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나는 이번 이사를 후회한다

카잔 2011. 3. 26. 12:04

브라질 여행을 마치고 제가 돌아온 곳은 서울이 아니라 양평이었습니다. 25일이 지나는 동안, 시골 생활에 대한 제 생각과 감정이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앞으로 또 어떻게 바뀌어 갈런지에 대한 기대감과 두려움이 있네요. 기대감은 점점 이곳이 좋아지기 때문이고, 두려움은 하나의 선택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때로는 매우 크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잘 살기란 참 어렵구나, 하는 사실을 자각할 때의 두려움 말입니다. 성실하게 살아도, 때론 한 영역의 진보가 다른 두 영역에서의 퇴보를 가져오기도 하니까요.

시골 한적한 곳에서 한 번 살고 싶어 이사를 왔습니다. 중년 이후가 아닌 젊었을 때 그러고 싶었습니다. 사실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지는 예측불가였습니다. 도전해 보아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럴 때마다 내가 푯대로 삼는 것은, 인생은 하나의 거대한 실험이다, 보다 많은 실험을 하면 멋진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다가도, 시골로의 이사는 너무 위험한 실험, 거대한 실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되돌리려면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니까요. 그렇게 결정하지 못한 채로 보낸 세월이 지난 1년이었습니다.

3월 25일, 창을 열고 찍은 복포리의 아침


2011년 1월 17일 오후, 나는 이 집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은 원룸이니 나 하나 살기엔 좋습니다. 멀리 남한강이 아주 조금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바깥 풍광이 잘 보이는 큰 창입니다. 지금 나는, 마음에 들었던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수천 권의 책을 정리하는 데 20여일이 걸렸습니다.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없어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어 정리했던 게지요. 정돈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최그에 책상 하나 마련해 두고 나니 점점 더 애착이 가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와우팀원 몇이서 제가 있는 곳으로 다녀갔습니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아 집 안으로 초대하지는 못하여 근처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경치 좋네요, 하며 잠시 동안의 일상 탈출에 즐거워했습니다. 한 번은 와우팀원과 양수리에서 식사를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로 가서 차를 마셨습니다. 나의 집에서 10분도 걸리지 않은 양수리입니다. 그는 제가 아주 좋은 곳에 산다고 하더군요. 글을 쓰다 양수리로 훌쩍 바람 쐬러 오는 것도 좋겠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를 한 대 사야겠습니다. 차가 없으면 7~8분 거리의 양수리 '동네 한 바퀴'가 50~60분 거리의 '마음먹고 나서야 하는 나들이'로 탈바꿈해 버립니다. 지하철로는 고작 두 정거장 7분 거리이지만,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데에 30~40분이 걸리고, 중앙선은 한 시간에 두 대만이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교통이 매우 불편합니다. 아마 집주인도 차가 없는 사람이 들어와 살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겁니다. 집앞에 널찍한 주자창이 있으니까요.

나는 며칠 동안 이곳에 온 걸 후회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이사온 것에 대해 좋은 시각으로 봐 주시는 분에에게 진실 고백에 대한 글을 쓰려 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이것 저것 따지어 최적의 이사를 한 것이 아니다, 풍광에 꽂혀 왔다가 교통 불편으로 무지 고생하고 있다, 나는 작년 4월에 진접으로 이사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다, 여러분들은 이사 신중히 하셔라, 이번 이사 결정은 나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식의 글을 쓰려고 했지요.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습니다. 괜히 미화되는 건 싫으니까요.

게으른 게 탈입니다. 조금 바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주일이 더 지났습니다. 지금이라도 후회스러운 점들을 정리해 두고 싶었습니다. 후회의 핵심 원인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교통이 불편하면 집이라도 커서 와우들이 놀러 오기에도 좋아야 할 텐데, 라는 생각입니다. 지난 해 이사를 하려고 했던 진접에 있는 신도 브래뉴는 집이 정말 크고(49평) 좋았거든요. 게다가 집값도 무척 저렴했지요. 이 곳은 거기보다 집도 좁고, 교통은 훨씬 불편합니다. 

두번째 후회의 원인은 '지랄 같은 길'입니다. 집에서 국수역까지 걸어가는 길 말입니다. 걸어서 30~40분 소요되는 이 길은 한적한 시골 오솔길이 아니라, '경강로'라 불리는 6번 국도 길입니다. 인도도 없는 찻길이지요. 입으로 내 뱉은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정말 지랄 같은 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그 길을 걷는데, 문득 차만 사면 모든 게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가용 통근용으로 지은 집에 차 없는 놈이 와서 교통 불편하다고 투덜대었구나, 하는 자각이었습니다. 지랄 같은 것은 이 길이 아니라, 제 자신이더군요.
 
