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태풍이 찾아온 날의 단상 (3)

카잔 2012. 8. 29. 07:55

 

7.

다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밖으로 나가야 할 타이밍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바람이 강하지 않았다. 매우 강한 바람이 불면, 밖으로 나가겠다는 계획도 하염없이 미뤄졌다. 일하던 틈틈이 창가에 가서 타이밍을 모색하는 주기도 짧아졌다. 그렇게 수시로 창밖을 보다가 '이상한' 환경미화원을 발견했다. 이상하다고 말한 것은 아직 태풍이 본격적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는데, 계속 길거리의 나뭇잎을 쓸고 계셨기 때문이다.

 

쓸고나면 잠시 후에 또 다시 바람이 어지럽혀 놓고, 다시 쓰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무슨 생각으로 비질을 하시는지 궁금했다. 하루 종일 이렇게 쓸어 담으면 완전히 거리가 어지럽혀지지는 않겠지요, 라든지 혹은 내 상사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으니 어쩔 수 없죠, 라든지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는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왜 내가 내려가서 직접 물어보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왜 나는 그때, 물어볼 생각을 못했을까?

 

이런 경우가 내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만 생각하느라 다른 하나는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 말이다. 그러다가 친구나 동료에게 얘기를 꺼냈다가 '이렇게 하면 되잖아"라는 말을 듣자마자 "아하! 그러면 되네"라고 번개같이 깨닫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8월 중에 창의력에 대해 강의한 적이 있다. 내가 강의한 바에 의하면, 전통적 사고 패턴에서 벗어나 새롭게 생각하는 힘, 창의력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나 의미 있는 질문을 품을 때 키워진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고민에 대해 대화하다가 그로부터 그의 대답은 곧 새로운 정보가 되어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창의력을 키우려면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는 등의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혼자 골똘히 사색에 잠기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인풋(In-put)하면서 생각할 때 창의력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사색하면 자신만의 익숙한 방식대로만 생각할 위험이 있다.

 

내가 내려가서 환경미화원 분에게 여쭤보지 못한 까닭은,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편안하지만, 성장하고 싶다면 종종 익숙함 대신 낯선 것을 택해야 할 때도 있다. 오늘이 그랬다.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환경미화원은 보이지 않는다. 기회는 종종 다시 오기도 하지만, 이처럼 쓰윽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8.

오후 3시. 예상했던 바에 의하면, 지금 이 시각엔 광풍이 몰아쳐야 하는데, 미친 듯 한 바람은 아니고 약간 센 바람이 불고 있을 뿐이다. 세찬 비가 없으니 덜 무섭기도 하다. 나가봐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 듯 하다. 너무 바람이 약하다. 내가 나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자연의 힘이 어떠한지 맛보고 싶어서다. 물론 그 힘을 맛보기 위해 더 센 광풍이 오기를 기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정도로 사회적인 인식이 결여된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도 인명피해, 재산피해가 없이 태풍이 지나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태풍이 오늘의 운명이라면, 나는 그 운명이 어떠한 것인지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얼마나 강하기에, 하루 전날부터 대비를 해야 하고, 서울시장이 폭풍카톡을 날려야 하는지 궁금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폭풍 전날 밤, 시민들의 안전 대책에 대해 여러 개의 카톡을 날리셨다.)

 

십 수 년 전의 밀양 여행 때, 우리 일행은 밀양 얼음골에 갔다가 호박소로 이동하려는 찰나였다. 폭우가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었고, 실제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하산했다. 나의 일행도 돌아가자는 데에 합의했다. 나는 호박소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아직 비가 거세지는 않았다. 예보는 틀릴 수 있고, 두려움은 항상 실제보다 커진 채로 확산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숙소 앞 삼거리에서 만나자고 말하고, 홀로 호박소로 향했다.

 

입구에서는 내려오는 사람들을 만났지만, 호박소 진입소로 들어서니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호박소는 계곡 중에 작은 폭포가 웅덩이를 만들어 놓은 곳이다. 당연히 호박소로 가는 길은 계속을 따라난 길이다. 나도 겁이 났다. 폭우가 내리치면 계곡 물이 순식간에 불어날 테니까. 나는 빗줄기가 굵어지면 즉시 달려나간다는 단순한 계획을 세우고서 내가 온 길을 거듭 머릿속으로 그리며 호박소를 향했다.

 

무서움이 커질수록 짜릿함도 커졌다. 나는 그때, 인간의 나약함에 대해서 그리고 자연의 웅대함에 대해서 피부의 땀샘과 모공 사이사이까지 깊숙이 느꼈다. 실제로 무서웠으니까. 빗방울이 떨어질 때, 하지만 아직 내가 철수하기로 한 정도까지는 빗방울이 굵지 않았을 때에는 무서워서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그 이후, 내려오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올라가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의 형상은 내게 '자연의 위대함'의 상징이 되었다.

