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그저 인생살이의 일부일 뿐

카잔 2012. 11. 1. 19:13

 

지난 9월의 어느 날, 한의원에 갔었다. 맥만 짚는 게 아니라 엑스레이 검사, 체열 검사 등과 같은 양의 치료도 함께 진행하는 어깨통증과 오십견 전문 한의원이다. 엑스레이 촬영사진을 보면서 설명을 들은 결과, 나의 증상은 '회전근개파열'이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어깨와 등이 자주 아팠다. 그저 PC 작업을 많이해서인 줄 알았는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던 게다.

 

이 정도면 10년 가까이 진행된 겁니다, 많이 아팠을 텐데 왜 이제 왔어요,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괜찮아요 등과 같은 말들을 원장 선생님은 친절하게도 들려 주었다. 그동안 좀 아프긴 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아픔은 누구나 안고 사는 게 아닌가' 라는 습관적인 결론으로 그냥 지내왔다. PC 작업을 하다가 자주 스트레칭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하면서. 

 

이후 일주일에 두번씩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3개월 동안 꾸준히 다녀볼 생각이다. 사실 조금 나아졌다는 이유로 10월 중순에 조금 뜸했는데 다시 통증이 찾아왔다. 그후부터는  빠뜨리지 않고 1주일에 두 번씩 갔다. 시간도, 교통비(꼴랑 2,100원인데)도 아깝다. 아직 정신을 덜 차렸나 보다. 건강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것임을 또 잊었으니.

 

꽤나 유명한 한의원이라 내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침을 맞고 있노라면, 다른 분들의 침 맞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서로들 직업도, 가치관도 다르겠지만 비슷한 것이 있다. 50~60대의 어른들이라는 것. 물론 30~40대도 있지만 소수다.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든다. 건강관리를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젊은 놈이 여길 왜 왔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분도 둘 계셨다. 

 

나는 왜 이 모양이 됐을까?  너무 많이 써서 닳아서 그래요. 첫 진료 받는 날, 원인이 무엇이냐는 내 질문에 대한 원장 선생님의 답변이다. 너무 많이 썼다고요? 네, 근육을 많이 쓰면 당연히 닳지요. 야구 선수나 골프 선수들의 근육 보세요. 그는 프로야구 선수 한 명도 당신께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유명한 현역 마무리 투수다.

 

근육을 쓰면 닳는다는 것은 처음 인식한 사실이었다. 근육을 안 쓰면 근력이 약해진다고만 생각했지 많이 쓴다고 해서 닳거나 끊어진다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어깨에 있는 가장 큰 근육인 나의 회전근개는 원장 선생님의 표현대로라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나는 어디에 그렇게 많이 쓴 걸까? 너덜해질 정도로 말이다. 


학창시절에 미친 듯이 운동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 오늘 그 심증이 더해진 일이 있었다.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 일이다. 한의원에 30대도, 20대도 아닌, 10대 여학생이 온 것이다. 고등학생이 왜 왔을까? 궁금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지만 학생의 어머니와 한 아주머니가 대화 나누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학생은 리듬체조 선수인데, 하루에도 7~8시간씩 운동을 한단다. 어머니 말로는 정말 너무너무 열심히 한단다. 말려도 안 된단다. 침 맞을 때 눈물을 툭 떨어뜨리면서도 신음 한 번 안 내고 참는 녀석을 보니, 어머니의 과장된 표현만은 아닌 듯 싶었다. 학생은 팔을 옆으로 들어올리지 못했다. 회전근개 쪽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에고, 너무 많이 써서 엄청 닳았나 보구만. 하지만 젊으니까 금방 회복할거여. 학생 앞에 앉아 있던 아저씨의 말이다. 많이 쓰면... 닳.는.다. 이 말을 되새겨보았다. 닳는다는 말은 한의원을 오갈때마다 떠오르는 말이긴 했다. 살수록 늙어가는 것과 비슷한 말로 들렸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 사람의 신체에도 적용이 되는구나 싶은 요즘이다. 


삼십 대 중반이 되니, 머리카락이 눈에 띄게 빠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내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M자형 대머리였다.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나의 미래였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지만, 현실을 외면할 순 없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조금씩 늙어간다는 것이다. 하나 둘 아픈 데가 늘어가고, 몸이 예전같지 않아지는 것.


노화가 진행되기 시작한다는 25세. 그 이후 10년이 지나니 탈모가 눈에 띈다. 다시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 체력이 예전만 못할 것이다. 다시 10년이 지나면 시력이 많이 떨어질테지. 다시 10년이 지나면 나긋나긋한 무릎과는 이별한 후가 될 것이다. 또 다시 10년이 지나 75세가 되면 나와 나의 아내는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을까? 


보행의 자유를 누리고 있으면 좋겠다. "죽는 날까지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소중한 걸 대라면 서슴치 않고 보행의 자유를 대겠다"는 박완서 작가의 단편 <그리움을 위하여>의 한 구절이 준 영향 때문이다. 이 생각을 하니, 무릎이 아픈 것보다 어깨가 아픈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더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 모두 안 아픈 게 제일 낫지.


한의원을 나와 지하철역에 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사람들을 멀리서 보면 모두 건강해 보이지만, 내시경이나 엑스레이로 살펴보면 질병이나 질환들을 하나씩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진 않다. 비극이 아니라 그저 인생의 일부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