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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카잔 2016. 4. 14. 17:54

1.

플라톤의 대화편 『소크라테스의 변명』(황문수 역)을 읽었다. 이해하고 해석하는 정도야 독자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얼마간의 감동과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높은 가독성은 플라톤 초기 대화편의 공통점이다.) 나는 2년 전 종로의 투썸플레이스에서 이 책을 처음 완독했었다. 두번째 독서를 하면서 두 가지를 느꼈다. 1) 그때의 결심을 아직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구나. 답답한지고! 2) 그때보다 더욱 풍성한 독서의 결실을 맛보고 있구나. 놀라운지고! 읽을 때마다 놀라움(메시지의 풍성함, 해석의 새로움, 영원한 현재성)을 안기는 점이야말로 고전의 특징이겠다.

 

 

2.

소크라테스는 대화하고 검토하는 삶을 살았다.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검토(성찰)하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가치가 없다."(강철웅 역) 우리말로는 검토 보다는 성찰의 뉘앙스가 덜 어색하다. 성찰이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다. 사전적 의미는 ‘자신이 한 일을 깊이 되돌아보는 일’이고 듀이는 ‘반성적 사고’를 성찰의 핵심으로 보았다. 잘못이나 부족한 점이 없는지 돌이켜 보는 사유 활동이 성찰이다. 성찰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소크라테스는 첫번째 탐구 대상이다. 언젠가 성찰에 관한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다.

 

소크라테스는 다소 강한 어조로 성찰을 강조했다. 살 가치조차 없다는 그의 말 반대하는 이들도 로버트 노직의 권고에는 대부분 동의하시리라. “나는 소크라테스처럼 성찰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그러나 깊이 있는 사고를 앞세워 삶을 이끌 때, 우리는 남의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살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찰되지 않는 삶은 충분하지가 않다.” - 로버트 노직,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중에서

 

 

3.

“나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선함을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그보다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약간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 사람보다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갔지만 결론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와 그 밖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황문수 역, 『소크라테스의 변명』, p.16)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러한 이중의 무지를 소크라테스는 비판했다. 소크라테스를 아는 이들도 여전히 이중의 무지에 빠져있다. 현대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를 모른다. 첫째 어떠한 ‘대상’을 모른다. 둘째 ‘인식의 한계’(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셋째, 사건이나 결과의 ‘인과관계’를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 대다수는 이 세 가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신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음에도 자기 인식만이 최고인 줄 알고 인과관계의 부분만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체를 통찰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아! 소크라테스를 깊이 이해한 이를 만나고 싶다.

 

4. 

나는 십년 넘게 사람들의 고유성과 인간 이해를 공부하는 중이다. 8~10명의 사람들과 매월 함께 수업을 하며 서로의 기질과 강점을 토론하고 어떻게 하면 자기이해에 이를 수 있는지를 모색했다. 자기이해와 인간이해 공부는 나의 직업이요, 천직이다.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 나는 무척이나 즐겁다. 즐기다보니 약간의 인간이해가 생겼다. (나는 섣불리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A의 행동과 말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여 잠정적인 유추를 할 뿐, 그가 어떠한 성향을 지녔는지 쉽게 결론내지 않는다. 한마디로 나는 인식형이다.)

 

종종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 여러 요소에서 외향형의 성향을 보이면서도 스스로는 내향형이라 말한다. "저도 혼자 잘 지내요. 제가 원래는 내향형인데, 그러면 사회 생활 하기에 힘들 것 같아 노력한 거예요." 그들의 레퍼토리는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그들을 지칭하는 심리학 용어(성격 방어)가 있을 정도다. 그들의 말이 옳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의 삶에 내향형의 장점이 너무나 빈약하고 외향형의 흔적이 지나치게 많다.

 

5.

명백한 감정형의 여인이 사고형이라 우기다가 1~2년이 지난 뒤에야 감정형임을 깨달은 경우도 있다. 자신이 스스로의 기질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을 한 달에 두어 명은 만난다. 올해 초,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도 강한 외향형의 중년이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말씀하시다가 MBTI에 대한 책을 진지하게 읽고서야 자신을 잘 몰랐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을 모르며 산다. 소크라테스의 이중의 무지가 2,500년 전에 살았던 고대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은 명백해 보인다. 나는 칼 야스퍼스의 말을 진지하게 믿고 깊이 있게 이해한다. (과연 그럴까, 하는 회의가 들긴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눈앞에 가진다는 것은 철학함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소크라테스 없이는 철학할 수 없다. 비록 그가 먼 과거의 희미한 불빛으로만 느껴질지라도 말이다!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그 사람 사유의 근본틀을 좌우한다.” - 카를 야스퍼스『위대한 사상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