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216

구이지학에 머문 사람들에게

어느 여대생이 “남자는 군대에 가야 해”라고 말했다. 그녀는 군대를 다녀온 남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를 두고 둘의 인생과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여 비교하여 말한 걸까? 아닐 것이다. 다음과 같은 상상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언젠가 술자리에서 복학생 선배의 군대 개똥철학을 들었다. 그리고는 잊었다. 다른 술자리에서 군대 이야기가 나왔다. 문득 선배에게 들은 군대론이 떠올랐다. 자기도 모르게 복학생에게 들은 입대 당위론을 펼친다. 젊은 날의 대화라면 괜찮지만 인문학을 이렇게 공부하는 건 아쉽다. 구이지학(口耳之學)을 이룰 뿐이다. 구이지학이란 “귀로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이야기하는, 조금도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학문”을 뜻한다. 생각하지 않으니 깊어질리 없다. 생각하지 않았으니, 실천과도 멀어..

지적 욕망이 독서를 방해한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은 왕성하게 책과 정보를 읽어 들입니다. 독서 목적을 세우지 않고서도 말입니다. 왕성한 지적 욕망에 걸맞게 날로 지성이 깊어지면 좋으련만, 끊임없는 지식 습득에 비하면 지적 성장이 더딘 경우를 봅니다. 책 선택이 눈먼 골동품 수집가의 모양마냥 체계도 우선순위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지적 성장을 이루려면, 목적을 욕망에 앞세워야 합니다. 욕망이 무분별하게 뻗어가는 것을 제어해야 합니다. 욕망을 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목적이 방향을 제시한다면, 욕망은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니까요. 욕망의 한계를 인식하여, 때로는 고삐를 풀어주고 때로는 재갈을 물려야 합니다.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니까요. 목적 없는 공부는 구슬만 만드는 셈입니다. 목적이 구슬을 꿰어줍니다. 인문학만 감안하더라도 문학..

부모의 은혜를 어찌 하리요?

『격몽요결』의 5장 사친(事親)은 부모님을 향한 효를 다룬 장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효를 행하는 이는 드뭅니다. 그 까닭에 대해 율곡 선생은 “자기 부모의 은혜를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일갈합니다. 잘 알지 못하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잘 알고 나면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가 어려워지고요. 깊이 안다는 것(深知)은 중요합니다. 2,500년 전 소크라테스도 명확한 앎이 곧 삶에서의 실천으로 이어진다고 말했었지요. “천하의 모든 물건은 내 몸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 그런데 이 몸은 부모가 준 것이다. … 부모가 나에게 이 몸을 주셨으니 천하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준다 해도 이 몸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 율곡 부모가 몸을 주셨으니 그에 대해 감..

율곡 선생의 독서론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라야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를 뚜렷하게 깨달아 진보해 나갈 수 있다. 이치를 궁리하려면 글을 읽어야 한다." 『격몽요결』의 제4장 독서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기대한 장이지만, 오히려 감동은 뒤이어 나오는 효나 상을 당했을 때의 규례에 대한 내용보다는 감동이 덜했습니다. 독서에 대한 율곡 선생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기도 하나, 얼마 전 유학의 예(禮)에 대한 책을 읽으며 느낀 바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독서에 대한 중요 내용을 정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글을 읽는 자는 반드시 단정하게 손을 마주 잡고 반듯하게 앉아서 공손히 책을 펴놓고 마음을 오로지 하고 뜻을 모아 정밀하게 생각하고, 오래 읽어 그 행할 일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고맙습니다. 율곡 선생님!

저는 천성이 성실한 편은 못 되어, 멋지게 살려면 자주 깨우침과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내 나태해지고 맙니다. 책은 제게 삶의 자극을 줍니다. 책을 읽으려고 자주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율곡 선생의 『격몽요결』은 읽고 또 읽는 책입니다. 제 인생경영을 돕는 소중한 경전이지요. 『격몽요결』은 선생이 42세 때(1577년) 쓴 책으로,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들을 향한 가르침을 담았습니다. 제목(擊蒙要訣)은 '어리석음을 떨쳐내는 요긴한 비결'이란 뜻입니다. 율곡 선생을 찾아와 가르침을 달라는 유자들이 많았나 봅니다. 서문에는 선생의 집필 의도와 겸손이 묻어납니다. "내가 남쪽 바다에 집을 정하고 살려니 학도 한두 사람이 와서 나에게 배우기를 청했다. 나는 그들의 스승이 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

