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결혼에 관한 지식

카잔 2009. 12. 11. 18:15

교회 후배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문자치는 속도가 느려 잘 보내지 않는 편이지만,  
3일 전에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그를 격려하고픈 마음이 들었다.

긴장도 되고 할 테지만 힘내라는 메시지였던 것 같다.
답문자가 왔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알려 주었다.

멍... 해졌다.

나는 강남 교보빌딩 사거리에서 경복아파트 사거리로 가는 택시 안에 있었다.
늘 그렇듯이 강남다운 교통 정체, 그 사이에서 천천히 기어가는 차량들.

문득, 내 삶(의 한 영역)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나를 실은 택시의 속도처럼 아주 미미한 성장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늘은 잔뜩 찌푸린 날씨였고, 아주 가는 비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결혼 소식의 주인공은 옛 연인이다. 하하. 옛... 연인.

문자를 받은 시각은 2009년 12월 10일 오후 5시였다. 세상은 잿빛이었다.
이튿 날, 작품 세계는 화려했지만 인생만큼은 잿빛이었던 작가를 알게 되었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이다.
그는 51년 동안의 길지 않은 생을 살았지만
극단적인 광기로 100여편의 장편 소설을 써낸 정력적인 작가다.

그에게 배울 것은 글쓰기를 향한 태도와 정열이다.
수도사 옷을 입고 하루에 열여섯 시간 동안 작업했던
그의 글쓰기는 '엄격한 의식'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의 삶을 보며, 내가 경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깨닫는다.
무엇보다 내가 보기엔 그의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못했다.
그가 20대 초반에 스물 두 살 연상의 애인을 두었던 점,
청혼한 에바 백작 부인이 10년 동안 거절했다는 점,
에바 부인과 결혼한 후 발자크가 5개월 후 사망했다는 점 등을 보고 한 말이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가 되어 여성들의 사랑도 받고 돈도 벌었지만,
방탕한 부류와 어울리는 모습과 현실 인식의 결여로 평생 빚을 지고 살았던 발자크.
그에게서 나의 일부를 본다. 다른 부분도 있지만, 닮은 구석도 있다.

발자크의 말 중에 내 마음을 친 것이 있는데,
이 말은 (세상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리라 짐작한다.

"모든 지혜 중 결혼에 관한 지식이 가장 뒤떨어져 있다." - 오노레 드 발자크

그의 말은 16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발자크는 1850년에 사망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의 가슴에 새겨졌다.
나는 발자크의 저 말을 오랫동안 중얼거렸다.

어제 일을 돌아 본다. 
나를 멍하게 만들었던 결혼 소식은 엎친 것이고,
거기에 덮친 소식이 있었으니 나의 눈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좋아했었는데요.
근데 이제 저 연인이 생겼어요."

명랑한 목소리였고, 대한민국의 솔로 여인 한 명이 사라지는 선언이었다. 
먹먹한 소식이었고, 대한민국에 '광식이'가 한 명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음은 그녀도 알고, 나도 안다. 
어제 처음으로, 그녀는 나에게서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했을 때의 아픔에 대해 잠깐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이제 더욱 건강해졌고 밝아졌다.
나에게 고맙다는 말까지 전해 주었다.

몇 시간의 시차를 두고 날아든 두 개의 소식을 생각할수록
나는 발자크의 말이 생각난다. 

결혼에 관한 지식. 결혼에 관한 지식...

자꾸만 읊조리게 된다.
분명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거나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졌을 것 같은 느낌.

지식이 뭐가 필요하냐고 그냥 사귀어보라는 말은 사양하련다.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도 하지 않으련다.

나는 지금 심각하다. 힘들지는 않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사실, 내 삶의 다른 부분은 꽤 마음에 든다. 오늘은 좋은 일들이 연속해서 터졌다.

그러나, 삶의 한 부분은 진보했지만 
다른 부분의 정체(혹은 퇴보)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자꾸만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발자크의 말을 자꾸만 쳐다 보게 된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보는 내내
광식이의 모습에 가슴이 답답했다.
그것은 나를 향한 못마땅함이기도 했다.

아... 광식이의 동생 광태가 되고 싶어라.
아니다. 그 놈의 딱 절반만 닮고 싶어라. ^^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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