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54일 동안의 유럽 배낭여행 중이었다. 행복한 50여 일을 보냈고, 2박 3일 파리 여행만을 남겨둔 때였다. 불상사가 발생했다. 줄곧 내 등에 달라붙어 유럽을 함께 여행했던 배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기차역 보관함 앞에 내려놓고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이 사라진 것이다. 처음 겪는 도난 사건이었다. 가방을 두고 5~6미터 걸어가다가 뒤돌아보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보관함에 넣을까?’ 잠시 고민했다. 2유로라도 아끼자며 ‘괜찮을거야’라고 속삭였다. 그것이 가방과의 마지막 눈맞춤이었다. 당장 저녁에 입을 외투조차 없었다. 지갑과 돈도 모두 가방 속에 들었다. 한동안 주변을 뛰어다니며 찾았다. 소용없었다. 역사 주변을 헤매는 나의 뜀박질을 보면서 생각했다. ‘사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노력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