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6일째 편도선염을 달고사는 중

카잔 2012. 9. 16. 11:50

 

 

편도선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날이 지날수록 세력이 더해지더니 발병 6일째인 오늘, 목이 따끔하다. 침을 삼킬 때에는 식도 전체가 꿈틀거리고 얼굴이 찌뿌려진다. 참기 어려울 만큼의 따가움은 아니지만 침을 삼킬 때마다 아프다. 하지만 나는, 안일함 혹은 아직은 괜찮다는 어리석은 낙관으로 아직 병원에도 약국에도 가지 않았다.

 

인간의 감정은 복합적이다. 생각이란 것도 비합리적이기 일쑤다. 몸을 아끼는 나의 보신주의 역시 서로 다른 극단의 모습을 갖고 있다. 나는 음식 선택이나 식사량 조절은 잘 하는 편이다. 입이 아닌 몸이 원하는 음식을 먹으려고 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기 위한 노력한다. 아침:점심:저녁 식사를 2:3:1로 맞추려고도 한다. 

 

몸이 아플 때에는 나의 보신주의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왠만한 아픔은 참는다. 신체의 회복 능력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탓에 병원에 가기를 꺼리고 약을 먹을 줄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낫겠지, 하며 자가 진단을 내린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도 자기네 이익에 따라 움직이겠지만, 질병과 신체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아니까.

 

병원을 꺼리는 가장 큰 원인은 내가 어릴 시절에 한 번도 엄마 손을 잡고 병원에 다녀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는, 중산층이 아닌 빈곤층 자녀들이 권위가 이써 보이는 사람들과 편안하게 대화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적다는 내용이 나온다. 나는 이 내용에 깊이 공감했다.

 

물론 가난한 아이들이 가진 미덕도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자신의 시간을 더욱 창의적으로 사용하고 독립심이 강하다. "부유한 부모들이 아이들의 자유 시간에 깊이 개입해 아이들을이 학원, 저 학원으로 실어나르고 선생, 코치, 친구들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 반면, 가난한 부모들은 어른들의 세계와 분리되어 살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이 가지는 장점과 약점 모두를 나 역시 가졌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약점이 많이 옅어졌지만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의사나 선생님 앞에서 내 의견을 제대로 말할 줄 모른다. 무서워서가 아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이고, 나의 부모가 그들과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병원이나 약국 가기를 힘겨워하는 까닭 중 하나는 이렇듯 나의 가정 환경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원인은 복합적이다.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 나의 삶은 상실의 연속이었다. 아버지와의 사별, 엄마와의 사별, 고등학교 내 친구와의 사별, 중학교 은사님과의 사별 그리고 노트북 데이터의 상실, 여행가방 분실 등.

 

나는 상실의 아픔을 겪으며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교훈을 배웠다. 언젠가는 내 모든 사람들, 소유물들과 이별한다는 것 말이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하나둘 헤어지는 것, 그러다가 언젠가는 한꺼번에 이별하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방금 손목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팔목으 한 번 문지른 후에 계속 자판을 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 시계와도 헤어지겠지. 잃어버리거나,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혹은 내가 이 놈을 남겨놓고 훌쩍 떠나거나. 이런 과정이 인생이지.'

 

나는 인생의 유한함을 자주 말하는 편인데, 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싫지 않다. 슬프거나 무상하지도 힘겹지도 않다. 불만스럽지도 않다. 그저 담담하다. 결연하거나 비장하지 않으면서,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는 것이 곧 용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상실의 경험을 통해 배운 고마운 태도다.

 

불평하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이러한 태도는 어디를 다치거나 아플 때에도 발휘된다. '이것이 인생이지. 살다보면 어디가 아픈 것은 당연하지. 세월이 지나면 아픈 곳도 하나 둘 늘어날꺼야.' 이것은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고 불평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는 점에선 나쁘다.

 

두어 달 전, 한의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나는 사상의학 체질검사를 하러 갔는데, 진료 전 한의사 선생님이 어디 아픈데가 없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깨가 자주 결리긴 하지만, 다들 이런 것 하나 둘은 안고 살잖아요." 하고 애늙은이 같은 소릴 했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 안고 살아요? 고쳐서 살아야지요." 당연한 대답인데, 내겐 충격이었다.

 

나는 또 하나의 태도를 배워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두 가지의 태도를 조화시켜야 했던 것이다. 하나는, '이것이 인생이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에 불평을 담지 않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치료할 수 있는 것들은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서 불필요한 고통을 더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엔 아픈 곳이 있으면 약을 사 먹거나 병원에 가려고 노력한다.

 

병원에 가기를 힘겨워하는 것에는 나의 성향이 기여한 점도 있다. 몸의 반응에 예민하지 않는 편이고, 지금의 고통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내일이 되면 나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비중을 두어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날이 되어 고통이 더해져도, 다시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가 이어지는 것이다. 편도선염을 6일째 달고사는 이유다.

 

사실, 병원에 갈 여유가 없을 만큼 바쁘기도 했다. 하지만 바쁘다는 것은 이번의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이니 앞서 말한 환경적, 기질적, 학습적 원인들로 인해 생긴 병원 기피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이유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생각만으로 그치고 싶지 않다. 의지를 발휘하여 실천해 보고 싶다. 나는 이번 주 할일 목록에 다음의 것들도 적어넣었다. 

 

- 이비인후과 진료받기 (이비인후과에는 난생 처음 가 보겠구만.)

- 어깨결림을 위해 해당 병원에 가기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까? 찾아봐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