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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생활의 기초, 현실인식!

카잔 2013. 12. 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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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의 기초, 현실인식!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문학동네

 

결혼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행복의 근원일까요? 불행의 원천일까요? 흑백논리를 조장하는 질문이군요. 다시 여쭙습니다. 결혼한 당신은 어떻게 살고 계세요? 사랑의 결실로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한 여러분의 삶, 안녕하신가요?

 

미혼인 당신에게 결혼은 무엇인가요? 연애의 종점에 이르렀을 때, 이별을 제외하면 남게 되는 유일한 옵션인가요? 아니면 행복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선택한 인생의 필연적인 여정인가요? 사실 미혼인 상태에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알랭 드 보통은 말합니다.

 

“결혼의 곤란한 점은, 해 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도, 느낄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들 투성이라는 것이다.”

 

“일단 결혼을 하고 나면 대수롭지 않은 디테일이란 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잠깐씩 만났을 때는 보이지 않던, 혹은 보여도 인내하거나 용인되었던 ‘디테일’들이 결혼 생활에 접어들고 나서는 불편과 짜증을 부르는 ‘썸씽 스페셜’이 됩니다. 결혼은 찰나가 아닌 일상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도 일상이 되면 지루해지는데(쾌락 적응), 하물며 잘 맞지 않은 불편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제가 보기에, 행복을 위해 결혼한다는 이들은, 너무 순진해 보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가 아닐까요? 관찰력이 형편 없거나(주변의 불행한 커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인생의 일면만 보며 살거나 (불행이 보여도 눈을 감아 버리는 이들 말입니다),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거나(불행은 나와는 상관없지, 나는 행복할꺼야).

 

그도 아니면 낭만적 사랑을 믿는 이들이겠지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생계유지나 자녀 양육의 의무와는 별개의 일이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두 사람의 애틋한 감정을 저절로 키워주는 것도 아닌 데도, 많은 커플들은 결혼 생활에 대한 준비는 등한시한 채로 결혼식만을 준비합니다. 그들의 결혼식 이후의 삶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는 ‘사랑해서 결혼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하는 소설입니다. 아름다운 로맨스의 완성이라 불리는 결혼,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작가 정이현의 표현대로 ‘달콤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무대 뒤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블랙코미디 같은 작품’입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벤이라는 40대 남성입니다. 알랭의 말에 따르면, 벤은 다중적인 성격을 가져 “내면의 생각과 표면적 태도가 일치하지 않고, 그 나이대의 남성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은밀한 욕망과 과도한 죄의식 그리고 수많은 갈등에 시달리는 인물”입니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변덕스럽고, 피터팬 신드롬에 시달리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벤은 자신의 불안정한 감정으로 괴로워하고, 자녀 교육에 실패할까봐 염려합니다. 아내가 아닌 다른 여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 갈등하고, 삶의 구차한 문제들로 인해 전전긍긍합니다. 결혼 제도를 지켜가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그런 노력이 결실을 맺기보다는 노력의 힘겨움이 소설 전체에서 부각됩니다.

 

“벤은 늦어도 저녁 여섯시 사십 오분엔 퇴근하려고 노력했다. 지하철 안에서 그는 남은 저녁 시간을 근사하게 보내는 공상에 잠겼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혼자 가만히 있을 수 있다. (중략) 하지만 현실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음과 같았다.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벤은 아내와의 섹스 횟수가 줄어드는 데 자기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내가 거절한 탓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실은 성적 접촉을 피하고 싶은 상호간의 암묵에 자신이 동참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중략) 매일 밤 함께 이부자리에 드는 소중한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과 인터넷 채팅방에서 하는 섹스가 심리적으로 덜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더 흥분되었다.”

 

“한 명의 파트너와 장기간 성생활을 하는 데서 오는 현대의 위기는 누가 먼저 시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쪽이 원하지 않을까봐 양쪽 모두 감히 시작할 엄두를 못 낸다.”

 

섹스에 대한 인용을 두 번 한 것은, 알랭이 이리 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결혼제도의 가장 큰 모순이 독점적으로 허용된 섹스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일부일처의 독점적 성관계는 욕망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충족시키는 행위를 금기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억압이 생겨납니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금기, 욕망, 호기심의 역학 관계로 소설의 존재 이유를 역설한 바 있습니다. “금기는 욕망을 억압하고, 억압된 욕망은 원래의 욕망을 변형시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은 바로 그 욕망을 변형시켜 드러낸 것이어서 사람들의 한없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알랭이 김현의 글을 읽었을 리가 없지만, 천부적 재능으로 호기심을 건드립니다.

 

호기심을 풀면, 궁금증이 해소되어 시원해지는가 하면 ‘이게 다야?’ 하며 허탈해지기도 합니다. <사랑의 기초>는 후자의 경우입니다. “결혼의 그늘진 일상을 잔인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니까요. 하지만 허탈감은 부차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직면한 진실이 초라하거나 허탈해도 괜찮습니다. 현실직시로부터 변화와 성장이 시작되니까요.

 

결혼이라는 삶의 낭만적이지 않은 모습에 눈을 뜨면, 염세주의와 낙관주의의 갈림길을 만나게 됩니다. 선택은 독자 몫입니다. 알랭은 어느 쪽일까요? 그는 회의적이지만, 삶을 향한 낙관도 잃지 않습니다. 회의적이던 시각이 나이가 들수록 현실적이 되어가 점점 더 건강해져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전엔 건강치 않았다는 말은 아니고, 균형까지 갖춰간다는 말입니다.)

 

알랭이 우울하고 지난한 결혼 생활을 그린 것은 ‘결혼은 미칫 짓’이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 겁니다. 현재로서는 결혼을 대체할 만한 제도가 없음을 직시(현실적 관점을 견지)하고서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겠지요. 작가의 말을 통해 제가 캐치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발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결혼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위한, 동지적 연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다.”

 

벤의 고단한 삶과 책의 제목을 자꾸 되새기게 되는 소설입니다. 알랭은 모든 기혼 남성들에게 “결혼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겹고 고된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결혼 생활은 낭만 가득한 행복의 연속이 아니라, “쓸쓸하고 고달프고 무미건조하고 짐스러운 것”이라는 현실인식이야말로 ‘사랑의 기초’요, 나아가 ‘행복한 결혼 생활의 전제’라는 메시지를 전한 게 아닐까요?

 

단단한 땅 위에 서야 도약할 수 있으니까요.

행복한 결혼생활은, 실현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원대한 이상입니다.

정확한 현실인식을 갖춘 비전가들이 이상을 실현하지 아닐까요?

 

- 사랑의 기초는 갖춘, 미혼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