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한지민을 만나고 나를 만나고

카잔 2010. 10. 10. 23:26


드라마를 거의 보지 못하는데 (재미 없어서가 아니라, 볼 시간이 없어서)
첫회부터 마지막-1회까지 보았던 드라마가 있다. MBC 드라마 <이산>.

2000년 이후로는 국민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던 드라마들도 거의 못 보았다.
<제빵왕 김탁구>, <아이리스>, <주몽>, <선덕여왕> 등을 한 편도 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산>의 전편을 마지막 회만 남겨 두고 모두 챙겨 본 것은
정조의 '인격적인 리더십'과 성송연 역을 분했던 '한지민'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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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 한지민을 회사 앞 카페를 지나다 직접 보았다.
정엽의 뮤직 비디오를 촬영 중인 한지민은 카페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 몇이 그녀를 호기심으로 지켜보았고, 나도 그들 중의 한 명이었다.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옆의 사람이 찍는 것에 용기를 얻어
한 장을 사진에 담았지만 앞 사람의 옷자락이 가렸다. 다시 찍으려는데, 스탭이 제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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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한 장의 사진을 얻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한 장만 찍으면 안 될까요?" 조금 간절한 목소리로 스탭에게 부탁했다.
"안 됩니다." 다소 냉정하게 답하는 그에게 버럭 화를 낼 수도 없는 일이니 포기해야 했다.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동료는 일찌감치 가고 싶어 했던 터라 회사로 들어갔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잠시 회사 밖으로 나왔다. 뮤직 비디오팀은 촬영을 끝냈나 보다.
한지민은 스탭에 둘러 싸여 노트북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는 듯 했고, 카페에는 촬영 시와 다른 자유로움이 묻어 났다.
나는 그들을 지나치며 나의 가는 길을 향해 촬영장을 지나갔다.

3분 정도 제 길을 가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한지민은 내가 참 좋아했던 배우가 아닌가.
눈 앞에 서 있는 그녀에게 "나는 당신의 팬입니다"라고 인사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느라, 점잖은 척 하느라 그러지 못한 것은 바보 같은 모습니다.'

나는 돌아섰다. 다시 한지민에게 가서 사인이라도 받겠다는 생각이었다.
촬영 중이 아니니 내가 용기를 내면 어렵지 않은 부탁이라고 나를 다독였다.
사실 사인을 받을 만한 책을 들고 나오긴 했다. 다른 사람들이 사인을 받는 분위기면
나도 거기에 합세하여 하나를 받을 생각이었는데, 그런 분위기가 아니어서 포기한 책.
다시 그 책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나는 그녀가 있던 카페로 향했다.

그러나, 한지민은 없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앉았던 테이블은 깨끗이 정돈되어 있었고,
촬영장이었던 현장이 이제 본연의 모습인 카페로 변해 있었다. 아! 이건 아쉬움이다.
휴우~! 이건 안도감이다. 그래, 한지민을 만나지 못한 것은 아쉬움인 동시에 안도감이었다.
거절을 당할지도 모르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적어도 그런 상황을 모면한 것이다.

이것은 연약함이거나 소심함이다. 혹은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비겁함이다.
한지민, 그녀를 만난 것은 흥분이 되는 일이지만, 나의 비겁함을 만난 것은 슬픈 일이다.
이것은 감정적인 슬픔이 아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창조적인 에너지다.
그렇게 살지 말자는, 용기를 내어 내 삶을 혁신해 나가자는 열정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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