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

카잔 2014. 11. 30. 07:59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세상에 없다고 상상하니 무서워요.” 그녀가 말했다. 우린 인생에 대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고, 나는 존경했던 분과 사랑했던 친구와의 사별 이야기를 막 마쳤던 터였다. 카페에는 손님이 많아져 시끄러워졌고, 커피잔은 비워진지 오래였다. 나는 무섭다는 표현이 반가웠다. 한동안 나를 뒤흔든 감정이 다름 아닌 두려움이었으니까.

 

“맞아요, 무서워요.”

“뭐가 무서웠어요?”

“친구가 세상을 떠난 것은 지독한 슬픔인데, 살다보면 그보다 더한 일도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사실이 무섭죠.”

“그런 일이 뭐가 있죠?”

“절대로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내 눈 앞으로, 이십 이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엄마와 딸을 잃은 외할머니가 총알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내가 암에 걸릴 수도 있겠죠. 암은 정말 무서운 질병이예요.”

 

14개월 전, 내 친구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한 달 후 수술이 진행되었다. 젊어서 몸이 버텨낼 거라는 의료진의 판단이었고, 생을 향한 의지가 확고한 친구의 동의가 뒤따른 결정이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4기 상태에서의 성공이란, 완쾌나 쾌유를 보장하지 못한다. 눈에 보이는 암 덩어리를 비교적 깨끗이 떼어냈다는 의미일 뿐, 암이 다른 기관으로 전이된 상태가 4기다. 개복 수술은 마취가 끝난 후 극심한 통증을 부른다. 친구는 고통스러워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아팠다. 그의 고통이 나의 신체로 들어온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막역한 친구였다. 마음이 몹시 아팠다. 병실에 들어서기 전후로 수없이 눈물을 흘렸던 날들이다.

 

수술 두 달 후, 친구와 나는 대구 교보문고에 갔다. 친구의 첫 장거리 외출이다. 완쾌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에 부푼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내게 명품 볼펜을 선물했다. “너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었다”는 말을 하더니 한참을 고심하며 볼펜을 골랐다. 볼펜도 마음에 들었지만, 그 날을 기념할 수 있는 물건이 생겨 기뻤다. 친구는 수술 후 그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반 고흐를 좋아했다. 나는 그에게 고흐 그림이 많이 실린 책을 선물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셨다. 행복한 맛이었다.

 

친구는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폴폭스, 젬스타빈 모두 효과가 없었다. 친구의 몸과 마음이 모두 연약해지는 모습이 눈에 띌 정도였다. 암이라는 질병 앞에 인간은 무기력하고 나약했다. 의지를 보였던 친구도 인간이었다. 수술 후 8개월만에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볼펜이 친구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녀석의 미소가 그립다. 영원히 그리울 것 같다. 선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데, 그저 어딘가에 살아 있기만 해도 좋은데... 나쁜 자식!

 

암은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 간다. 사랑을 빼앗고, 우정을 빼앗는다. 추억과 기억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암 덩이를 품은 주인에겐, 차라리 죽는 게 나으리라 싶은 고통을 준다. “암은 정말 무서운 질병이예요”는 이런 상실과 아픔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암보다 더욱 무서운 것이 인생이다. 인생은 암보다 더한 고통마저 선사하곤 하니까. 한동안 내게 인생은, 온갖 혹독한 고통을 지니고 있다가 사람에게 하나씩 던져 주는 고약한 난봉꾼이었다. 고통과 화해하면서 지혜로 승화시킨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인생은 선생이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그녀가 묻는다. 나라고 알 길이 없다.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가장 친한 친구가 속초에 있다고 했죠? 그 분이랑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초 친구가 떠오른 것인지, 내 이야기가 슬퍼서인지, 눈가가 촉촉해진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둘이서 시간을 보낼 때였어요. 친구 첫 직장이 베니건스였어요.” 머릿 속에 당시 동성로 대구백화점 맞은편 버거킹 2층 베니건스 매장이 생생히 그려졌다. “친구가 마치는 시간이 10시인데, 그때 만나서 새벽 한 시 두 시까지 같이 놀았지요. 고기를 구우며 술잔을 부딪치기도 하고,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둘이 있어도 혼자 있는 것처럼 편안한 사이였습니다. 한 번은 창가를 바라보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창밖 어두운 거리를 쳐다보며 말없이 90분을 보내기도 했죠. 그 친구도, 나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나 봐요. 제가 워낙 자주 베니건스에 가다보니 한 두 직원은 저를 알아봐요. 그 날도 퇴근 시각 맞춰 베니건스 밖을 서성이는데, 나를 아는 직원이 친구에게 제가 왔다는 걸 일러주었나 봅니다. 제 친구가 테이블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달려오는 거예요. 너무나도 반가운 표정으로 환히 웃으며 말이죠. 족히 이십 미터는 넘는 거리를 신바람을 타고 뛰어 왔어요. 제가 보았던, 나를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남자의 미소였습니다.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이 얘기를 해 주었지요. 그날 무지 행복했었다고. 하지만 제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날들이 줄었습니다. 퇴근 후 우정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행복을 잊고 살았던 십년이 아쉬워요. 으뜸 친구와는 자주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데 말이죠.”

 

서울로 오면서 우정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더욱 돈독했고, 보고 싶어 했고, 자주 만났다. 밤늦게 일을 마친 친구가 차를 몰고 서울로 올라온 적도 있었다. 새벽 1시 넘어 만나, 함께 놀다가 새벽 5시에 다시 내려갔다. 졸음이 몰려왔을 테니 위험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정말 보고 싶어서 생각없이 왔다”는 녀석의 말에 가슴이 짠했던 추억이다. 내가 대구에 내려갈 때마다, 친구는 전속 기사라도 된 양, 동대구역으로 차를 몰고와 나를 마중했고 배웅했다. 대구에 내려간 사실을 아무에게 알리지 않을 때에도 친구와는 연락을 했다. 아니 친구만 만나고 온 적도 여러 번이다. 둘이 보낸 시간이 많을수록 둘은 각별해진다. 다른 누구와는 친밀하게 얘기하기 힘든 둘만의 사연도 많아진다. 그래서 절친한 벗을 잃는 것은 내 인생의 일부, 나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고통스러운 상실이다.

 

나는 머잖은 날에 그녀가 속초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삶이 안타깝거나 부족한 게 보여서가 아니다. 누구나 지금보다 더 행복할 수 있고, 절친한 친구가 큰 행복감을 선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속초 친구가 서울로 와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니라 ‘그 사람’과의 만남이니까. 그를 만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많이 웃는 시간을 가지는 것. 그리하여 친밀함을 쌓아가는 과정! 나는 그것이 기쁨 중의 기쁨, 최상의 행복이라고, 살면서 점점 더 믿어가는 것 같다.

 

 

 

[작가노트]

 

흰 눈과 함께,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이 떠오르는 시기, 연말입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보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그와 함께 긴긴 밤의 일부를 떼어내어, 포근한 술집에 앉아 잔을 주고 받고 싶습니다. 관계지향적 연말을 위하여! 내 친구도 떠오릅니다. 자연스럽게 하고픈 말을 쓰게 되네요. 전해지지도 못할 말을.

 

보고 싶다, 친구야! 네 미소가 몹시 그립다. 그래서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끔씩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으니까. 그리고 남은 생을 살아갈 내게는 너 같은 친구를 다시 만나야 하니까. 언젠가 너를 떠올리면서, 너무나도 짧았지만 그 함께함 자체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 올까? 자신은 없다. 스물 두 해가 지난 엄마와의 사별을 여전히 야속해하는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