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일상으로부터 배우는 연습

카잔 2011. 2. 10. 02:49


사소한 작업도 쉽게 하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웹진 원고를 보내라는 메일이 오니, 괴로워지더군요. '원고, 이제 없는데 어쩌지?' 연재 칼럼인데, 초고를 대략 써 둔 파일이 없으니 난감합니다. 아니 괴롭습니다. 오늘 대강의 골격이라도 잡아보려고 한글 파일 하나를 열었더니 그간 빼곡하게 써 둔 원고가 떠올라 울컥했습니다. '아! 정말 쉽지 않구나.' 내일은 브라질에서의 첫 강연이 있는 날입니다. 물론, PPT도 없고, 강연에 참고할 만한 스크립트도 없습니다. 강연 전에 스크립트 한 번 훑어보고 임하면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데, 지금은 PPT 부터 만들어야 하다니요! 피식하고 웃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허탈함이란 녀석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일상을 흔들어 놓고 마니까요. 최선을 다하고자 이번 강연에는 유인물까지 나눠 드리기로 했습니다. 허허, 잘 하지 않던 일까지 저지르고 나니 해야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열심히 작업하여 2페이지짜리 유인물을 완료하여 보냈습니다. '유인물 작성'이라는 하나의 산을 넘은 셈입니다. 2시간 정도 걸렸으니 높지 않은 산입니다만, 이 역시 쉽진 않았습니다. 산을 넘는 힘겨움은 산의 높이가 아니라, 허탈해하는 나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고쳐 먹는 일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의미와 열정을 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어렵지 않게 하나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배움! 그래요, 저는 배우고 깨닫는 것을 좋아합니다. 배움은 나에게 열정을 줍니다. 일상을 살다가 크고 작은 깨달음을 얻을 때, 저는 신이 납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지요. 하지만, 무엇을 배울까, 하고 배울 거리를 찾아 다니는 일은 지금의 제게 호사스러워 보입니다. 그건 배움을 '하나의' 옵션으로 생각하는 이들의 행위입니다. 저에게 배움은 하나의 옵션이 아니라, '유일한' 옵션처럼 느껴집니다. 하루만큼 살아갈 이유가 필요하니까요. 간절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일상의 모든 순간으로부터 배워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수업에 임하고 있는 학생이니까요.

모든 순간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이란, 배워야지, 배워야지, 하는 소리를 웅얼거리며 탐정의 눈으로 일상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상과의 유리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인생 여행자의 태도가 아니지요. 여행자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라 활동의 세계를 거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밟으며 걷고,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것도 낯선 언어를 듣는 것도 자신의 혀와 귀입니다.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려는 학생의 태도는 이런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인생이라는 수업이 가진 신비로움'를 기대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그저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불쑥,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고 싶다'는 마음 속 열망이 실현되고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열망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열망이 실현된 현실 속의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저의 열망이 이뤄진 작은 깨달음의 순간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끼워맞춘 깨달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소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 것입니다. 그 까닭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에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저에게 (작고 희미하지만) 기쁨을 안겨 준 순간부터 적어 보겠습니다.


1. 브라질로 날아올 때 가져온 나의 캐리어가 무지 더러워졌다. 파리 근교의 명품 아웃렛에서 구입했을 당시에는 고급스런 소재와 빛깔로 폼이 났지만, 지금은 오히려 끌고 다니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저분하다. 호텔에 도착하여 세척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중, 아예 귀국하기 직전에 세척하자고 생각하게 된 일이 있었다. 어제 아침이었다. 식사를 하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마침 체크아웃을 하려는 손님 한 명이 함께 탔다. 그는 두 개의 크고 작은 캐리어를 끌고 있었는데, 모두 검은색이었다. 아직 'GRU'라는 Tag이 달려 있는 것으로 봐서 과률로스 공항을 통해 브라질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캐리어는 눈에 보이기는 깨끗했다. 나의 캐리어와 달라 보였다. 저 꾀죄죄하게 보이는 남자가 어젯밤 두 개의 캐리어를 솔로 박박 문질러가며 세척을 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검은색 캐리어인지라, 비행기 수송칸에서 묻었을 법한 이런 저런 기름 자국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산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기체도 있고, 사랑처럼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 하는 가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놓치지 않아야 삶이 아름다워진다. 문득, 나의 영혼이 나의 캐리어를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묻으면 더러워지고, 더러워진 모양새가 금방 눈에 보이니, 그 상태로 지낼 수가 없다. 내 모든 죄가 저렇게 쉽게 눈에 띄는 것이라면 나는 벌써 몇 가지 죄로부터 멀어졌을 것이다. 저 캐리어는 매우 진실한 놈이다. 호텔 객실 한 쪽에 밀쳐 두었던 캐리어를 눈에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두었다. 저 놈을 볼 때마다, 나의 더러운 내면의 모습을 보려는 게다. 브라질을 떠나기 전에 저 녀석을 세척하면서, 나의 영혼에 낀 오물도 걷어내야겠다.


2. 햇살이 붉은 빛을 상파울로 하늘에 뿌려놓았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그의 선물이다. 붉은 빛으로 시작되는 하루에, 나 역시 붉은 열정으로 화답한다. '그래, 나도 햇살에게 배운 열정으로 오늘을 힘차게 살아갈께!' 그의 밝은 기운도 본받아서 밝고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야지. 자연에게서 얻은 좋은 기운을, 누군가에게 나눠 주고 싶어 몇 분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아직 오전인데도 날씨가 더워졌다. 상파울로의 여름 태양은 뜨겁다. 내 안에도, 사람들을 더위에 지치게 하는 한낮 태양의 열기처럼, 남들을 성가시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못된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런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해야겠다.



3. 어제, 아주 맛있게 식사를 한 식당에, 오늘 또 갔다. 이미 많은 사진을 찍었으니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가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했다. 어제와 같은 식당이었지만, 메뉴가 달랐던 것이다. 사실 다른 메뉴를 시킬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고만고만한 메뉴였더라면 아쉽지 안았을 텐데, 오늘 주문한 메뉴는 매우 다양한 구성과 풍성한 양에 대만족을 하여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다. 어제도, 오늘도 훌륭한 메뉴였다. 내어놓는 것마다 고객이 감동하는 수준이니, 이건 뭐 고객을 '섬기는' 수준이다. 같은 식당에서, 좋은 메뉴를 능가하는 더 좋은 메뉴를 내어놓을 수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나도, 스스로를 놀라게 하는 나를 만들어내고 싶다. '어제의 나'를 시시하게 만드는 '오늘의 나'를 창조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

2~3일 동안, 이런 생각만 하며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일상을 살고 있고, 일상 속에 문득 이런 단상을 하는 게지요. 말하자면,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사색이 조금 엉성하거나 억지스럽지요?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글을 쓰는 이튿 날, 아침 식사를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찾으려는 나의 노력은 가상하나,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는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당한 고통의 의미를 살피는 것이 제일로 중요할 터인데, 저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극도의 절망도 의미를 발견함으로 상황을 재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지만, 의미를 발견하는 그 과정이 힘겨울까 봐 겁먹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직면할 것입니다. 저는 성장하고 싶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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