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애호가로 산다는 것

카잔 2015. 1. 5. 09:58

 

나는 애호가다. 애호가와 전문가는 다르다.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다.

 

애호가는 ‘어떤 사물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다. 애호가에게 중요한 것은 태도다. 지식은 위대한 애호가가 되는 데에 도움을 주지만, 보통 수준 이상의 애호가가 되는 데에는 좋아하는 열렬한 마음이 더 중요하다.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대체 무엇을 만나는가? 사람을 많이 만나는 듯하나 실제로는 숱한 사물과 풍경을 만난다. 사전의 정의로도 만남은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눈앞에 대하다’는 뜻도 가졌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안경부터 만난다. 이후엔 방안의 풍경을 만나고, 곧이어 한 잔의 컵과 그 속에 든 물을 만난다. 곧이어 음식을 만난다. 출근하기 위해 옷을 만나고 가방을 만난다. 책과 볼펜을 만나고 교통수단을 만난다. 세상은 온갖 만남의 장이다.

 

애호가가 되어보지 못한 이들은 사물을 관찰하거나 일상을 사랑하는 법을 익히지 못했으리라. 나는 그리 생각한다. 애호품을 늘려가는 것이 삶의 기쁨을 높이는 길이라고도 생각한다. 모든 애호가가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애호 목록에 반드시 ‘사람’을 포함해야 한다고 믿는다. 애호 목록의 가장 윗자리에 사람을 두는 것이 곧 휴머니즘이 아닐까.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내겐 마법 같은 질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좀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사랑의 묘약이라도 되는 듯, 그것을 더욱 아끼게 한다. 쓰다듬게 하고, 바라보게 만든다. 원래도 좋아했던 것인데 더욱 예뻐 보인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어를 체험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애호가는 애호의 정도에 따라 3단계로 나뉜다. 첫째는 관심의 단계다. 마음이 끌려 주의를 기울이는가? 둘째는 감식의 단계다. 가치와 진위를 구별하는가? 셋째는 표출의 단계다. 삶으로 드러나는가? 서른 살의 나는 와인에 관심이 있는 정도였다. 자꾸 마시다 보니 좋은 와인을 구분하게 되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내가 와인을 좋아한다는 걸 안다.

 

물론 싫어하는 것들도 있다. 나는 분리수거를 하지 않거나 자기 애완견의 배설물을 오피스텔 복도에 방치하는 행위를 싫어한다. 록 음악은 내 스타일이 아니고, 헤비메탈은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에 관심을 둘 시간이 없다. 좋아하는 것들을 더욱 누리고 음미하는 시간으로만 삶을 채우고 싶다.

 

애호가가 되니 맛, 풍류, 인생을 더욱 음미하게 된다. 음미하면서 순간을 붙잡는다는 것의 의미도 알아가고 있다. 새해 초,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가? 물건, 장소, 가치, 인물, 예술 등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떠올랐다.나는 그것들의 애호가다. 내가 애호하는 것들을 되살피고 보듬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