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회상하다 그리워지면 회심하라

카잔 2009. 11. 11. 10:16

3호선 교대역에서 2호선 잠실 방향으로 가는 환승길의 계단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껌을 파시는 할머니다. 할머니의 치마자랏 앞 계단 한 칸에는 껌 몇 개가 아무렇게나 놓였다.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반말을 던지신다. 게다가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껌도 던지신다.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07년 늦가을 혹은 초겨울이다.
지나가다 할머니가 던진 껌이 한 쪽 어깨에서 길게 내려뜨려 멘 가방에 쏙 들어왔다.
할머니의 친절하지 않은 말투에도 마음이 동한 것은 밤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나는 껌과 천원짜리 한 장을 함께 드렸다.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 계셨다. 이후 내 삶에 빠져서 잊고 지내다 문득 생각이 났다.
이번엔 5천원짜리 껌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다.

오늘은 할머니 옆에 앉아 잠시 함께 껌을 팔기도 했던 그 날들이 떠오른다.
대학생 시절에는 길거리에 쓰러져 자는 취객을 깨워 집까지 바래다 주었던 날도 참 많은데...
취객을 집에 모셔다 드리고 골목길을 돌아나오며 맞은 밤공기는 참 상쾌하고 행복했는데...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점점 삭막해져가는 내 마음을 돌리기 위한 일종의 노력인가.
잠시 멈췄다가 또 같은 길로 걸어가서는 안 된다. 그것은 글로 자위하는 것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회심(回心)해야 한다. 마음을 돌리고 방향을 돌려야 한다.

회심은 반성보다 어렵지만 강한 것이다. 회심하지 않으면 변화도 없고 성장도 없다.
곧 겨울이 다가오리라. 추위와 싸우며 장사하시는 할머니의 귤을 사야지.
값을 깍지는 말아야지.


<슬픔이 기쁨에게> -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워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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