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행복한 인생살이의 비결

카잔 2010. 4. 12. 17:25


in Frankfurt

9월 12일 오후 18시 41분 도착

9월 14일 오후 16시 15분 떠남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저녁 7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을 빠져나왔다.

나의 성능 좋은 방향 감각은 여행에 큰 도움이 된다.

카이저 거리로 향하는 나의 직감은 이번에도 들어맞았다.

행복한 인생살이의 비결은 정체성과 방향성을 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중 어느 한 단어도 파악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정체성 : 나는 누구인가?

방향성 :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가 이 질문에 대하여 쉽게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다행인 것은 대답을 빨리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젊은 날에는 질문에 답을 해야만 회사에 입사하는 줄 알았고

답을 가져야만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이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인생이란 걸.

삼십 대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갖는 것도 빠른 것이란 걸.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것은 보기 드물고 얻기 힘든 심리학적 성과다.”

 

『동기와 성격』이라는 훌륭한 저술을 펴낸 아브라함 매슬로우의 말이다.

정체성과 방향성은 평생에 걸쳐 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답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낯선 곳에서는 자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도 이 두 가지의 단어를 알고픈 소원에 맞닿아 있다. 


중앙역 정면의 길을 건너면 바로 카이저 거리다.

중앙역 맞은편으로 보이는 금호타이어 영어 간판이 반갑다.

카이저 거리, 우리말로는 황제의 거리이니

대도시로 들어가는 메인 도로의 이름으로는 제격이다.

카이저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두 시간 전까지 머물렀던 바이마르와는 다른 곳임을 느낀다.

 

바이마르에서 6박 7일을 머무르면서

트램이나 버스를 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고 보니, 그 작은 도시에는 지하철도 없었다.

관광 명소들도 대부분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곳들이었다.

 

프랑크푸르트는 큰 도시다.

카이저 거리에 들어서며 그것을 실감하게 된다.

동양인들도 많고 흑인들이나 중동 지역의 사람들도 많다.

책에서 읽지 않았더라도 프랑크푸르트가 교통의 허브임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플랫폼

 

카이저 거리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고급스럽고 깨끗한 거리가 아니었다.

술 취한 행인들이 보이고, 걸인들이 많았다.

여럿이 모여 다소 무서운 분위기가 형성된 불량스러운 패거리도 보였다.

 

반갑게도 길을 건너자마자 <프랑크푸르트 호스텔>이 나타났지만,

미리 검색해 둔 <Easybed24>를 향하여 걸어갔다.

조금 더 저렴하고 인터넷도 무료인 호스텔이다.

카이저 거리와 직각으로 만나는 Morsel 거리에 있으니 멀지 않다.

Morsel은 첫 번째 사거리에서 만나는 거리다.

 

Morsel 거리의 번지수를 따라 좌회전하는 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다.

화려한 네온사인은 모두 욕망을 자극하는 것들이다.

사실, 별로 자극되지는 않았다. 살짝 긴장했기에.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인들과

남자 호객꾼들을 지나치며 걸어갔다.


워낙 평화롭고 조용한 곳에 있다 왔기에

약간 긴장은 했지만, 무섭거나 염려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함부르크의 유명한 환락가를

대담하게 걸어 다녔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가게들은 어떤 곳인가 하는 호기심이 자극되기는 했다.

선하게 보이는 흑인 호객꾼이 나의 호기심을 간파했나 보다.

저들의 독심술은 배울 만하다.

 

나는 못 이기는 척 하며 가게로 들어가고 싶었다.

가게 안에는 혹시 거리에 나온 여인들보다

더 과감히 노출한 여인들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고맙게도(?) 나를 붙잡은 남자와 여인이 나를 가게 안으로 끌어들였다.

안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높은 칸막이가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는 것 밖에는.

술자리인지, 남성 접대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바가지를 쓸 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들어갔다 나왔던 유흥 주점

 

호기심도 있었고, 일탈에 대한 욕망도 일었지만,

무서움과 바가지의 가능성을 생각하며 웃으며 거절의사를 밝혔다.

내 팔에 힘을 주고 있는 남자를 뿌리치고 나왔다.

영어를 잘도 하는 흑인에게 일단 숙소에 짐을 풀고 오겠다고 했다.

남자도 직감했으리라. 내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란 걸.

빠져 나왔다. 다시 숙소로 걸어간다.

 

나는 여행자다.

내 안에는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서는 모험심도 있었다.

그리고 일탈에 대한 욕망도 있었다.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두뇌도 가졌기에 이성적 존재지만,

여인을 안고픈 아랫도리도 가졌기에 욕망적 존재이기도 했다.

 

무섭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바가지를 쓰지 않을 자신이 있었더라면

나는 여인들의 젖가슴을 쳐다보며 술을 마셨을까.

누구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자신을 잃어버리기도 하지만,

타인의 시선 덕분에 도덕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우리는 덜 도덕적인 사람이 되곤 하니까.

여행지에서의 일탈이 보다 쉬워지는 까닭이다.

어쨌든 54일 간의 유럽 여행에서, 나는 나를 지켰다.

 

여행자는 욕망을 지닌 존재다.

모든 여행지는 여행자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과

여행자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만족시켜 주는 것을 함께 지녔다.

여행자는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자신의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가 해야 할 일은 새로운 거리를 걷는 것이지

욕망을 자극하는 곳을 드나드는 것이 아니다. 

프랑크푸르트 니짜 산책로



우리는 인생 여행자다.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을 만나고

지금 주어진 일에 몰입하여 업무를 하나씩 해내며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발견해 가는 여행자다.

무얼 하며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면서도

인터넷 앞에서는 연예기사나 음란 사이트를 드나드는 것은

유익한 여행을 방해한다. 그런 일을 할 바에는 차라리 잠을 자는 게 낫다.

 

가게에서 빠져 나와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조금 있으니 흑인 청년이 들어왔다.

(방금 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 룸메이트다.)

호스텔에서 흑인과 함께 방을 쓰는 건 처음이다.

유혹을 이겨내니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난생 처음, 흑인과 길게 몇 마디를 나눌 수 있는 기회.

그는 따뜻하고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낭만 유럽여행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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