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모자가 선물해 준 감동

카잔 2011. 2. 8. 19:30


누군가의 Mail에 회신하다가 마음에 드는 사색이나 표현을 내놓게 되면 흐뭇해집니다. Mail 회신을 한 내용으로 한 편의 글을 쓸 때도 있고, 강연 재료가 될 만한 생각을 얻을 때도 종종 있습니다. 메일 회신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그들을 돕는 일이기도 하지만, 제가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5~6년 동안 누군가에게 정성스럽게 보냈던 메일이 쌓인 것은 제겐 큰 자산이지만, 이것 역시 지난 N 사건 때 몽땅 날아갔지요. 요즘엔, 흐뭇한 메일을 보내고 나면, 소실된 메일에 대한 아련함이 떠오르곤 하지요. ^^

상실에 대한 아픔은 거의 모든 일상 속에 있습니다. 사진을 찍거나 정리할 때 떠오르는 감정은 '덧없음'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했고 그 때마다 찍고 정리한 것들이 대부분 사라졌는데, 이걸 해서 뭣하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게지요. 이런 슬픔과 허망함의 감정을 느끼는 일(체험의 노력)은 훗날을 기약하고, 요즘엔 좋은 생각을 갖는 것(회복의 노력)으로 매일을 살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생각으로 말입니다. '사라진 것에 대한 감정으로 오늘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제 일상에 불만은 없습니다. 제 형편이 나쁘지도 않고 처량한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의 동정이 싫어서 혹은 내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겉으로 드러난 상황'이야 최악에 가깝지만, '내면 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동정을 느끼시기 전에, 저를 부러워해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두어 번에 걸쳐 제 내면 세계의 모습을 살짝 공개하며 설명해 봅니다. 섬세하고 은밀한 변화인지라, 삶의 속도를 늦추기 전에는 '이게 뭐야'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날은 MT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솔개 와우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칠 무렵이었습니다. 솔개님들은 미사를 드리기 위해 먼저 나가시고, 저는 식사를 좀 더 들었지요. 디저트만 남았지만, 처음으로 홀로 식사를 했던 순간이었지요. 여러 가지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깔끔하게 마련해 둔 레스토랑은 매우 쾌적했습니다. 나는 40분 정도 맨발로 걷기 운동을 한 뒤였고, 날씨는 무척이나 화창했습니다. 그 때, 창가에 놓아 두었던 제 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늘 쓰고 다니는 모자 말입니다.


MLB 모자입니다. MLB는 비싸서 시장표 싸구려만 쓰다가, 3년 전에 처음으로 구입한 브랜드입니다. 제 것은 MLB 중에서는 저가 모델이지만, 그래도 MLB이니 3만원은 합니다. 많이 써서 머리를 감싸 주는 부분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흐물해졌지만, 제가 좋아하는 모자입니다. 모자를 쳐다보고 있으려니, 모자와 함께한 여행 추억들이 생각납니다. 2년 전 브라질에 올 때에도 이 모자는 나와 동행했고, 두 달 동안 함께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고 했었지요. 치악산, 지리산, 북한산에 오를 때, 햇빛으로부터 나의 얼굴을 가려주기도 했지요.

순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평온함과 감사함이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사랑이 나를 감싸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인지, 고통으로 인하여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눈이 회복된 덕분인지 모르지만, 이 충만한 기분은 분명한 실체였습니다. 나도 모르게, 모자를 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겉모습은 미친 놈 같았을 테지만, 속마음은 평온한 호수 같았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중에도 몇 번이나 모자를 만지작 거립니다. 손에 닿는 모자의 촉각이 평안을 줍니다. 54일간의 유럽여행 마치고 한국 귀국을 앞둔 날, 배낭을 잃어버린 적이 있지요. 누군가 잠시 놓아 둔 걸 들고 갔던 것입니다. 얇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에게 작은 가방 하나만 달랑 남았던 그 허탈한 순간에 쓰고 있던 모자가 지금 내 눈 앞에 있습니다. 다른 하나의 모자는 가방과 함께 나를 떠났고, 이 모자는 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자를 보고 있으면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 합니다. '잃은 것이 많지만, 남은 것도 많아', 하고 속삭입니다.



아침에 불쑥 찾아 온 평온함이 무척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모자가 사랑스럽습니다. 이런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시는지요? 가여워 보이거나, 뭔가 행복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으로 보이신다면, 그건 작은 것 속에서 큰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혹은 한동안 잊고 지내셔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건 가여움이 아니라, 감동입니다. 발버둥이 아니라 발돋움입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끼었고, 저는 슬픔을 밀어내려고 애써 노력한 적은 없답니다. 야구선수가 날아오는 공을 피하지 않듯이, 저 또한 나를 찾아온 슬픔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동정도 감사합니다. 관심의 표현인 걸요. 반갑지는 않지만, 종종 진심어린 동정에 힘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허나, 여러분도 제가 느낀 사소하지만 큰 일상의 감동을 발견하신다면, 제게 동정이 아닌 부러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제 눈이 더욱 섬세해지기를 기원해 봅니다.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서가 아니지요. 너무 빨리 걸어가느라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세상 속에서 머무는 것이 매우 기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방금 모자를 썼습니다. 식사하러 가려구요. 여느 때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식사입니다. 갑자기 이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즐거운 식사, 소중한 모자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상실이 인생의 일부임을 깨달았지만, 모자는 오래 오래 내 곁에 있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이 모자와도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사람은 주먹을 쥔 채 죽는 법이 없고,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요. 한 푼의 돈도 가져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소유란, 인생을 사는 동안 잠시 내게 맡기워진 것입니다. 소유는 '중히 지하라'는 의미인지도 모르지요. 내가 맡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나누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소유지만, 지나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길이 없다.
모든 소유를 상실한 이들이 초라한가? 자신의
꿈을 잃어버린 이들이 초라한가?
어느 누구도 초라하지 않다. 인간은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초라하게 보일 순 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눈이 아니다.
자기 영혼의 건강상태가 중요하다.
- Reno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