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fe is Travel/낭만 유럽여행

『파우스트』의 무대였던 술집에 가다

카잔 2010. 5. 4. 17:23

in Leipzig

9월 03일 오후 7시 10분 도착

9월 06일 오전 11시 15분 떠남

 

드레스덴을 떠나 라이프치히 행 ICH 열차에 몸을 실었다.

쾌적한 열차로 1시간 15분을 달려 라이프치히에 도착했다.

라이프치히 역사는 엄청 컸다. 독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역사란다.

역사 내에 큰 쇼핑센터가 있어 아주 편리했다.

높은 천장에 지하 2층까지 이어진 쇼핑몰의 사진 몇 장을 서둘러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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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중앙역 전경

 

서두른 까닭은 오늘 밤 저녁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기 위해서다.

서두른다고 해도 조금 걸음을 빨리 하는 것이지

성미 급한 사람들의 ‘천천히’ 만큼도 안 될 것이다.

여행자인 나의 걸음은 ‘느릿느릿‘고,

거리를 둘러보는 시선은 늘 ‘두리번두리번’이어서

남들이 보면 내가 서두르고 있는 중임을 전혀 모를 것이다.

 

라이프치히에 들어선 오늘부터의 여행 테마는 ‘괴테‘다.

독일에는 괴테 가도가 있다. 여행 상품으로서의 ‘괴테’는 강력하고

독일 국민들의 괴테에 대한 자부심 역시 대단하다.

앞으로 독일인의 괴테 사랑과

여행지 곳곳의 괴테 테마를 소개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라이프치히는 괴테가 대학 시절을 보낸 곳이다.

괴테는 라이프치히 대학을 다녔고,

중심가에는 괴테가 자주 다녔다는 술집이 있다.

오늘은 바로 그 술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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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AO 호스텔

 

역사에서 나와 미리 장소를 확인해 둔 AO 호스텔을 찾아갔다.

외양도 깨끗했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시실이 좋아 마음에 쏙 들었다.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는 침대인데,

내가 묵는 내내 옆자리에 아무도 오지 않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가격 또한 하룻밤에 12유로라니. 와우. 대단히 저렴한 가격이다.

(베를린에서 13유로 묵었던 곳이 제일 저렴했는데, 시설도 저렴했다.)

좋은 숙소 덕분에 아주 좋은 기분으로 아우어바흐 켈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메일을 보내 준 와우팀원에게 메시지 하나를 녹음했다.

 

이럴 때에는 디지털 기기의 편리함이 좋다.

멀고 먼 그 곳에서 보낸 메시지는 몇 분만에

내가 있는 이 곳으로 전달된다. 새삼 신기하고 놀랍다.

나는 거리를 걸으며 몇 마디를 녹음한다.

이것은 오늘 밤 인터넷을 통해 다시 그 곳으로 보내질 것이다.

이 편리한 기계적인 소통 방식이 있는데도

사람들이 점점 외로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통의 핵심은 접근의 용이함이 아니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진솔함과 열린 태도여서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도시의 중심가, 니콜라이 거리를 지나고 있다.

고풍스런 건물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잠시 멈춰 서서 건물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을 터인데, 멈추지도 않고, 오히려 발걸음이 점점 빨라진다.

가슴이 조금 두근거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음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술집에 가고 있기 때문이다.

 

술꾼이 아닌 내가 술집에 간다고 이리 기쁠까!

그건 여느 평범한 술집이 아니라,

괴테가 쓴 명작 『파우스트』의 무대가 되었던 명물 술집이기에 그렇다.

1525년 창업한 '아우어바흐 켈러 Auerbachs Keller(이하 켈러)‘.

나는 지금 켈러로 가는 길이다.

 

 

아우어바흐 켈러 Auerbachs Keller

 

켈러는 놀랍게도 최신식 쇼핑 아케이트 내에 있었다.

라이프치히에는 파사주(아케이트)가 많은데

켈러는 그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메들러 파사주에 위치하고 있었다.

메들러 파사주 맞은 편에는 고풍스러운 구 시청사가 있었지만

나는 그야말로 슬쩍 훑어보기만 하고 서둘러 켈러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하자, 조각상 두 개가 있다.

켈러는 지하에 위치했는데, 입구가 두 개다.

각각의 입구에 있는 조각상은 『파우스트』의 등장인물들이다.

아쉽고 조금 부끄러운 사실이 상기되었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게다.

그래서 저 등장인물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내가 괴테의 통찰에 처음으로 감탄한 것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라는 책을 통해서다.

1774년 발표한 작품이니, 괴테의 나이 26세 때다.

 

괴테의 『파우스트』 (이인웅 번역본 추천)



『파우스트』는 괴테가 23세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 완성한 평생의 대작이다.

켈러에 온 것은 『파우스트』의 이런 명성 때문이다.

켈러에서의 체험이 책을 더욱 생생하게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안게 된 것은

글을 쓰는 지금 드는 생각이고,

켈러에 있을 때에는 약간의 후회를 느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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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바흐 켈러 입구 조각상


입구에 걸린 사진과 조각상의 사진을 찍느라

켈러에 들어가기 위한 개인적인 기념식에도 시간이 걸렸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후, 나는 켈러에 들어섰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홀을 가진,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의 레스토랑 분위기였다.

나는 작고 조금은 허름한 느낌의 술집을 예상했었는데,

현대식의 레스토랑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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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바흐 켈러 내부

 

아무렴 어떤가. 내 예상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은 세계 문학사의 걸작품에 등장하는 무대란 말이다.

