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토토가>로 떠난 추억여행

카잔 2015. 1. 11. 19:18

 

1.

나흘에 걸쳐 무한도전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시청했다. 나흘이나 걸린 것은 의도적 '노력'이었다. 아껴보고 싶었고, 그래서 하루에 두 세 가수만을 만끽했다. 정말 행복한 시청이었기에, 다음 가수의 공연을 더 시청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행복을 극대화하고 싶었고, 내일도 이 즐거움을 누리고 싶었다. 만족지연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인내가 즐겁기도 했다. ‘행복’과 ‘좀 더 짙은 행복’ 사이의 선택이었으니까.

 

2.

90년대의 음악을 사랑‘한다’. 최초로 좋아했던 가요는 이선희의 <영>(1986)이었고, 이후에도 이정석의 <사랑하기에>(1987), <여름날의 추억> 등을 좋아했지만 본격적으로 가요에 빠져든 것은 1990년이었다. 변진섭의 <숙녀에게>를 운명적으로 들었고, 90년대 초반부터는 조정현, O15B, 김원준, 푸른하늘,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 신승훈 등 가요를 즐겨 들었다. 90년대 중반에는 김민종, 룰라를 좋아했다. 당시의 나는 이팔청춘이었다. 학교 공부를 해야했지만, 공부는 감성을 채워주진 않았다. (사실 이성을 채워준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학교여, 미안!) 나는 노래를 듣고, 시를 쓰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지금도 비슷한 삶인 걸 보니, 노래도, 글도 내 인생의 친구 같다.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할 테지만.

 

3.

<토토가>는 타임머신이었다. 출연한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추억이 떠올랐다. 프루스트에게는 후각이 타임머신의 역할을 했지만, 내 후각은 신통찮다. 다행하게도 감성은 충분하여 나는 간주의 한마디, 아니 1초의 간주만 듣고서도 노래를 즐겨듣던 그때로 돌아갔다. 고등학생이 되었다가 대학생도 되었다. 옛날 집 방안이 떠올랐다가 친구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두뇌 뿐만 아니라 후각, 시각, 청각 등의 감각은 모두 기억의 조력자들이다.

 

김현정의 <그녀와의 이별>은 인스펙션(모임이름)에게 특별하다. 여행을 떠나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우리는 돈키호테였다. 2박 3일의 일정인데, 남해에 갔다가 김천에 갔다. "갈래? 그래! 됐나? 됐다!" 하여 여행지를 정했다. 밤새 놀고서도 다음 날 여행을 소화했다. 젊음 덕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금새 나이가 든다는 것도, 나이가 들면 밤샘 놀이를 은근히 피하게 된다는 것도. 어쩌면 어렴풋이 알았을 것이다. 이해하지는 못한 채로 어렴풋이.

 

4.

<토토가>에 대한 반응이 열광적이었으리라.

당연하다. 누구에게나 그리워하는 시절이 있을 테니까.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90년대일 것이고.

90년대 10년 속에는 저마다의 추억도 깃들었을 테고.

 

아름다운 추억을 대하는 반응은 두 가지다.

So Cool한 반응. 그들은 말한다. “재밌었지.” 그걸로 끝이다. 아쉬움도 적다.

감성부족인 것처럼 보이지만, 뒷끝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恨)스러운 반응도 있다. 그들은 생각한다.

'아! 그리운 날들.... 되돌아갈 수 없다니... 아!’

 

쏘 쿨한 반응에 비해 한스러운 반응은

온몸으로 느끼며 가슴으로 흐느낀다.

궁상맞다는 걸 알기에 말하지는 못하고 그저 느낀다.

안타까울 정도로 그리워하다가 심하면 슬퍼한다.

 

<토토가> 시청자들을

쿨(Cool)과 한(恨), 그 사이 어느 지점에서

웃으며 울며 방송을 시청했을 것이다.

나는 욕심쟁이다. 쿨과 한을 버무리며 시청했다.

 

혼자 춤을 추면서 시청했다. 즐겁고 기뻤다.

90년대는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살아있던 시절이다.

살았다 뿐이가. 함께 공부하고, 각자 연애하고, 어우러져 여행했다.

그리움에 빠져들 무렵 쿨이 ‘더 이상 슬퍼지려 하기 전에’를 노래했고,

나는 다시 웃으며 신바람을 즐겼다.

그리운 슬픔과 아름다운 기쁨을 모두 맛보았다.

 

가수들 중에도 한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아마도 이튿날 아침,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신은 행복하다.

그 누구보다 찬란한 추억을 가졌으니까.

 

5.

시청자인 나는 추억 타임머신을 타서 좋았는데, 노래를 부른 가수들은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나와 마찬가지 이유인 걸까? 그들은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이었다. 내가 짐작한 이유는 이렇다. 어떤 이는 더 이상 가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은퇴한 셈이다. 은퇴는 고약하다.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잃었지만, 정성들여 익힌 기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은퇴 후의 삶이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다. 은퇴 시에는 눈물이 날 만큼 아쉽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삶을 꾸리고 그것으로부터 새로운 기쁨을 얻는다. 가끔씩 옛 일이 생각나지만 지금의 삶을 살다보면 아쉬움은 잊혀진다. 그러는 동안에도 몸에 남은 기술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날 문득, 옛 자리를 만나면 튀어나오기라도 기다리는 모양으로 몸에 잠재한다.

 

<토토가>는 가수들의 삶 깊숙이, 몸 곳곳에 그 기술이 잠자고 있음을, 그리고 여전히 기술이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노래와 댄스는 그들에게 특별했다. 인기와 부를 안겨주었던 원천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젊음이었다. 시청자는 추억이라는 정신적 작용으로 과거로 떠났다면, 가수들은 온 몸에 각인된 기술을 흠뻑 체험하며 옛일을 음미했을 것이다.

 

나는 상상과 그리움이 아닌 온 몸으로 과거를 체험한 그들이 부러웠다.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했던 동료들과 함께 춤을 추며 온 몸을 땀으로 적셨던 날을 가졌던 그들이 부러웠다. 녹화 후 회식을 하며 여흥을 돋웠던 시간들이 얄밉도록 부러웠다. 그리고 눈부시게 찬란했던 추억을 가졌던 그들의 옛날들마저 샘났다.  

 

[덧]

* 나는 SES ‘슈’를 좋아하게 됐다. 그녀의 소탈한 반응과 아줌마 박수가 정말 좋았다. 그래서 SES 방송분을 건너뛰고 시청했다. 아껴둔 것이다. 흥에 취할 때마다 슈는 영락없이 아줌마였다. 나이는 막내라는데, 행동은 맏언니 같았다. 그 자연스러움이, 그 흥이 참 좋았다. 예전에는 관심 없던 SES였는데, 아줌마가 된 요정을 좋아하게 될 줄이야.

 

*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은 전율이었다. 언젠가 홍대 작은 공연장에서 인디 가수들의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많이들 알지만 당시엔 무명이었던 문명진이 그나마 알려진 가수였다. 그날 마지막 '깜짝' 게스트가 등장했다. 반주가 나오자마자 공기가 달라졌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이었다. 인기가요, 인기가수의 힘을 제대로 체험한 것.

 

* 정준하, 박명수의 진행은 아쉬웠다. 호흡이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초대 MC 이본을 전혀 살려주지 못했다. 대기실에서 유재석의 소찬휘 소개도 아쉬웠다. 예전 노래를 부르러 나가는 그녀를 본명 '김경희'로 불렀다. 감정이입하려는 그녀는 김이 빠졌는지 "본명 부르지 마요"라는 말에도 두 번이나 더 '김경희씨'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