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다시 태어난다면...

카잔 2011. 2. 18. 12:59

종종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존 콜트레인이나 스탄 겟츠처럼 테너 색소폰을 연주하고 싶습니다만, 그들처럼 유명한 뮤지션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제 밥벌이를 할 정도면 됩니다. 그 때에도 부유하지 않은 삶에도 만족할 수 있는 영혼을 지니고 싶습니다. 그래야 오늘을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미래를 준비하거나 내일 일을 염려하느라 소중한 오늘을 놓치고 싶진 않습니다.

사이판이나 팔라우에서 보았던 관광객을 위한 음악공연에서도, 크로아티아와 독일의 어느 골목길에서 거리의 악사를 보았을 때에도 나는 강렬한 느낌에 휩싸였습니다. 음악에 몰입하고 있는 저들의 영혼이 부러웠습니다. 그들의 무대에 선 모습만을 동경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대 뒤의 삶이 외롭고 쓸쓸할 수 있으며, 그들의 주머니가 꽤 가벼울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가난이 어떠한 것인지 모르지도 않지만, 오래 전부터 저들의 삶을 갈망해 왔습니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오지에서 태어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반드시 대한민국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이번 브라질 여행을 하며 처음으로 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 비해 쉽게 소비를 한다네요. 내일에 대한 걱정이 적고, 오늘을 즐기는 편이라는 것이 이곳 교포들의 이야기입니다. 삶의 방식에는 느긋한 여유가 있습니다. 생산성으로 따지면 속이 터질 수 있지만, 삶의 질로 따지자면 부럽기도 합니다.

상파울로에서 만난 어떤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모두들 똑똑해! 다 같이 똑똑하니 모두 함께 (경제적으로) 못 사는 거지." 그는 스무 살에 브라질로 이민 와서 사업에 성공한 한국 교포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의 문화는 학력과 지식을 지나치게 중요시하고, 생산성을 높은 가치로 여기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학력이 높고 똑똑해도,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교육 투자는 어느 정도는 무익할지도 모릅니다.

삶의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얻는 것일까요? 책에도 있겠지만, 다른 곳에도 있습니다. 학력이 높은 사람에게도 있겠지만, 학교를 짧게 다닌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나는 울산에서 책을 잘 읽지 않는 지혜로운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삶을 읽어내는 법을 터득한 분이셨고, 나는 책을 읽는 법을 터득한 청년이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가졌고, 서로의 생각에 감탄했습니다. 우리는 자아도취가 아닌, 새로운 배움의 방식에 취하여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분도 저도, 서로에게 선생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우리는 서로 배웠습니다. 배움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자기 삶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힘겨운 순간에도 도망가지 않으면 인생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때로는 값비싼 수업료를 치르기도 하지만, 산다는 것 자체가 인생 수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때로는 책보다 인생이 우리에게 훨씬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잠시 책을 덮고 자기 인생을 살피기도 해야겠지요.

나는 인생 수업을 통해 힘껏 배우는 재즈 뮤지션이 되고 싶습니다. 참 행복한 생을 살다 간 뮤지션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지식은 몰랐지만, 삶을 행복하게 살고 이웃과 따뜻하게 공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몸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고. 도덕적으로 살았지만 자신의 도덕 기준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는 않았다고. 신을 섬겼지만, 교리에 얽매이기보다는 신이 베푸신 자연의 축복을 한껏 누리며 살았다고.

종종 십대에 만났던 음악을 들으면, 나는 그 시절에 지녔던 순수함이 이제는 내 안에 없음이 조금 슬픕니다. 이럴 때마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설경구 분)가 떠오릅니다. 그가 첫사랑 순임(문소리 분)의 허벅지를 만지던 자기 손을 쳐다보는 장면도 떠오르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마지막 장면도 떠오릅니다. 저도, 영화 속 김영호도 '순수했던 지난날의 나'를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푸른하늘'의 노래들, 변진섭의 노래들을 들으면 그렇습니다.

내가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좀 더 순수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읽으며 배울 줄 아는 '영혼이 맑은' 재즈 뮤지션이면 좋겠군요. 삶을 읽을 줄 아니, 어디를 가더라도, 어떤 삶을 살더라도 배우며 성장할 터이고, 영혼이 맑으니 행복과 소중한 사람을 얻을 테니까요. 생각하니 마음에 뜨거운 것이 차오릅니다. 눈물, 아닙니다. 희망입니다. 지금의 생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소원 하나를 보태면, 다음 생에 대한 제 바람은 끝이 납니다.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내가 아낌없이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둘의 사랑만큼이나 깊은 정이 생겨 영혼의 동반자가 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재즈 뮤지션을 사랑한 여인! 그런데 왜 재즈 뮤지션이냐구요? 글쎄요. 알 수 없는 끌림입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머리가 시키는 일과 마음이 시키는 일을 조화시키며 살아가고 싶지만, 결국 마음을 따르고 싶은 것입니다.

[PS] 내가 믿는 바에 의하면,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한 번으로도 족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살고 싶은 삶을 찾아 떠나라는 말은 옳습니다. 하지만, 재즈 뮤지션은 다음 생이 한 번 더 주어지면 살고 싶은 삶이고, 저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합니다. 이번 생에서 신이 내게 주신 것은 음악적 재능이 아니라, 학습력과 자기성찰적 재능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받은 재능에 화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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