나는 흥분과 설렘으로 주문했다.

사실, 오늘 저녁 식사용 비용은

드레스덴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이미 써 버렸다.

말하자면, 하루에 두 번이나 비싼 식사를 할 순 없다는 게다.

(나의 하루 식사비는 석식에 20유로 내외,

조식과 중식을 합쳐 10유로 이내로 떼우는 식이었다.)

 

오늘은 예외다. 나는 켈러에 와 있으니까.

12유로에 해당하는 요리와 맥주를 시켰다.

식사가 나오는 동안, 나는 술집 내에 있는 기프트샵으로 갔다.

『파우스트』와 괴테를 기념하는 선물용품과 책들이 있었다.

책을 뒤적이다가 결국 켈러의 역사를 담은 책을 샀다.

한국어 제목은 『아우어바흐 켈러 연대기』정도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산 까닭은 유일하게 영어로 된 책이기 때문이다.

다른 책은 모두 독일어인지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어로 번역된 『파우스트』를 사고 싶었는데 말이다.

여행 때 들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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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바흐 켈러 기념품샵


책을 샀으니 마음 놓고(^^) 기념품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사진을 대놓고 찍지 못하는 소심함 때문에 돈이 든다. 헉.)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어떤 문서도 찍고,

괴테 인형도 찍고, 책들도 찍고.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자리로 돌아가려는 길에, 나를 발견한 직원이 무슨 말을 전한다.

아마도 식사를 하라는 얘기 같았다.

자리로 돌아갔더니 직원이 바로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없어 기다렸던 게다. 고마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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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맛났던 돼지고기로 만든 요리

 

맥주 맛은 잘 모르겠지만, 식사는 매우 맛있었다.

아쉬운 것은 『괴테와의 대화』를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맥주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책을 읽어야지, 라는 계획이었는데...

그런 호사를 포기할 순 없다. 내일 또 오면 되지. 뭐. ^^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고함을 지른다.

빨간 망토에 빨간 장갑, 빨간 뿔을 단 사람이 등장했다.

『파우스트』의 등장인물이었다. 켈러 내에서 펼쳐지는 공연이었다.

독일어로 한참 진행되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당연히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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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어바흐 켈러에서의 공연 주인공

 

이튿날, 니콜라이 교회와 라이프치히 대학을 돌아 본 후

점심을 소시지로 해결하고 나는 다시 켈러로 향했다.

『괴테와의 대화』를 들고 오는 건 잊지 않았다.

작은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책을 꺼냈다.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는데 썼다. 필스임에 분명하다.

(필스 : 필스너(Pilsner)를 흔히 부르는 말. 내가 별로 안 좋아했지만

독일에서 가장 대중적인 맥주라기에 조금씩 정을 붙이고 있는 맥주임.)

 

낮 시간에는 의외로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맥주 한 잔을 시켜도 덜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내게는 다행이다.

나는 편안히 『괴테와의 대화』를 읽었다.

딱 20페이지를 읽었는데, 지금 다시 펼쳐보니 메모가 많다.

집중이 잘 되었는지, 의미 있는 장소여서 그랬는지

아무튼 아주 유쾌한 독서 경험이었다.

'예견'에 대하여 에커만과 괴테가 나눈 대화는

다음 와우 수업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었다. 체크해 두었다.

 

짤렌 비테!

점원에게 웃으며 한 마디를 건넸다.

여행 떠나기 전에 독일에서 살았던 와우팀원에게 배운 독일어다.

정말 몇 마디 할 줄 모르는데, 활용할 때는 자신 있게 말한다. ^^

뜻은 간단하다. Check, please. 계산해 달라는 게다.

2.50 유로였고, 3유로를 주었다. 50센트면 20%를 팁으로 준 게다.

그러면서 컵받침 하나를 얻을 수 있냐고 물었다.

어제도 팁을 조금 많이 주었던 그 점원이어서 희망이 있었다.

한 개면 되냐는 점원의 말에, 물론이라고 대답해 놓고선 금방 후회한다.

두 개 달랄 걸. 그런데 점원이 두 개를 챙겨 주었다. 고마운 그.

조금 많은 팁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

(원래도 아깝진 않았다. 서로 기분 좋게 살아가는 방식이니까.)

 

켈러에서 나오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3시 30분이었다.

아우어바흐 켈러 방문 기념이 될 컵받침과

『괴테와의 대화』를 가방에 소중히 챙겨 넣었다.

오후 일정이 괜히 기대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음 여행지를 향했다.

 

 

<아우어바흐 켈러에서 쓴 단상들>

 

1) 수백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영업을 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전통을 중시하는 유럽 문화와 기술력 좋은 건축술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들은 도로를 닦고 건물을 세울 때 도대체 몇 년 후를 내다보는 것인지?

 

2) 괴테가 이곳에서 술을 한 잔 했다는 말인가.

내가 바로 그 술집에 내가 들렀단 말인가.

기념품으로 책 한 권을 샀고, 책자(요리와 키친에 대한 이야기)를 둘러보았지만

『파우스트』를 모르니 감동이 적다. 알아야 느낀다.

유럽 여행에는 지식이 필요하다. 특히 역사와 인물에 대한.

괴테가도는 괴테의 작품을 읽고 난 이후라면 좀 더 흥미로울 것이다.

 

3) 공부하기 about

합스부르크, 드러커, 괴테, 니체, 실러, 베토벤, 유럽 건축술, 유럽 중세사, 영어, 프라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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