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사랑에 관한 추억, 그리고...

카잔 2009. 1. 25. 16:30

아련한 사랑에 관한 추억.
스무 한 살 청년과 스무 살 숙녀의 사랑 이야기.
선명히 기억나는 세 가지 장면.
변진섭의 <숙녀에게>라는 곡이 떠오르는 날에.

#1. 즉흥 여행
어느 날, 선물이 있다며 나에게 하루를 비우라더니
가까운 바다로 놀러 갈 당일치기 여행 계획과 거금 2만원을 쥐고 나온 그녀.
여행 비용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녀의 사랑은 넉넉하고 귀여웠다.
그렇게 떠난 즉흥 여행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종종 생각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날, 바다로 떠났는지 다른 곳으로 갔는지는 가물가물 하지만,
즉흥 여행을 떠나고자 계획한 그녀의 사랑과 거금을 준비한 정성은 선명하다. 
눈물나게 사랑스러웠고 고마웠기에.

#2. 이별을 날려 버린 포옹
나를 무척이나 아껴 주었고 진하게도 사랑해 주었던 그녀.
그녀 집 앞에서 다투고 난 후, 헤어지자는 나의 말에 그녀는 알았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난, 그녀 집 앞을 쉽게 떠나오지 못했고 몇 분 동안 주변을 서성이다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하기 전, 집에서나 입을 법한 옷차림으로 주먹 꼬옥 쥐고 걸어가는 그녀를 만났다.

어디 가니? 오빠한테. (멈칫했다) 옷이나 입고 나오지 그랬어? 오빠 가 버리면 영영 못만날까 봐.
그 말에 감동해 안아 주려 했더니 그녀의 작은 주먹에 무언가가 쥐여 있었다. 900원어치의 동전이다.
이건 뭐니? 오빠 집으로 가는 지하철비. 이것 뿐이야? 응.
날 못 만나면 어케 돌아와? 그냥 오빠 만날 때까지 오빠 집 앞에서 기다리려고 했지. (뭉클했다)
그녀를 꼬옥 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수십 분 전의 헤어짐을 포옹으로 취소했다.

#3. 사랑스런 "오빠, 오빠"
오빠, 오빠.
그녀는 나를 이렇게 두 번씩 불렀다. 다른 사람들과 차별하기 위해서란다.
그렇게 부르지 않아도 자기는 이미 나에게는 여느 여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인데...

그녀와 난 종종 우리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했다.
도서관에 가기 위해 자주 만나던 골목 어귀가 있다.
가난했던 스무 살 무렵의 연인은 이렇게 카페가 아닌 길거리에서 만났다.

길거리에서의 만남에는, 먼 발치에서 걸어오는 연인의 모습을 설렘으로 바라보는 낭만이 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녀는 아주 예쁜 걸음으로 총총, 엇박자 리듬에 맞춰 걷는 듯 뛰어온다.
그리고는 품에 안겨 나를 부른다. 오빠 오빠.
그 사랑스런 표정이 오늘 문득, 떠올랐다.

*

다시 이렇게 사랑하고 싶다.
2만원으로 즉흥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넉넉한 마음과 삶의 여유로 한 여인을 사랑하고 싶다.
900원을 쥐고 헤어질 위기의 연인을 찾아 나서는 그 순수함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두근거리는 떨림과 구름 같은 낭만으로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2년 전, 헤어진 연인이 순수한 사랑의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
다시 한 번 내 안에 동화 같은 마음과 순수한 사랑을 불어넣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감상이라 할지라도 나는 이렇듯 사랑으로 살고프다.

나의 이런 바람과는 달리
조건과 배경으로 사랑을 가늠질하고 사람을 평가할까 봐 덜컥 겁이 나는 날이다.
세월이 가져다 주는 것들 중에서 지혜로움만을 쏘옥 취하고
현실주의로 가장한 속물 근성은 단연코 거부해야 할 텐데...
세상 일이 내 뜻대로만은 되지 않으니, 나는 선한 싸움을 계속 싸워야만 할 것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