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어느 여유로운 출근길

카잔 2010. 9. 28. 09:49


7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집에서는 몰랐다.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햇살이 얼마나 화창한지를!
내 기분만큼이나 화창한 햇살은 눈부셨다. 팔로 눈을 가리며 쳐다 보았다.
도시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에서는 창문이 제 역할을 못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집어 들고 나왔다.


찰칵! 첫째 사진은 선릉역 5번 출구 앞에 있는 간이부스대의 김밥이었다.
수북이 쌓여 있는 저 김밥들은 회사원들의 뱃속으로 들어가겠지.
간단히 끼니를 떼우시더라도, 허겁지겁 드시지 말고 맛나게 음미하며 드시기를!
가벼운 식사지만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에너지가 되기를 기원드리며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지금 막 지하철이 지나갔나 보다. 출근 부대가 우르르 몰려온다. 
한 켠으로 비켜 서서 그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쳐다 본다.
그럴 때마다 늘 생각하는 게 있다. 내 표정도 저렇게 심드렁할까?
두 손으로 마른 세수를 하고, 표정을 부드럽게 풀어본다. 아니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나도 비슷한 표정임을.
카페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문득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랐다. 무표정하여 화가 난 듯하고, 어리벙하여 정신이 없어 보이기도 했다.)

잠실 방면 지하철은 승객들의 몸이 닿을 만큼의 혼잡함을 아니었다.
몸을 살짝 세로로 비켜가면 다른 칸으로 마음껏 넘나들 정도의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나는 삼성역에서부터 앉아서 왔다. 앉아서 손에 들고 있던 『퀴즈쇼』를 펼쳤다.
주인공 민수는 이제 막 '회사'라고 불리는, 하지만 음산하고 묘한 구석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오늘 처음 그 회사에 갔고,
현실 속의 나도 이렇게 일찍 회사에 가는 것은 오늘이 첫날이다.
어제 부로 정식 출근을 시작했고, 오늘은 그 이튿날이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10시 출근이니, 가장 먼저 회사에 도착한 것이다.

민수는 계약금 천만원을 받고 시작한 회사 일이지만,
나(와 3명의 동료)는 각각 천만원을 출자하여 시작한 회사다. 
25%짜리 '나'의 회사에 가기 위해 잠실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다.
와! 무료로 배포되는 정보지들이 반겨 주었다. 고맙고 신기해서 찰칵!


태양은 석촌 호수의 동호 건너편에 떠 있었고,
서호 한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롯데월드를 비쳐주었다.
그 장면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다시 어슬렁거리며 길을 걸었다. 
인도에서 석촌호수 산책길로 내려갔다. 호숫길을 따라 돌면 사무실이 나오기 때문이다.


석촌 호수 건너편으로 보이는 잠실역 일대가 아름다워 다시 찰칵!
나는 이미 여행자가 되어 있었다. 아름다움에 감탄하면 잠시 멈춰서서 관찰했다.
이처럼 멋진 풍광을 만끽하지 못한 채, '일상'이라는 보자기로 뒤집어 씌워서 잊고 지내는
나의 분주함이 아쉬웠다. 내 삶에 여유와 감탄을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회사에 가는 즐거움 덕분에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겠지, 라고 생각하신다면, 땡!이다.
오히려 회사로 인해, 약간의 부담감(일이 많이 바빠지면 어떡하지?)과
일말의 갈등(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잘한 것인가?)으로 지내는 요즘이다.
출근하는 시간을 충분히 즐긴 것은 여행자처럼 살아가려는 삶의 태도에서 온 것이다. 

출근하는 기쁨이었다면 내게서는 첫사랑에 빠진 사람 특유의 다정함이 엿보였을 테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 사람의 설레임과 호기심이 강했다. 
또한 일상철학자로서 내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회사로 이동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던 대로 호수 근처의 카페 커핀 그루나루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퀴즈쇼』로 빠져들었다. "빠져들었다"는 표현 그대로 나를 매료시킨 책이다.
민수의 회사 생활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다.
오전에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이젠 나의 회사생활을 흥미진진하게 만들 시간이었다.
책이 무척 재미있지만 나의 일을 처리해 나가는 기쁨도 그에 못지 않다. 

오래 앉아 있자니, 호숫가라 그런지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집을 나서기 전, 잠시 망설였던 순간이 떠올랐다. 파란색 잠바를 꺼내 입을까?
그저께 잠실 야구장에도 있없었지만,  야간 경기인 데다 거대한 잠실 경기장의 바람 때문이었고
왠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오늘은 더울 것 같았다.

나의 예상은 틀렸다. 추웠다. 참 분위기 좋은 창가 자리인데 이 글을 쓰고 안 쪽으로 옮겨야겠다.
지금도 나는 조금 떨면서 이 글을 쓴다. 앉은 곳이 창이 뚫린 흡연석이라 바람이 들어온다.
왜 여기에 앉았냐고? 이 쪽이 예뻐 보였고, 아직은 흡연가들이 아무도 없으니까.
왜 안쪽으로 가지 않느냐고?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자꾸 이동하는게 종업원들에게 미안해서.

(그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매일 나 혼자서만 이런 식이다.
내가 봐도 답답하다. 그러니 내게 별 말 마시라. ^^ 나도 노력하는 중이니)

블로그 업데이트가 뜸했던 요즘이라, 약간은 의무감으로 포스팅 하나를 썼다.
내가 좋아 하는 일이니 무슨 의무감이랴 싶지만
일주일 내내 뜸하게 되면 방문자들에게 슬쩍 미안해진다.
아니, 이건 미안함이 아니라 일종의 매너 같이 느껴진다.

블로그에서 하나의 새로운 포스팅이란,
집으로 찾아 온 손님에게 "어세 오세요" 라고 반기는 인사가 아닐까.
그래서 며칠 째 새로 업데이트된 글이 없으면
걸음해 준 그들에게 작은 실망감을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몰론, 이 느낌의 일부는 과대망상이고, 일부는 착각일 것이다.
방문횟수의 많은 부분이 나를 생판 모르는 이들의 발자국일 테니까.
그렇다면 나는 이 글을 왜 썼단 말인가. 시간이 돈인데, 30분이나 투자하면서 말이다.
첫째는 나를 위함이다. 그리고 단 한 명이라도 나를 찾는 이를 위해서다.

보보여, 그리고 저를 찾아 준 그 한 사람이여~!
행복하시고 건강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