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부부는 부창부수하며 산다

카잔 2015. 10. 12. 10:56

주말에 또 싸웠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 상스러운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언성을 높여갔다. 급기야 남편이 물건을 집어 던졌다. 아내는 앙칼지게 달려들었다. 옆집 얘기다. 이번에는 조용한 축에 속하는 싸움이었지만 훨씬 소란스럽게 싸우는 일도 잦다. 아내가 걱정도 되고 밤잠을 설치기도 해서 경비실이나 경찰에 신고하려다가 관둔 적이 여러 차례였다.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남편이 먼저 노래를 부르면 아내가 이에 화답한다는 말이다. (물론 아내가 선창하고 남편이 따를 수도 있겠다.) 나란히 길을 걷던 부부가 있었다. 남편이 노래를 흥얼거리자 곧이어 아내가 따라 불렀다. 며칠 전 내가 목격한 장면이다. 곁에 있던 나까지 행복감을 느낄 정도로 흥겨웠다.

 

서로 아는 같은 취향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는 쉽다. 흥겨운 기분이 전염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두 박사가 쓴 『행복은 전염된다』는 “친구가 행복하면 행복해질 확률이 15% 상승했다”는 사실을 폭넓게 설득한 책이다. 아쉬운 점은 불행 또한 전염성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행불행은 얼마간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의 원제가 『Connected』다.)

 

부창부수에서 수(隨)는 따른다는 뜻이고, '노래 부를 창'(唱)은 인도한다는 뜻도 가졌다.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이 사자성어가 노래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남편의 기분이 아내에게 전달된다, 남편의 지혜로운 결정에 아내가 기쁘게 호응한다, 이와 같은 모습들은 부창부수의 응용편이 될 것이다. 나는 최근 부창부수가 얼마나 고귀한 장면을 연출하는지를 경험했었다.

 

지난 주말의 일이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식당 주인이 공손하게 소리쳤다. “제네시스 차주 분 계세요?” 나의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던 40대 후반의 사내가 손을 들었다. 친구 부부와 함께 산행을 다녀온 옷차림이었다. 주인은 두 손을 배꼽 아래에 공손히 모으고 사내에게 말했다. “다른 손님이 주차하시다가 조금 부딪쳤나 봅니다. 한번 나가봐 주시죠.”

 

긁혔거나 찌그러졌을 차를 생각하니,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속상했다. 사내는 아내를 보며 “먹고 있어, 나갔다 올게”라고 말하고서 밖으로 나갔다. 친구가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두 사내가 돌아왔다. 제네시스 차주는 아쉬움을 묻어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됐냐는 아내의 물음에 남편이 대답했다. “범퍼에 살짝 부딪쳤어. 괜찮아.”
 
백미는 아내의 답변이었다. “그래, 범퍼는 부딪치라고 있는 거야.” 남편의 대수롭지 않음이 억지스러운 것이었다면 아내의 말에 표정이 달라졌을 텐데,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그들 테이블의 공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부창부수였다. 접촉 사고를 낸 사내가 테이블 앞에서 “죄송합니다”하고 공손히 사과하고 지나갔다.

 

세상 어디에나 부부들이 있지만, 그들 모두가 부창부수의 모습으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든, 부창부수(婦唱夫隨)든 서로 호응하며 살기가 쉽지 않음을 때때로 옆집 부부가 일깨워준다. 그들은 한 쪽이 먼저 화내면 배우자가 이에 호응하는 부창부수의 불행 버전이다. 부부들은 추하든 아름답든 부창부수하며 산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름다운 부창부수가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는 부부들도 존재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일은 수행자와 목격자 모두에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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