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N①] 폭풍전야

카잔 2011. 1. 23. 14:08


1. 폭풍전야
- 어느 기분 좋은 하루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 일주일 내내 괴로웠던 그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자신의 일터인 카페로 돌아간 날, 세상은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처음엔 질퍽했던 길바닥 위에도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기를 기원하듯이 눈송이는 더욱 도톰해졌다. 새하얀 도화지에는 어떤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으니까. 집을 나서기 전, 사내는 샤워를 했다. 여느 때보다 오랜 시간 동안 비누거품을 내어 온 몸의 구석구석을 깨끗이 씻어냈다. 그는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빠짐없이 거품을 보내며 생각했다. 지금은 나를 괴롭혔던 가공할 만한 공허감과 무력감을 씻어 내리는 중이라고.

정확히 6일 전, 사내는 자신이 지금 앉아서 창 밖의 눈을 바라보는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즐겁게 일을 마무리했다. 1월의 어느 월요일이었다. 월요일마다 일단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일을 발송한 후, 점심 식사는 파리바게뜨에서 오믈렛을 주문하여 먹었다. 오믈렛을 먹으며 캐나다 여행에서 자주 오믈렜을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캐나다 뿐만 아니라, 20여개 나라를 여행했다. 여행 때마다 여행 기록과 깨달음을 기록해 두었다. 언젠가 여행에 관한 책을 낼 때, 긴요하게 쓸 사진도 많이 찍어 두었다. 사내는 그렇게 오믈렛을 먹으며 북미의 어느 식당에서의 식사를 떠올렸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있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식사 후에는 양평군 양서면으로 가서 서너 시간 발품을 팔았다. 새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도시에서만 자란 사내에게 시골의 집들은 지저분했다. 신축이 아니면 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중개인이 소개해 준 3개의 매물은 사내에게 이상과 현실의 조율을 요구했다. 사내는 여전히 20대의 원대한 포부를 가졌지만, 꿈의 실현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란 걸 알 만한 나이였다. 서른이 넘었으니까. 서른은 현실을 직시하는 눈이 형성되는 나이다. 서른을 넘긴 덕분에 그는 마지막으로 소개 받은, 한적한 시골 마음에 위치한 집이 마음에 들자, 그 자리에서 결정했다. 이 집으로 하겠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받아쳤다. 화끈하시네요. 세 번째 중개인이 소개해 준 첫 집이니, 그에게는 네 번째 본 집이지만, 중개인에게는 첫번째 집이었다. 결정 후, 사내는 자신의 과단에 뿌듯해하면서도 너무 빨리 결정한 것 아닐까, 하며 살짝 불안해하기도 하며 용산행 중앙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중요한 일 하나를 끝냈다는 청량감이 컸다.

시간만 나면, 201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계획해 왔던 사내는 수첩을 펼쳐 들고 이사에 따른 삶의 변화를 따져가며 자신의 비즈니스 구상을 다듬어나갔다. 자리에 앉자, 머릿속에 정리된 노트북을 열어 파일로 저장했다. 그러다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노트북 화면이 멈추어 버렸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화면을 닫았다. 화면을 닫으면 자동 대기 모드로 바뀌는 노트북이기에 집에 가서 확인해 볼 요량이었다.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수첩을 다시 펼쳐 들어 구상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뭔가 많은 일을 한 듯 뿌듯함이 느껴지는 하루라고 생각했다. 퇴근시간이 지났는지 지하철에는 직장인 차림의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녁 약속은 어느 청년을 만나는 일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자기 동생이 요즘 방황을 하고 있으니 한 번 만나달라고 하여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랐지만, 걱정되지는 않았다. 그 청년에 대한 소개를 들어 보니, 허황된 기대를 가질 사람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변한다. 허나, 단 한 번의 식사 교제 만으로 그의 모든 절망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방황 청년은 그럴 허항된 기대를 할 성정이 아님을, 약속을 정하는 메일을 주고 받으며 알았던 것이다.

기적의 가장 놀라운 점은, 그것이 한번씩 일어난다는 점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 허황된 일이 그 날, 일어났다. 방황 청년도 오늘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왔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식사 후, 카페에서 100여분 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눈 뒤에는 놀랍도롭 변하였다. 눈빛은 반짝 빛났으며,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온 몸에 활력이 넘쳤다. 그를 만난 것은 매우 기쁘고 자신에게는 큰 행운이라고, 방황 청년이 말했다.

사실, 방황 청년은 이미 방황을 끝낸 후였다. 다만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청년은 어떤 하소연이나 환경 탓을 하지도 않았다. 지난 날의 과오와 방황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자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대오각성 없는 다짐은 하루 이틀 꿈틀대다가 사그러진다. 방황 청년은 크게 뉘우친 흔적이 역력했다. 청년은 자신의 앞날을 긍정하기도 했다. 청년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있는 그는 방황 청년의 앞날을 기대했다. 청년에게는 새로운 삶을 열고자 하는 뜨거운 욕망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에게서 대오각성, 자신감, 욕망을 확인한 그는 구체적인 지침을 이야기해 주었고, 청년은 그가 제시한 일련의 지침에 감명을 받은 듯 했다. 이제 자신이 무얼 해야 할지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청년과의 만남이 매우 잘 진행되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흥얼거리며 샤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잠시 후 자신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새해가 되어 굉장한 생산성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그가, 하나의 사건 때문에 며칠 동안 잠 못드는 날을 보내게 될 줄은, 무얼 해야 할지 몰라 하루 종일 TV 예능 프로만 연이어 쳐다보게 될 줄은, 전화 한 통을 받고서는 자기도 모르게 초조해다가 결국 흐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종종, 도무지 예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불청객은, "오늘 오후 2시 40분, 내가 당신을 찾아갈 거요. 그렇고 알고 계쇼"라는 언질 없이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그래서 인생이요, 그래서 불청객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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