인문학 첫 공부를 돕는 책들

1. 모티머 J.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은 제대로 책을 읽고자 하는 이들, 특히 공부와 연구를 직업으로 삼으려는 이들에게 매우 요긴한 책이다. (독서를 처음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권했을 때의 대체적인 반응은 너무 디테일하고, 어렵고, 지루하다는 것이었다. 참고하시라.) 지금까지 읽은 독서법에 관한 책을 두 권만 읽으라면,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과 『나는 읽는 대로 만들어진다』다. 전자는 내 독서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후자는 나의 첫 책을 개정판으로 다듬어 보완하기 위해서다. 둘 다 내게 필요한 일이니 죽기 전엔 해내겠지. 2. 모티머 J. 애들러의 새로운 책, 『평생공부 가이드』가 번역되었다. (공부와 독서라는 주제로 새로운 책들을 많이 출간해주어 고마운 유유출판사의 책이다.) 독서법의..

의미와 경외심을 회복시키는 기예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가장 감동했던 대목은 1) 허무주의 시대에 대한 처방을 문학 작품 속에서 건져 올렸다는 사실과 2) 테크놀로지 시대에 대항하여 의미 심장한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기예를 연마하라는 제안이었다. 3) 책의 주제에 줄곧 현상학적 방식으로 접근한 것도 이 책을 신뢰하게 했다. 나는 불가능에 가까운 '최선의 추구'라면 보다 현실적인 '최악의 제거'를 선호한다. 4) 참된 확신은 내면에서 제조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 이끌리듯 경험되는 것이라는 주장도 인상 깊었다. 5) 서로 다른 양극단의 가치, 인간 삶에 필요한 배타적인 두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한 저자들의 지성도 빛났다. 저자들이 이야기한 '기예'는 장인적 기술을 말한다. 기예는 작은 차이를 구분할 줄 아는 눈을 갖게 한다. ..

르네상스 시대의 문학 작품들

르네상스 문학을 공부하면서 주요 작품들을 읽는 요즘이다. 지난 해, 세계문학사를 강의하면서 서양문학의 주요 흐름을 일갈해 둔 것이 공부의 방향과 초점을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부에서 거시적 안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인데, 공부하면서 거듭 그 중요성을 절감한다. (르네상스 문학으로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지 몰라 나라별로 최고의 주요 작품 하나씩만 소개해 본다.) 국가 작 가 작 품 특 징 이탈리아 보카치오 『데카메론』 , 최초의 근대인 프랑스 몽테뉴 『수상록』 최초로 자기이해를 추구한 에세이 영국 셰익스피어 『햄릿』 역사상 최고의 극작가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당시 유럽의 지적 군주 스페인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소설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 한 권씩만 뽑다보니 불가피하게 빠진..

나는 왜 책을 읽는가

위대한 접속 : 나는 왜 책을 읽는가 1. 책을 읽는 까닭은, 독서와 비독서의 시간으로 구분하면 두 가지다. 독서하는 동안에 누리는 책읽기의 기쁨, 책 읽지 않는 시간을 잘 살기 위한 준비. 유희로서의 독서, 수행으로서의 독서! 2. 독서는 삶에 유용한 태도, 열정, 지혜를 안겼다. 실천의 몫이 고스란히 남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살이의 불안과 두려움은 많이 걷혔다. 즐거움, 유익과 더불어 평온마저 안기는 독서라니! 나는 책읽기에 ‘시간을 내었다’. 3. 독서하는 이유는 또 있다. 독서는 일종의 여행이다. 혼자 여행을 다녀오면 나는 떠나기 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책을 읽을 때에도 조금씩 달라지고 성장했다. 좋은 책을 골라 정성스레 읽고 싶어졌다. 나는 책읽기를 점점 더 ‘즐..

공부의 즐거움과 괴로움

1. 감사하게도, 지난 해(2013년)부터 고종석의 절판된 책들이 재출간되고 있다. 이번에는 『빠리의 기자들』이다. 이제야 선생의 처녀작을 읽는구나. 그나저나, 절필을 선언하니 절판된 책마저 출간되는 작가라! 고종석의 빛나는 글을 생각하면 당연지사라 생각하면서도 선생의 작가로서의 삶이 부럽다. 탐미적이면서도 기품 넘치는 문체가 사유의 힘까지 지녔으니, 나로선 입 벌려 감탄할 수 밖에... 언젠간 나도, 모든 일을 훌훌 내려놓고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한, 단단한 사유가가 되기 위한 수련에 매진할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아! 또 지르고 말았다. 지난 해말, 알라딘 3개월 누적구입액이 2백만원을 넘었을 때 정신차리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다시 질러대기 시작한다. 2014년엔 책을 안 사겠다는 다짐은 내 뜨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