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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잘 살고 싶은 이유

카잔 2016. 2. 22. 11:15

나는 향유하는 독서가다

- 올해를 잘 살고 싶은 이유

 

나는 언제나 머무는 여행자였다. "거기 다녀왔다"는 결말보다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꼈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한 변화와 성장을 추구했다. 유럽 배낭여행을 할 때, 내 영혼을 붙잡는 도시에서는 예정보다 많은 날들을 보냈다. 오스트리아 빈, 체코 프라하, 독일 바이마르에서 7일씩 머물렀던 까닭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소재한 괴테 하우스에서는 여섯 시간을 머물렀다.

 

3층 괴테의 방에서 네 시간을 보냈다. 수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동안,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괴테와의 대화』를 읽었고, 가구들을 살폈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관광객이 아무도 없을 때에는 나무 의자에 슬쩍 앉아 쉬기도 했다. 괴테가 공부하는 장면을 그려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 어린 시절의 괴테를 상상하기도 했다. 떠오르는 단상들을 『괴테와의 대화』 여백에다 끄적이기도 했다. 애틋하고 그리운 추억이다.

 

나는 벤야민이 그랬듯이 체험과 경험을 구분했다. 단순한 결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결실을 얻으려면, 몸만 다녀가는 '체험'보다는 영혼이 깃든 '경험'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경험이 빈약해지면 여행도 소비로 전락한다. 이왕이면 여행은 향유가 되어야 한다. 소비는 돈이나 물자 따위를 써서 없애는 것이고, 향유는 누리어 갖는 것이다. 나는 향유하는 여행자가 되고 싶다. 향유가 여행의 완성이고, 경험이 향유의 비결이다.

 

여행의 기술은 오롯이 독서의 기술로 전환된다. 향유가 독서의 완성이다. 다시 말해, 독서를 잘 한다는 의미는 책의 내용을 이해, 음미, 누리어서 자기 것으로 갖는 단계를 말한다. 나는 향유하는 독서가다. 눈으로만 읽어내는 체험적 독서가 아니라 책의 내용을 온 몸으로 누리어 갖는 경험적 독서를 한다. 인문서는 머리로 사유하며 읽고, 예술은 가슴으로 느끼며 읽고, 실용서는 손과 발로 실천하며 읽는다.

 

누가 나더러 "너는 무엇을 잘 하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부끄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답변은 '책 읽기'가 아닌가 싶다. (둘째는 일대일로 만나 공감하며 듣는 일이요, 셋째는 수업 진행이나 글쓰기를 꼽으련다. 나보다 뛰어난 이가 많겠지만, 내 능력 안에서 순위를 매기자면 그렇다.) 나는 책읽기를 더욱 잘 하고 싶다. 나의 강점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책읽기가 나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독서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문득 의문이 든다. 독서력을 무엇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독서력이 단순히 많이 아는 것 이상의 지적 능력, 가령 사유와 공감, 게다가 실천까지 의미한다면 나는 정말 이 능력이 탐난다. 생각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는 독서, 그리하여 나를 조금씩 발전시켜 가는 책읽기를 생각하니 얼른 글을 맺고 싶어진다. 얼른 책을 집어들어야겠다. 책상 위에 놓인 책들이 나를 부른다. 나는 언제나 책들의 유혹에는 쓰러지고 만다.

 

건강하게 밥을 먹고, 소중한 이들을 만나고, 중요한 의무를 마치고 난 이후의 모든 시간을 전부 책에만 쏟는 것! 내가 꿈꾸는 인생이다. 꿈의 실현은 만만찮다. 건강한 식사, 사람들과의 친밀함, 크고 작은 의무 완수는 하나같이 수고와 지혜를 요구한다. 얼른 독서로 도망가고 싶지만 독서의 중요도는 4순위다. 제1의 능력이 4순위의 중요도라는 사실은 인생의 딜레마나 역설이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문제해결 놀이의 하나일 뿐이다.

 

올해는 잘 살아야겠다. 독서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고 싶다. 의무가 버겁다는 이유로 하고 싶은 일들로 내빼지도 않고, 해야 하는 일이 많다고 소원을 사치라고 여기지도 않는 자기경영자가 되고 싶다. 나는 소원(책읽기)에도 시간을 듬뿍 주면서 살고 싶다. 능력 향상을 위해 2016년에는 오랜만에 독서력과 지적 생활에 대한 책도 읽어야겠다. 그리고 문학의 고전들을 네댓 권만이라도 향유해야겠다.

 

책상 위에 놓인 『일리아스』가 속삭인다. "무얼 하시는가? 어서 영웅들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고." 책장에서는 『괴테 문학 강의』, 『예일대 지성사 강의』가 수업에 참여하기를 권고한다. "자네, 지적인 수업 한 번 들어보시게." 나는 속삭임에 녹아든다. 권고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유혹의 속삭임, 유익한 권고가 나를 황홀경으로 이끈다. (연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