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생각과 행동을 통합하기 위하여

카잔 2011. 1. 31. 12:23

세르반테스는 "모든 길은 여인숙보다 낫다"고 말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닙니다. 짐작컨대, 세르반테스는 행동주의자입니다. 적어도 그가 그려 낸 돈키호테는 분명히 행동주의자입니다. 행동주의자는 도전과 행동으로 배우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도 잠시 세상으로 향하는 문을 닫고 창가에 앉아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사색이 종종 필요하다는 것이지, 사색으로 인생의 승부를 걸라는 말이 아닙니다. 방 안에 있으면 좀이 쑤시는 그들이니,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야 힘이 날 것입니다. 제가 하고픈 말은, 길 위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행동주의자도 방 안에 머무는 법과 그 유익을 깨닫는다면 더욱 탁월해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몇 해 전에 방 안에 머무는 법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파스칼의 말 덕분입니다. "인간이 불행해지는 단 한 가지 이유는 홀로 가만히 방 안에 머물 줄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 『팡세』에 있습니다. 전후 문맥이 기억이 안 나서 파스칼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유 혹은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 싶습니다. 팡세의 이 말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 창조적인 고독을 내 삶에 한 조각이라도 구현해 보고 싶어서, 20대 중반의 저는 이런 저런 노력을 했습니다. 혼자만의 여행 떠나기, 혼자 책을 읽으며 사색에 잠기거나 산책하기 등을 말입니다. 38일 동안 중국을 홀로 다녀왔고,, 50일에 가까운 시간을 유럽에서 홀로 지내기도 했지요. 또한 자주 홀로 있는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훨씬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보낸 듯 합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제 성정이 그러하다는 게지요.)

저의 시도가 적절했는지, 아니면 노력이 가상했는지 그 원인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저는 혼자서도 잘 노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책이 있으면 두말할 나위가 없고, 책이 없어도 몇 시간을 즐겁게 놉니다. 외로울 겨를이 없지요. 외로움은, 자기를 아는 지식을 갖게 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를 잃어버리면 세상 어디서든 외로워집니다. 은희경의 단편 [연미와 유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곳에 온 지 일년 만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뉴캐슬도 고독한 장소라는 것을." 우리는 고독한 장소에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기에 외로워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자신의 인생과 화해하지 않고,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말입니다.

2011년 들어, 저는 문화 속에 숨어 버린 나를 찾기 위해 또 하나의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가치가 아닌) 물질주의, (자연의 순리를 거스리는) 인간의 욕망, (여유와 느림이 아닌) 속도가 중요시되는 삶의 방식에 제가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사를 감행하였습니다. 이사의 가장 큰 목적은 지금까지 꾸준히 써 왔던 여러 책의 원고를 탈고하여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였지만, '실험'이라는 좀 더 고상한 목적이 생긴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불행하게 여겨지는) 사고로 인해 그 원고를 몽땅 날려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번 실험은 자의가 아닌 타의인 셈입니다. 이사를 하며 울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겨자까지도 아니지만, 어쨌든 책 출간에 비하면, 꿩 대신 닭 정도로 보이는 이번 실험입니다. 매우 매우 아쉬운 (때때로 괴롭기도 한) 일이지만, 서글프지는 않습니다. 상실은 인생의 일부니가요.

아! 인적이 드물다는 말을 고쳐써야겠습니다. 드문 게 아니라, 인적이 없습니다. 제가 이틀을 지내 본 바에 의하면, 인적이 없습니다. 여러 번 집을 드나들었지만,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세계약을 할 때, 집주인을 보았을 뿐입니다. 밤이 되면 집으로 오는 길이 칠흙같이 어두워 후레쉬를 있어야 할 지경입니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신에 대한 작은 신뢰가 있어서인지 무섭거나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몹시도 생경했습니다. 이전에 살던 집은, 1분만 걸어나가면 테헤란로 이면 도로입니다. 직장인들이 찾아드는 수많은 음식점과 술집이 있는 곳입니다. 5분만 걸어나가면 선릉역이 보이고, 수많은 카페가 있습니다. 선릉역의 새벽 4시는 새로 이사한 곳의 밤 8시보다 훨씬 환합니다. 너무나도 서로 다른 공간이 한 나라에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생경할 뿐 무섭진 않습니다. 아마도 이제 겨우 2~3일 지내서일 것이고, 브라질 여행 준비에 정신이 없어서일 것입니다. 여행 후 며칠을 지내다 보면, 무서워 죽겠다고 말할지도 모르지요. 혹은 지루하고 외롭다는 말을 늘어놓거나.

제가 잘 견디어 내든, 그렇지 않든, 나를 지지해 주고 신뢰해 주는 분들이 있기에 나는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잘 지내게 될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한 제게, 비록 소수일지라도 그런 분들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처럼 숫자가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지요. 제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일부는 나를 아껴주는 진심 어린 몇 분들의 애정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은, 괜찮은 글을 나누는 것인데 노트북의 자료들을 날려 버려 아쉽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이처럼 요즘 제 사고 과정은 깔대기와 같습니다. 모든 생각이 결국엔 불행한 그 사건으로 모아집니다. 허허. 나를 탓하거나 부정하지 않습니다. 제 인생이니까요. 최근 며칠 동안은 그런 저를 관찰하며 잠깐 입꼬리가 올라가는 매우 짧은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허허, 하고 웃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 날이 오든 오지 않든, 저는 툭툭 털어버리고 일어날 것입니다. 글 하나를 쓰며, 쓴 글을 지팡이 삼아 나를 일으킬 것입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보탭니다.
피터 센게에 의하면, 학습이란 생각과 행동을 통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깨달음이 학습의 본질이라면, 생각만 하던 이는 행동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행동만 하던 이들은 사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행동주의자들에게 '구체적인 계획과 회의'는 시간 낭비로 보이니까요. 그들은 말합니다. "아, 알았으니까 일단 한 번 해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그들은 종종 성공을 거두지만, 성공을 거두게 된 원인 파악에는 서툴러 성공을 재생산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사를 한 까닭은 결국, 생각과 행동을 통합해 보려는 시도였습니다. 제가 쓴 글 중에 성찰의 힘을 강조한 내용이 많은데, 나의 성찰력이 어떠한지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또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상을 변혁하라는 선동도 많은데, 저부터 제대로 실천해보고 싶었습니다. 하드디스크를 날린 사고는 이런 시도를 Pause 할 수 있을 뿐, STOP 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 Pause 의 기간 동안에, 혹 내가 망각하고 있던 중요한 것은 없는지 돌아볼 것입니다. 다시 Play 가 시작될 즈음에는 저는 이전보다 더욱 신나게 놀 수 있을 것입니다. 길을 걷다 넘어지지만 다시 일어선 이들의 손에는, 길 위에서 주운 무언가가 쥐어져 있습니다. 제게 이 습득물은 어쩌면 분실물보다 더욱 고귀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비록 저는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부디, 그 습득물이 生을 더욱 잘 놀게 만드는 도구이기를 바랍니다.

- 카타르 도하 국제공항에서, 뒤늦게 이사를 돌아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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