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봄꽃은 어찌 그리 아름다울까

카잔 2014. 12. 2. 14:10

 

어제 받은 두 통의 메일이 한동안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사실 조금 울먹이기도 했다. 전자우편을 보내신 분은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 사셨지만, 메일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틀 전 "너를 빨리 잊어야 한다"라는 제목의 친구 잃은 상실감을 담은 글을 썼다. 두 분은 나의 상실감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하셨다. 비결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분들 역시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으신 분들이셨다.

 

한 분은 "형제보다 더 가까운 내 친구"를 사고로 떠나보냈다. 다른 한 분 역시 "마음에 늘 첫째였고 유일함이었던, 많이 사랑했던 친구"와 어느 날 갑자기 사별하셨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사람은 두 문장을 읽고서 울컥하거나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르겠다. 우정의 상실이 얼마나 크고 어떠한 고통인지 잘 알기에. (지금 내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책으로 만난 삶의 스승들에게서 배운 지혜 하나가 있다. 고통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감을 강화하다는 것. 아픔을 겪을 때마다 그 아픔을 무시하지 않고 정면으로 통과해온 사람은 세상의 수많은 아픔 중 하나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겪는 사람의 마음을 잘 느끼고 헤아린다. 고통은 이렇게 유대감을 강화한다. 메일을 보낸 분은 나의 진솔한 글들이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고 쓰셨다. 그 말씀을 되돌려 드리고 싶다. 나도 그분의 메일로 위로를 얻었다.

 

어제 블로그 포스팅에는 이런 비밀 댓글이 달렸다. <위로가 안 될 말이겠지만, 그리 각별하고 절친한 친구와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감사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런 친구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나는 이렇게 화답했다. <예상하신 대로 위안이 되지는 않지만(^^), 짧게나마 각별한 우정을 맛보았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는 지혜를 더욱 곱씹도록 만들어 주는 댓글이군요. 아직 그 지혜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지만, 당신의 댓글이 받아들일 시기를 앞당겨 줄 것 같습니다.> 

 

그 댓글은, 나도 생각했던 바였지만, 다른 이의 글을 통해 전해 들으니 새삼 느낀 것이 많았다. 내게 감사한 대목도 많음을 상기하게 되었다. 친구와의 우정이 참으로 진하다 보니, 영원하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세상 그 어떤 것이 영원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면, 소중한 사람이나 중요한 것들이 내 곁에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어머니와 선생님은 (내가 느끼기로는) 찰나의 순간만을 함께 했을 뿐이었다.

 

나는 관점을 바꾸기로 마음 먹었다. 육십 대, 칠십 대까지 함께하지 못해 안타깝고 억울했던 것이 나의 심정이었다. 이제는 짧지만, 정말 억울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함께 했던 날들을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눈물이 난다. 그래도 조금만 더, 라는 생각이 눈물과 뒤범벅이 된다. 아!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봄꽃이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힘듦을 겪고 있는 와우에게 전화했다. 씩씩하게 잘 헤쳐나가 달라는 어제의 내 부탁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목소리가 밝았다. 고맙고 반가웠다. "어젯 밤에는 팀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잠들었어요." 그는 감정적인 사람이라, 힘들 때 생각하는 것은 부정적인 쪽으로만 흐를 것 같아 그리 당부했었다. 우울할 때에는 철학하지 말라는 니체의 금언을 염두하고서 건넨 말이기도 했다.

 

그의 목소리는 밝지만, 마음마저 밝을 수는 없음을 안다.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나도 밝은 목소리로 통화했는데, 전화를 끊자마자 나도 모르게 엉엉 울었다. 자기 상황에 씩씩해서 감동했던 걸까? 고통을 겪으면 타인의 힘겨움에 대한 감수성이 이리도 섬세해지는 걸까. 내가 잠시나마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된 것 같다. 얼른 눈물을 닦고, 송년회 준비에 대해 또 다른 와우와 카톡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