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삶의 구획짓기가 중요하다

카잔 2016. 5. 6. 14:00

'블로그 포스팅도 오랜만이구나.' 바쁜 한 주였다. 지난 주 금요일이 떠오른다. 딱 일주일 전 그 날, 스트레스로 꽤나 힘들었다. 토요일~일요일의 가평으로 떠나는 와우 10기 졸업여행, 월요일~수요일의 경주에서 진행되는 학습조직화 연수를 코 앞에 둔 날이었다. 일요일 저녁에 여행을 다녀와서 월요일 아침 경주에서 2박 3일짜리 과정을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금요일에 대부분의 강의 준비를 마쳐 두어야 했다.


금요일은 중요한 날이었다. 엠티를 위한 마지막 점검도 해야 했고, 연수 교안(PPT) 개발도 마쳐야 했지만, 나의 바람대로 준비가 착착 진행되지는 못했다. 어찌하다 보니, 금요일에 세 명의 와우를 만났기 때문이다. 바쁜 일정을 말하면, 얼마든지 약속을 변경해 줄 그들이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도 이리 살아왔고, 때때로 만남은 시간을 쪼개야만 가능한 때도 있으니까.


오전과 오후 대부분의 시간을 강연 준비에 투자했어야 할 날에 나는 와우들과 덩어리 시간들을 보냈다. 내면의 부담감이나 불안을 안고 만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느긋하게 함께 했고, 의미 있는 시간을 누렸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저녁이 되면서부터 나는 활용할 시간이 훌쩍 지났음에 당황했고, 남은 하루가 많지 않음에 불안해했다. 하루경영에 실패한 날임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문제 탓이었다. 세 개의 약속이 모두 조금씩 길어졌다는 사실과 워크숍 준비를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두 번째가 문제의 근원이었다. 게다가 (블로그에선) 말 못할 슬픈 소식을 들었던 것도 결정타였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일정에 대한 압박감과 불안감 그리고 내면의 슬픔이 뒤범벅이 되었다.  금요일 저녁 9시가 되어갈 무렵, 나는 헤어컷도 해야 했고, 첫째날 강연 슬라이드라도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토요일 아침이면 1박 2일 여행을, 월요일 아침이면 경주에서 강연을 해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해졌다. 헤어컷이라도 하자, 라는 생각에 집 앞을 쏘다녔지만 25분을 헤매다 다시 돌아왔다.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미용실에 가는 일이 참 힘들다.) 데드라인이 임박해져야 일에 착수하는 성정이 이번 사태를 키웠고, 일보다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한몫 거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책상에 앉아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잠깐이라도 집중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껐다. 잠시 기도를 했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지 않고, 남은 시간 동안 하나의 일이라도 처리하려 합니다. 제가 받을 만한 상태가 된다면 마음의 평안을 허락해 주세요.' 이후 두어 시간 동안 집중하여 강연 준비를 했다. 그 정도의 시간으로 준비가 마무리될 수준의 교육이 아니었지만 하루의 끝자락을 알차게 보냈다.


토요일 아침부터 시작된 와우 10기 졸업 여행은 편안하고 행복했다. 나는 여행 이후의 일정은 잊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지워졌고, 10기들을 만나고 나서는 오롯이 여행에 집중했다. 우리는 아침고요수목원이 빚어내는 봄을 만끽했고, 오랫동안 추억할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일행과 헤어질 때에는 일년 남짓 동안 매월 함께 했던 수업이 끝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다음 달부터는 와우 수업이 없다.


"걱정 없이 이틀을 편안히 보냈어요." 한 와우의 MT 소감이다. 그것은 곧 나의 소감이기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이틀 동안의 내 마음은 걱정과 부담이 없는 '맑음'이었다. 놀랍게도 곧 이어질 강연에 대한 부담감은 와우와 헤어지자마자 찾아왔다. '아! 아직 교안 준비도 안 했는데...' 하는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이튿날 강연 준비로는 꽤나 염려스러운 상황인데도 나는 참 평안한 이틀을 보냈다(는 사실이 나도 신기하다).


하루에 낮과 밤이 있듯이 내 안에는 사람들을 만날 때 발휘되는 '관계적 자아'와 내 일상을 꾸려가는 '수행적 자아'가 함께 존재하는 걸까? 내 삶을 돌아보면, '수행적 자아'가 아무리 힘들어해도, '관계적 자아'는 독립적으로 자기 일을 수행하곤 했다. 다른 경우도 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는 '심리적 자아'가 아무리 괴로워도 '수행적 자아'는 자신의 임무(일상 관리)를 처리해낸다. (죽음만이 이 모든 자아를 멈추게 하는 걸까?)


나는 이후에 이어진 2박 3일 워크숍을 흡족하게 진행하지는 못했다. 부족한 준비를 감안하면 '선방'한 정도였다. 그간의 수많은 강의 경력이 나를 도왔지만, 이번 강연만을 위한 사례 연구 부족, 퍼실리테이팅 능력의 부족이 결과로 드러났다. 목표 평점인 4.5점(5.0점 만점)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프로다운 모습이 아니었다. 연수 도중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사전 준비 부족을 메우지는 못했다. 나는 반성했고 앞으로 만회할 것이다.


반성거리만 남은 건 아니다. 내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확인했고, 새삼 구획짓기의 중요성을 느꼈다. 이런 의문이 든다. '광땡이들과의 졸업여행을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워크숍은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면 지금보다 기뻐할까?' 아닐 것이다. 일과 관계 두 가지 중 어느 하나를 놓친다면 만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나를 우선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질문은 내게 우문으로 들린다. 나는 진자처럼 오갈 테니까.


구획짓기는 중요하다. 우리의 삶은 일과 관계로만 나눠지진 않는다. 찰스 핸디는 『코끼리와 벼룩』에서 일을 다시 직업적 일, 집안 일, 학습, 운동으로 구분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의미로만 채울 수도 없다. 나는 『11분』에서 파울로 코엘료가 들려준 말에서 깊은 위로를 느낀다. "인간이 지혜만을 쫓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닙니다. 땅을 일구고, 비를 기다리며, 밀을 심어 낱알을 수확하고,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태어났습니다." 


누구나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산다. 삶의 경영이 일면적이지 않고 다차원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삶의 경영은 삶의 구획을 짓고, 각 구획마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이다. 한 구획에서의 성공과 실패를 다른 구획으로 끌고 들어갈 수는 없다. 구획을 건너갈 때마다 우리에게는 다른 자아가 필요하다. 삶의 경영을 멋지게 일궈내려면, 각 구획을 주관하는 자아들의 정신력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난 한 주, 나의 '관계적 자아'는 선전했다. '업무적 자아'는 최선을 다했지만 강연의 사전 준비는 불성실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인생 안에도 승리와 후회가 뒤섞여 있다는 사실이 인생의 신비로움이다. 오늘은 와우 10기 여행 사진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관계적 자아'가 미소 짓는다. 다음 주 일정표를 열었다. 2차 연수가 예정돼 있다. '업무적 자아'가 주먹을 쥔다. '다음 주엔 더 잘 해야지!' 삶의 모든 영역을 잘 경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