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End는 또 하나의 And

카잔 2009. 9. 30. 00:37


2009년 9월 29일.
나는 밤을 날아 한국에 도착했다.
홀가분하게 떠나 54일 동안 자유로이 여행했다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귀국했다.

세상에 한국어가 난무하는 곳이 있다니.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있는 곳이 있다니.
두 귀로 한국어를 듣고, 두 눈으로 한국인들을 바라보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 곳'을 여행한 목적은 '이 곳'에서의 삶을 위함이었을 느낀다.


사람들은 긴 여행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짧은 여행이었다.
퍽이나 즐거웠고 깊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많았다.
예상했던 외로움은 나를 찾아들지 않았고
여유와 배움이 가득한 날들을 보내며 기뻐했다.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혼자만의 여행을 더욱 잘 즐기는 사람이었다.

어떤 배낭여행자들은 이제 풍광도 지겹다면서 집이 그립다 했다.
사람에 따라 지겨움의 풍광은 성당, 거리들, 고성 등으로 목록이 바뀌었다.
나는 두 달을 더 여행하라고 해도 떠난 모습 그대로 여행을 할 수 있을 만큼의
호기심과 체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히려 여행의 매력에 더욱 빠져 있었다.
여행의 말미에 발생한 불미의 사건으로 흠뻑 울어 감성까지 맑은 상태였다.

허나, 돌아와야 했다. 10월부터 약속이 있었고, 기다리는 가족도 있었기에.
아쉽지 않았다. 나는 또 훌쩍 떠날 궁리를 할 테니까.

마음 속에 독일이라는 나라가 깊이 새겨진 여행이었다.
나는 독일의 14개 도시를 방문했다. 길게는 한 도시에서 여섯 번의 밤을 보내었다.
지도와 안내 책자를 팽개치고 그저 나의 마음을 따라 하루를 걷기도 하고
볕 좋은 날이면 공원에 드러누워 한 동안 책을 읽으며 깨달음을 책의 여백에 적기도 했다.
도서관을 찾아 들어가 파란 눈으로 책을 읽는 그들을 따라 내 눈에 불을 켜기도 했다.
머무르고 싶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아쉽지 않을 만큼은 머무르며 독일을 여행했다.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 궤적이 남는 것은 그가 온 몸으로 지났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독일에 대한 애정이 깃든 것은 나 역시 온 몸으로 독일을 여행했음이리라.

독일 비스바덴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마신 맥주


내가 여행을 퍽 좋아함을, 여행을 통해 배우기를 즐기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행을 일처럼 하는 사람도 아닉, 휴가처럼 마냥 누워 쉴 수 있는 사람도 아님을 알게 됐다.
배낭에 짓눌린 나의 어깨에 힘을 넣는 방법이 휴식 뿐만 아니라, 
도서관에 들어가거나 위인들의 박물관을 관람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 어디에서 무얼 해야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들 수 있는지,
이 만큼의 음식을 먹으면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어갈 수 있는지,
어느 때 마신 맥주가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지 알게 됐다.

나는 보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돌아가니고 싶다는 소박한 소원이 생겼다.
나는 좀 더 잘 뒹굴거리면서 보다 잘 배우는 여행의 묘수를 알고 싶다.
'삶은 여행'이라는 비유를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내 나라를 잘 알아야 여행지에서의 배움을 더욱 깊이 할 수 있고
이 곳에서의 적용과 도약을 더욱 잘 이뤄낼 수 있음을 절감했다.

나는 대한민국과 한국인들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만들어내고픈 나만의 개인 세계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었다.
유럽의 '그 것'을 보며 한국에 있는 같은 '그 것'을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했다.
한국의 '그 것'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잘 몰라 비교할 수 없었던 경우도 있었다.

만약 여행자 앞에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다면
좋은 여행자는 분명 자기 나라를 제대로 둘러 본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신이 난다.
오늘부터 한국 여행이 시작되었기에.
오늘은 꽤 오랜 동안 머물 서울 여행의 첫 날이다.
첫날 밤이란 설레고 떨리는 법이다.
안을 그대가 없어도 품은 꿈이 있다면 흥분하고 설렐 수 있다.
지금의 내가 그렇다.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되어 말똥거리는 두 눈이 반갑다.
음악이 깃든 밤, 나만의 공간, 이 모든 시공이 고맙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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