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카이저 빌헬름 교회

카잔 2009. 9. 5. 18:21


쿠담 거리를 빠져 나와 카이저 빌헬름 교회로 향했다.

초역에서 나왔을 때 확인해 두었고,

먼 발치에서 카이저 빌헬름 교회와 잠깐 눈인사를 나누기도 했기에

교회의 위치는 잘 알고 있다.

어느 새 불쑥 나타난 교회의 부서진 첨탑.


카이저 빌헬름 교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부분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붕괴된 교회의 지붕이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베를린의 상징이 된 바로 그 부분.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여행자를 잠시 멈추게 했다.


1943년 11월 22일, 영국군은 베를린을 폭격했다.

독일 초대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비적인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도 폭격 당했다. 서쪽 탑이 무너졌다.

1895년 완공되었으니, 50년이 채 못 되어 일어난 일이었다.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폭격당한 그 모습 그대로다.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잊지 않기 위해 영구 보존하기로 한 게다.


나의 손목 시계는 오후 5시에 가까워지는데

카이저 빌헬름 교회 한쪽 벽면의 시계는 12시 즈음에 멈춰 있다. 나의 발걸음처럼.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전쟁의 참상을 모두 복구했다고 해도 그땐 이미 원래의 그것이 아니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는 전쟁의 폐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무너진 서쪽의 탑처럼 유럽의 문화 유산 일부가 파손되었고

멈춰버린 시계처럼 역사를 되돌려 진보를 더디게 했던 것이다.


부끄러운 일을 기억하는 것은 훌륭한 처사이기에

베를린 시민들과 시(市)의 결정은 지혜로웠다.

1957년, 베를린 시는 '에곤 아이어만' 이라는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그는 무너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를 가운데 그대로 놓아두고 (아래의 모습처럼)

육각형의 종탑과 팔각형 모양의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비슷한 높이의 종탑은 상처 입은 전우를 돕는 듯하고,

안정감 있는 새 성전은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새롭게 지어진 교회는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유명하다는 소문 그대로였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푸른빛이 감도는 스테인드 글라스는

보는 이의 눈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잠시 자리에 앉았다.

내일이 주일이기에 이곳에서 예배를 드려야겠다고 다짐하며 일어섰다.


새로 지어진 카이저 빌헬름 교회



주일 오후 6시 예배. 사람들이 거의 꽉 찼다.

어제 헤아려 둔 바에 의하면 600석 정도의 좌석이다.

100여 명이 채 안 되었던 빈의 '칼스 교회'보다 훨씬 많은 예배자들이다.

독일어 설교 때에는 집중이 잘 안 되었지만

짧게 드리는 기도에는 간절함을 담으려 애썼다.


카이저 빌헬름 교회.

빌헬름 2세가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교회.

독일 제3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한

최초의 목적보다는 이제는 반전을 생각하게 되는 교회가 되었다.

황제는 이것을 아쉬워할까? 이 역시 독일의 발전을 기리는 마음이니

독일을 위해 살았던 그가 고마워할 것이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평화주의자들이 반전 시위를 하려 몰려드는 의미 있는 장소를 가진

베를린은 이제는 행복한 도시, 라는 감상에 빠져든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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