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당분간은 그와 함께

카잔 2016. 8. 29. 00:31

1.

괴테에 관한 단상의 글 한 편을 적었다. 마음에 드는 글이지만, 공개(포스팅)는 후일로 미뤘다. 일부 구절이 울적함을 자아낼 여지가 있어서다. 내가 울적하게 읽히는 건 괜찮으나, 독자에게 울적함을 안기기는 싫다. 울적함의 언저리 한켠에는 낙관과 희망도 담아냈지만, 세심하게 읽어야만 잡아낼 정도의 섬세한 표현이었다. 포부이긴 하나, 강한 다짐도 또렷한 결심도 아니었던 게다.


자욱하게 낀 안개 속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빛을 상상해 보자. 나의 긍정과 희망은 그런 빛과 같다. 안개 속이라 찾기 힘들고, 희미하여 없는 듯도 하다. 이런 희망을 강하게 표현하면 실체와는 거리가 멀어질 터였다. 그럼에도 분명 존재하긴 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듯 현실이 나의 이상을 조금씩 잠식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간직한 비전가로 남을 것이다.



2.

비전가로 살겠다는 말은 현실에 무감각해지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인식을 더욱 예리하게 연마할 것이다. 현실인식의 힘이 강력해져, 일상 어느 곳에서나 이상보다는 현실적인 제약이 눈에 밟히더라도, 나는 현실인식이 비전가의 장애물이 아니라, 도구임을 잊지 않겠다. 섬세한 현실인식이 뒷받침된 이상은 더욱 원대해진다. 섬세가 원대함에 이른다. 괴테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라는 비전실현의 연금술을 상상력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내가 말하는 상상력이란, 현실의 터전을 떠나지 않고 또한 현실과 이미 알려진 것을 목표로 삼아, 예감할 수 있고 추정할 수 있는 대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뜻이네. 이러한 상상력은 예감한 것이 실현 가능한가의 여부를 검토하고 이미 알려진 다른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가의 여부도 검토하는 거네. 이러한 상상력에 이르려면, 생명세계에 깊이 통달하고 여러 법칙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냉철하고 박식한 머리를 가져야만 한다네."(박영구 역) 1830년 1월 27일 수요일, 괴테가 에커만에게 한 말이다.


3.

현실적 이상주의자가 되려면, 과감하게 결정하고 자신의 선택에 집중해야 한다.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도, 이상을 추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착상 만으로는 부족하다. 집중해야 생산성이 오른다. 몰입이 결과를 만든다. 용기있게 나아가서 열정으로 끝맺어야 한다. 괴테는 대화가 곁들여진 에커만과의 점심 식사에서 '마르티우스'라는 한 자연과학자를 높이 평가하며, 그에 관한 애정어린 견해를 펼쳤다.


"그의 착상은 대단히 중요하다네. 내가 그에게 좀더 바랄 수 있다면, 자신이 발견한 것을 좀더 집요하게 파고들라는 거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을 너무 벌이지 말고, 하나의 사실을 법칙으로 발표할 만한 용기를 가지라는 거네."(박영구 역)


*

2016년 8월 28일은 괴테가 탄생한지 267년이 되는 해다. 괴테(1749~1832)는 여전히 현재적이다. 아마 영원히 그러하리라. 괴테 탄생의 날에 나는 다시 괴테를 읽고 싶어졌다. 아니, 괴테의 전작을 읽어야겠다. 출발점은 『괴테와의 대화』로 삼았다. 7년 만의 재독이다. 당분간은 괴테와 함께 문학과 삶을 사유하자! 상상으로도 즐거워진다. 이것은 독서인 동시에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이다. 괴테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열정과 지혜를 선사하기에! 또 하나의 일을 벌이고 말았으니, 괴테의 조언을 따르지 못하게 됐는데도 묘한 기쁨이 찾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