사실 첫 번째 후회의 원인도 지나간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아쉬워하고 집착하고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비교하는 제 못난 모습이야말로 진짜 원인인지도 모릅니다. 한 여인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혼기를 놓친 그녀는 자신의 친구들과 지금까지 괜찮게 생각해 왔던 남자들이 모두 시집 장가를 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보다 젊었을 때 만나다 헤어졌던 그 남자가 사실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그 남자를 떠올리면 잡지 못했다는 생각에 제가 한심스러워요." 여인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경험까지도 자신의 미래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입니다. 다만, 과거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면 안 될 것입니다.

나에게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된 결정을 합니다. 문제는 실수를 한 것 자체가 아니라, 과거의 실수에 연연해하며 아쉬워하고 후회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제가 해야 할 일은 제 결정에 대한 후회를 인정하고 그러한 경험을 미래 건설의 원동력으로 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은 사람들이 성공과 행복을 비결을 찾아다니느라 값싼 지혜처럼 여기지만, 사실은  보배와 같은 지혜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지 깊이 음미하며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두번째 후회의 원인, 지랄 같은 길 혹은 불편한 고통에 대해서도 들여다 보겠습니다. 모든 것은 그것의 쓰임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 쓰임에 걸맞지 않는 태도와 준비로 다가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고서는 자기에게 맞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거 이상하네' 이상한 것은 바로 우리들인데 말입니다. 제가 바로 그 짝입니다. 주차장 큼직한 집에 차 없이 들어와서는 투덜대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사 결정에 대한 후회는 잠시 보류합니다. 차를 몰고 다닌 후에 다시 생각하려구요.

자동차 운전면허 학원을 알아봤더니 이게 또 문제네요. 셔틀버스는 커녕 제가 쉽게 갈 수 있는 학원이 없습니다. 여기서도 지랄 같은 것은 이 동네가 아니겠지요. 여지껏 운전면허증도 취득 못한 제가 원인이겠지요. ^^ 하긴, 인터넷 설치엔 한 달이 넘게 걸린다 하고, 신문 이전 신청은 안 받아주고(신문이 못가는 지역이라네요), 아직 전화 개통도 안 된 곳인데 운전학원 셔틀 버스가 올 리가 없지요. 그래도 나는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어 운전면허증을 딸 겁니다. 후회의 큰 원인은 서울에 나갈 때 발생하니까요. 지랄 같은 길을 걷고 90분 넘게 지하철을 타야 하는 상황이 버거운 게지요.

생각해 보면, 이곳의 좋은 점도 참 많습니다. 창 밖을 바라보면 그저 좋고, 책과 함께 있으면 참즐겁습니다. 이런 점들은 서울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마련할까, 하는 생각을 접어두고 싶을 만큼 참 좋은 면입니다. "심심하면 글도 안 써진다"던 지인의 말은 그에게만 해당되는 듯 합니다. 나는 이 곳에서 누구도 만나지 않고 6일 동안 있었던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전혀 심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울 갈 일이 제발 없었으면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와우모임은 예외이고, 외출할 수 밖에 없는 일도 생길 것입니다. 제가 살 길은 하나입니다. 자동차 운전면허증!

이 곳의 좋은 점을 나열한 것은 스스로의 후회스런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것도 아니고, 나를 위안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내 영혼은 합리화와 위안 없어도 나의 불찰을 잘 견뎌 냅니다. 이사 결정에 대한 후회는 이미 과거형이 되고 있기에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이지만, 이렇게 정리해 두는 건, 후회했다는 사실이 제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더 좋은 결정을 하고 싶다면, 합리화를 하지 않은 진짜 사실이 중요하니까요. 자기 합리화는 훗날에 더 좋은 결정을 하는 데에 방해가 됩니다. 훗날에는 진짜 중요한 사실은 잊혀지고 합리화한 것만 기억나니까요.

이제, BMW 매니아인 제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오겠군요. 버스(Bus), 메트로(Metro), 걷기(Walking)로 34년을 이동해왔는데, 여기서는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좋은 점 :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생활 자체와 맛난 음식점들 그리고 좋은 공기와 밤하늘의 수많은 별과 나만의 서재 공간. 나쁜 점 : 무진장 불편한 교통, 편의시설 부족(슈퍼도 하나 없으니) 그리고 인터넷. 나쁜 점 중에서 인터넷 문제는 스마트폰의 모바일 AP 기능으로 (무지 느리지만) 해결했습니다. 이제 또 하나, 운전면허증을 해결해야지요. ^^

따지고 보니, 좋은 점이 훨씬 많은데 나는 나쁜 점에만 집중하며 투덜대었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은 가능성과 긍정적인 면에 두고 계신가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