 

결국, 나는 호박소 앞에 섰다. 가는 빗줄기가 내 머리와 얼굴을 적셨고, 그것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여전히 내 안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언제 폭우가 쏟아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그곳은 깊은 산속은 아니지만 계곡이니까. 무엇보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도 두려움을 키웠다. 실제 안전과는 상관없더라도 무리 속에 있으면 심정적으로 안전감을 느끼니까. 사실 그것이 진짜 무서운 것이다. 무리 속에서 느껴지는 안도감,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한 상태!

 

나는 무사히 일행을 만났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쓰고 있었고, 일행은 우산을 쓰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이미 가랑비에 옷이 젖었다. 나를 보자, 그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나만의 느낌인지도 모르겠지만, 당시의 우리는 우정이 두터운 사이였다. 아직 예약한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아 우리는 여유롭게 이동했다. 내가 승전가를 부르며 모험담을 펼쳤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저 내게는 소중한 경험이다.

 

결론적으로 나의 모험은 위험하지 않았다. 폭우가 내리지도 않았고, 물도 불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일행들도 나를 따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과정에서는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 자기 가치대로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이는 모험 지향적으로, 어떤 이는 안전 지향적으로. 다만, 자기 방식대로만 살아갈 때 결여될 수밖에 없는 가치를 가끔씩 추구하는 용기를 발휘하면 된다.

 

내가 태풍을 기다린 까닭은 제2의 호박소 체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끝내 태풍은 오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서해를 빠져나갔다는 기상 뉴스가 들려왔다. 호박소에 갔던 날도, 오늘 태풍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예보는 빗나갔고, 사람들의 입을 거치면서 위기감은 증폭되고, 우리는 거하게 대비를 했다.

 

이것은 기상청 탓이 아니다. 대비를 철저히 한 것도 잘못이 아니다. 기상청 입장에서는 피해의 최소화가 우선이니, 작은 위험이라도 큰 소리로 알려야 한다. 다만 일부의 사람이 작은 위험이 온다는 큰 목소리를 듣고서, 그것을 큰 위험이라고 해석할 뿐이다. 사실이 그대로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 누군가의 해석이 더해지니까.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역시 사실을 듣자마자, 사실이 아닌 해석으로 바꾸어 자기 마음에 저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예보가 빗나갈 경우는 기상청 잘못이 아니지만, 태풍이 지나간 실제진로를 조작하여 발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것은 신뢰에 직격탄이니까. 기상청이 실제진로 조작 의혹을 받고 있다. 기상청 믿을 만한가에 관심있는 분들은 30일에 발표된 기사를 참고하면 되겠다. 아직 정확한 사실 파악이 이뤄지지는 않았기에 판단은 유보한 채 읽는 걸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8/30/2012083000169.html)

 

9.

태풍 볼라벤으로 인해 경제적인 손실과 인명 피해가 심했던 지역이 있었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하지만 서울 지역의 피해는 미미했다. 태풍이 다녀간 이튿날 아침, 카톡 메시지 하나가 왔다. 볼라벤이 심경 고백을 했단다.

 

볼라벤 심경고백 “ 기다려준 팬들에게 죄송 ...”

많은 국내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입국한 볼라벤이 컨디션 난조로 기다려 준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남겼다. 볼라벤은 국내 입국 전에 뜻하지 않게 오키나와에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여 예상 밖의 활동 모습을 보이며 국내 팬들에게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다음에 내한시에는 꼭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을 다짐하며 다음 스케줄인 북한으로 바쁜 걸음을 옮겼다. 한편, 볼라벤의 극성팬들은 볼라벤의 내한을 기념하며 밤새 신문지를 유리창에 붙이는 플레시몹을 선보여 눈길을 샀다.

 

나는 이 글이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는 불평했을지도 모를 사실을 유머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란, 엄청난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심적 실제적 준비를 했지만 그런 태풍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에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한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이것보다 더한 모습을 얼마나 많이 취하는지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태풍은 실제로 왔다갔다. 하지만 우리는 오지도 않을 일에 움츠러들고 두려움을 느끼니까.

 

그래서 나는 볼라벤의 심경고백을 쓴 사람의 접근방식이 좋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데 결국엔 그 모든 일을 허허 웃으며 넘기고, 유머로 승화하여 사람들에게 웃음을 전하고, 자신 역시 그런 일들로부터 인생살이와 사람에 대해서 배워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태풍이 왔던 오늘은 내게도 좋은 날이었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글을 썼으니까. 볼라벤으로 인해 채색된 오늘 하루, 볼라벤에게 보내는 글로 마무리한다.

 

볼라벤, 고맙소! 당신 덕분에 나는 약속이 취소되었고, 덩어리 시간을 얻었고, 특별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소.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강하게, 우리에게서는 약하게 지나가 준 것도 고마워하고 있소. 어쩌면 당신도 나이가 들어가며, 짧은 생을 강렬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다른 이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사는 게 거 중요하다는 걸 배워가고 있는 것 같구먼. 조금만 더 일찍 깨달아 제주에서부터 적용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은 갖지 않겠소. 내 욕심이 끝도 없어질라 하니 말이오. 부디, 남은 생은 깨달음을 실천하며 사시기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