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책을 이야기하는 졸바

치열한 독서가를 만나다

카잔 2013. 5. 27. 00:27

치열한 독서가를 만나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지금은 고명섭과 마이클 더다를 더 좋아하지만, 나의 독서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는 단연 다치바나 다카시입니다. 나는 그의 책을 읽은 후에야 비로소 독서가가 되었습니다. 2001년 가을,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을 읽었고, 그것은 운명적 만남이라 해도 좋을 만큼 내게 지속적인 자극과 도움을 주었지요.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분명했습니다.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 선생이 독자들의 상반된 반응을 잘 정리했습니다.

 

“읽어 본 분들의 반응은 대략 두 가지였다. 우선 다치바나가 대단한 독서광이고 특유의 독서 노하우를 지닌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그의 독서술, 독서론이 일반인들에게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집필하여 먹고사는 저술가나 저널리스트에게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대다수 일반인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는 달리, 문자향, 서권기의 세계를 주유하며 인류 선단의 지식정보를 갈무리하는 다치바나의 모습에서 감동마저 느껴지더라는 반응이 있었다. 그런 반응을 보인 분들 가운데는 자신의 독서 생활을 반성했다는 분도 있었고, 자기 방 서재의 책들이 달라 보이더라는 분도 있었으며, 책 세상에 대한 동경 내지는 그리움이 고개를 들더라는 분도 있었다.”

 

나는 후자에 속합니다. 다치바나 씨와 비교하기에는 정도의 차이가 크지만, 방향의 차이는 없습니다. 2001년 이 책을 읽을 당시에도 나는 책을 무지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내 방에는 다치바나가 말했던 것처럼 각 분야별로 책이 50~60cm씩 쌓여 있습니다. 세 개의 책장에 책을 다 꽂고도 흘러넘치는 책들을 둘 때가 없어서 이 곳, 저 곳에 쌓아둔 책기둥이 10개도 넘었습니다. 리더십, 경영, 금융, 사상, 과학, 철학, 사회학, 역사, 종교, 재즈, 문학, 영어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었습니다. 각론을 깊이 파고 든 흔적은 없지만, 전방위적인 독서편력을 하던 시절입니다. 책상 위의 공간까지 책들이 차지해버려, 책을 읽거나 공부할 땐 앉은뱅이책상을 이용해야 했지요. 자료를 모은다는 명목으로 신문더미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작은 방은 온통 책 투성이였습니다.

 

그랬으니 다치바나 씨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이었고, 그의 삶은 내가 가야 할 표지였습니다. 이제 갓 인생을 배우려고 첫 발걸음을 뗀 젊은이에게 고명한 종교인이나 현자의 말씀은 가슴에 팍팍 와 닿을 수밖에 없을 테지요. 다치바나는 내가 가고 싶은 길의 최전방에서 서서 나의 길을 인도해 주었습니다. 워낙 압도적인 독서량을 늘어놓아 질려버린 이도 있겠지만, 내게는 더없이 좋은 방법론들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모두 내안으로 들어왔고, 다치바나 다카시는 내게 중요한 모델이 되었습니다. 표정훈 선생의 말대로 그가 ‘단 하나의’ 모델은 아니지만, 내겐 아주 멋진 모델이었죠.

 

그의 책을 읽은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다치바나 다카시의 ‘경지’에는 조금도 근접하지 못했고, 두 개의 방을 책으로 가득 채우고도 공간이 모자란 ‘지경’이 되었습니다. 달라진 점이 있기는 합니다. 그의 방법론이 이제는 제게 익숙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어제, 두 명의 작가지망생과 독서 이야기를 나눌 때였죠. 나는 한 분야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분야의 얼개를 짜두어야 체계적인 공부가 진행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치바나에게 배운 공부법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를 뒤적여 보니 이렇게 쓰여 있더군요.

 

“하나의 학문 세계로 들어갈 때, 우선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 세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밑그림을 하루라도 빨리 머릿속에 그리는 일이다. 그 학문 분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가?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법-방법론에서는 어떤 것이 있는가? 그 학문으로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알 수 없는가? 이 ‘무엇을’, ‘어떻게’라는 물음은 어떤 학문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더라도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이들이 다치바나 다카시를 역할모델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그를 한번 접해 볼 필요는 충분합니다. 그의 독서열정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나에게 독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쫓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독서열정과 스타일을 발견하기 위해서 ‘다치바나 다카시 읽기’는 유익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제격입니다. 독서가로서의 그를 제대로 보여주니까요.

 

- 나도 많은 책을 읽어왔다,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