깊지 못하여 어리석은 이야기를 하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많은 말들을 꺼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 두려움 '덕분에' 좀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기도 하지요.

  2. 42ko 2009.12.22 16: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_ _) 이 글을 읽고
    "뭔가에 견뎌내려면 지금 그보다 더한걸 견뎌내야한다"
    라는 제 좌우명의 의미를 더욱 생각하고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 보보 2009.12.22 16: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 가지 더 기억해 두거라.
      일부러 고난을 선택할 필요는 없단다.
      이미 주어진 고난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늘 힘겨운 고통인 것도 아니고 말야. ^^

  3. 바람이 2009.12.23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숙연해지는 글입니다.. 나눔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