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

카잔 2009. 8. 31. 18:44

in Hambrug

8월 26일 오후 7시 35분 도착

8월 28일 오후 9시 21분 떠남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 


Dammtor 역에서 내렸다.

동물원으로 가려면 조금 더 가야하지만,

트램의 바깥쪽으로 보이는 함부르크 대학의 이정표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Dammtor 역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여행책자에 함부르크 대학에 대한 안내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 곳에 가야할 이유를 가졌다.

세상에 가볼 만한 여행 장소를 추천하는 정보는 넘쳐나지만,

꼭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오늘 나의 여행은 즐겁다.

나는 드러커가 젊은 시절을 보냈던 함부르크에 왔다.

그가 다녔던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에 갈 것이다.

이 하나의 이유로 방문한 함부르크다.


역에서 나온 나는 캠퍼스가 있을 법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조금 걷다가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길을 물었다.

"함부르크 대학을 찾고 있어요." "무슨 학과요?"

"그냥 가면 돼요. 캠퍼스를 보고 싶은 게지요."



남자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방향은 가르쳐 주었다.

참 나는 법학과에 가야 하는데, 라는 사실은 뒤늦게 생각났다.

남자는 정확한 위치도 모르면서 학과는 왜 물었던 게지?

아니면, 내가 정확히 못 알아들었던 걸까? 어쨌든 Okay.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신이 났다. 속이 좋지 않아 화장실을 찾느라

꽤 고생도 하고, 길을 지나치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그런데, 왠지 너무 많이 걸어온 것 같아 또 물었다.


빡빡이 머리에 좀 놀게 생긴(?) 남자였다.

방향을 묻기에 남자 분들이 여러 가지로 편하다.

이번에는 함부르크 대학 법학부를 찾는다고 말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함부르크 대학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그는 이곳에 살았다. 법학부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무튼 함부르크 대학 쪽으로 가는 길이니 같이 동행하잰다.

그는 우체국 가는 길이었고, 함부르크 대학 근처라고 말했다.

젊어 보였는데, 자신을 Old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약사였다.


기초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가 퍽 친절하고 유머스러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갑자기 그가 아하, 하고 크게 웃는다.

내가 찾는 학부를 알겠다는 게다.


그는 Law 를 low 로 알아들었다는 것이다.

하하하. 이거 나의 발음이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제스처까지 곁들여 자신의 오해를 설명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금새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져서 그의 주소를 물었다.

귀국하면 카드를 써서 보내주고 싶다.


자신의 주소를 적고 있는 지벤슈흐(맞나?)



그와는 법학부 바로 앞에서 헤어졌다.

즐거운 마음으로 법학부 건물에 들어섰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있어서 가방을 맡겨두고

책 몇 권을 꺼내어 도서관에 들어갔다.


그냥 거기서 공부하고 싶었다.

알고 봤더니 법학부 도서관이라 한다.

드러커가 여기에서 공부했을까?

새로 생긴 건물인 듯하여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다.


나는 드러커 책을 찾고 싶었다.

옆자리에 있는 청년에게 물었더니

비즈니스 관련 서적은 메인 도서관에 있단다.

여기는 법학 관련 도서만 있다고 했다.


그가 퍽 잘 생겨서 묻지도 않은 몇 마디를 했다.

드러커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그랬더니 그도 내가 묻지도 않은 얘기를 한다.

자기는 바덴바덴에서 왔단다. 꼭 가 보라고 권하기까지.

(바덴바덴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받는 두 번째 추천이다.)




청년은 1988년 생임을 그의 이메일 주소를 받고서 알았다.

그의 인상이 퍽이나 좋았고, 옆에서 지켜보는 여자친구의 미소가 좋았다.

그에게서 중앙도서관의 위치를 설명 듣고 헤어졌다.

실력 있고 양심적인 법학도로 성장하기를 빌어본다.


두세 번 뒤돌아 보며 인사를 나누는데

끝까지 손을 흔들어 웃어주는

여자 친구의 미소가 가슴 찡할 정도로 따뜻했다.

여행자를 돕는 고마운 사람들.


*


저는 남자치고는 길을 꽤 잘 묻는 편이고

남자들 중에서도 방향 감각은 참 좋은 편입니다.

방향 감각과 질문하는 습관을 모두 가졌으니

여행에는 무척 유리한 편입니다.

게다가 좋은 체력까지 지녔으니

혹 길을 잘못 들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허나, 새로운 나라 새로운 도시에서는

길을 물어볼 일이 자주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홀로 연구(?)했습니다.

어눌한 영어 실력이 들통나는 게 싫었거든요.


실력을 감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30초면 해결될 방향 결정을

3분 동안이나 지도를 들여다보아야 했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할 기회

따뜻한 가슴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길을 묻는 나의 질문을 외면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비엔나의 그린칭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한 노부인에게 물었더니 살짝 외면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영어를 전혀 몰랐고, 내가 독일어 주소를 내밀었더니

손가락으로 방향을 알려 주셨습니다.


길을 떠나 본 사람은 압니다.

길을 떠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돕는 듯한 느낌을.

마치 여행자를 돕는 요정이라도 있어서

온갖 만물을 통해 자신을 도와주는 따뜻한 느낌 말입니다.

허나, 이 모든 것은 마음을 열고

도움을 요청하고, 질문을 하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만 느끼는 것입니다.


여행자를 돕는 사람들이 가득하듯

이 세상에는 나의 삶을 돕는 사람들 역시 가득합니다.

때때로 거절 당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들이 너무 바쁘거나 너무 기분 나쁜 중일지도 모르고

표현 방식이 친절하지 않을 뿐인 게지요.

마음을 활짝 열고,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서

일상이라는 공간에서의 멋진 여행을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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