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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역사적 사실일까?

카잔 2013. 12. 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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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은 역사적 사실일까?

- 김진경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안티쿠스

 

트로이 전쟁은 역사적 사실일까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와 영화 〈트로이〉가 그려낸 드라마틱한 전쟁은 전설일 뿐일까요? 고대인들은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근대인들은 허구로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다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학자들이 많아졌지요. 19세기 후반,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기 때문입니다.

 

얘기가 나온 김에 트로이 전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두는 건 어떠세요?

 

청동기 시대, 고대 그리스 왕국 중 가장 강력한 국가는 미케네입니다. 군사적이나 정치적으로 월등했고, 문화도 앞섰습니다. (기원전 14세기에 미케네에서 제작된 도기는 트로이, 시리아, 이집트로 전파되었지요.) 미케네의 최고 번영기는 기원전 1,400년에서 1,200년까지입니다. 그때, 일어난 트로이 전쟁을 미케네가 주도했음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트로이는 다다넬스 해협 입구에 위치한 인도유럽계 왕국입니다. 현재 지리로는, 터키 마르마라 해의 서남쪽에 위치한 곳, 이스탄불의 아래쪽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에 대해선 기원전 8세기의 호메로스가 일찌감치 자신의 서사시에 밝혀 두었지요.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이 형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길에 나선 겁니다.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전쟁은 10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리스의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 트로이의 헥토르와 아이네이스 등은 후대에 이름을 남긴 명장들이고요. (트로이 전쟁과 두 나라의 명장들은 수많은 문학 작품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호메로스는 오뒷세우스의 귀환 이야기로 <오뒷세이아>를 썼고, 로마 최고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의 장군을 주인공으로 <아이네이스>를 썼습니다.)

 

트로이 전쟁은 오뒷세우스의 비책(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철수한 위장 전술) 덕분에 그리스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트로이의 목마’로 그 전쟁 이야기를 알고 있지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이 모든 이야기는 정말 역사적 사실일까요?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의 저자 김진경 교수는 찬찬히 이 질문에 대답합니다. 아래에 대답을 요약합니다.

 

“슐리만의 발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전쟁의 실재를 인정한다. 하지만 호메로스가 그린 대로 헬레나라는 여자 한 명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는 믿어지지 않아, 학자들은 전쟁의 원인을 두고 여러 가지 입장들을 제기했다. ‘리프’는 무역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미틀러’는 트로이가 교통의 요지임을 강조했다. 두 학자는 미케네 시대에 활발한 무역활동이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닐슨’은 중세 바이킹처럼 영웅들의 해적질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버묄’은 호메로스의 입장에 손을 들었다.”

 

저자는 생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고대 그리스를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학자다운 이론적 탄탄함이 책의 큰 미덕입니다. 앞서 보셨듯이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학설을 제시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과감하게 각주를 빼고 이야기하듯이 서술했습니다. 이 책의 저술 목표가 “학문성과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책”이니까요.

 

나는 이 책을 좋아합니다. 정확성과 깊이가 있음에도 쉽게 읽히거든요. 정작 저자는 아쉬워합니다. “학문성과 설화성의 절묘한 융합이 아니라 어느 쪽도 충실치 못한 어정쩡한 글이 되었다”는 이유로요. 서문에서, “무엇보다 내 생각보다는 남의 생각이 많은 남의 책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는 그에게 전화라도 걸고 싶더군요. 책 참 잘 읽었다고요.

 

정작 본인께선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 아쉬움을 빛나는 강점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점 말입니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을 제기한 학자들의 여러 입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요즘 가장 신뢰 받는 이론까지 소개합니다.

 

“요즘 각광을 받는 것은 페이지의 이론이다. 그는 트로이 제7시가 화재 때문에 파괴된 점, 미케네 시대의 점토판에 영웅의 이름이 새겨진 점 등을 들며 전쟁의 실재성을 논증한다. 이어서 히타이트 제국이 에게 해를 사이에 두고 미케네와 대립하여 세력의 균형을 유지했으나, 히타이트 제국의 동부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전력을 기울이는 사이, 서부에 생긴 공백을 틈타 미케네가 진출한 것이 전쟁 발발의 원인이라 주장한다.”

 

이번 설명은 조금 어렵지요? 당시의 강대국은 이집트와 히타이트였습니다. 그리스 본토의 남부에 미케네가 떠오르기 시작했고요. 히타이트는 터키의 중앙부에 위치한 제국으로 트로이와 동맹국입니다. 히타이트가 서부에 관심을 두는 사이 그리스가 침공했다는 논리입니다. 히타이트가 트로이를 돕지 못할 거라는 예상으로, 상황적 틈새를 노린 겁니다.

 

슐리만의 발굴 이후에도 트로이 전쟁을 호메로스의 문학적 허구로 취급하거나 트로이 전쟁은 미케네 인이 아닌 다른 민족의 침입을 와전한 것이라는 등의 전쟁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자는 그들의 입장도 전합니다. 대표적으로 ‘핀리’는 여러 가지 논거를 들며 “시인의 작품을 사실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더군요.

 

마지막으로 저자도 자신의 입장을 점잖게 밝힙니다.

 

“문헌이나 고고학적인 성과로 보아 전쟁 자체를 부정할 증거가 없는 이상 개인적으로 호메로스의 왕을 그대로 살려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략) 여러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을 전후해 미케네가 외부로부터 파상적인 침입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케네 시대 말기의 획기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은 틀림없다 하겠다.”

 

책의 여섯 쪽을 설명했을 뿐인데, 지면이 바닥났네요. 트로이 전쟁을 집중 설명한 건, 책의 장점 하나를 보여 드리기 위한 애초의 의도였습니다. 바닷물의 짠 맛을 알기 위해 바다를 모두 마실 필요가 없지요. (짠맛이 바닷물 전체에 잘 스며들어 있음이 전제인데, 저자의 강점은 책 전반에 잘 스며들어 있습니다.) 호메로스도 트로이 전쟁 10년을 모두 기록한 게 아니라, 마지막 수십 일을 다루며 트로이 전쟁을 잘 보여 주었고요.

 

요컨대, 고대 그리스 역사를 개괄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합한 책입니다. 400쪽 남짓의 분량이지만 저자가 워낙 촘촘히 서술하여 책 내용을 모두 소화하기가 어려울지 모르겠군요. 그럴 땐, ‘모든’ 장면을 꼼꼼히 공부하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부터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은 아래 다섯입니다.

 

- 트로이 전쟁 (미케네 시대의 중요한 사건이고 활용도 높은 지식)

- 아테네와 스파르타 (천여 개 폴리스 중 가장 큰 폴리스)

-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의 승리로 아테네가 약진함)

- 펠로폰네소스 전쟁 (스파르타의 승리, But 그리스 쇠망의 원인)

-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 (마케도니아 왕, 그리스와 동방 평정)

 

다섯 가지 역사적 사건이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의 주요 내용입니다. 저자는 한 챕터(100쪽 남짓)를 할애하여 그리스의 고전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그 시대의 핵심인물(정치가, 사상가, 예술가)에 대한 지식은 역사공부에 도움 된다는 점, 그리스 고전이 서양 문명에서 절대적 위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주 필요한 내용들입니다.

 

나는 역사 전공자가 아닙니다. 그리스와 관련한 학문을 공부한 적도 없습니다. 나는 자기경영 담론에 관심을 둔 문화비평 혹은 세계문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문학비평을 하고 싶은데, 자꾸만 한눈을 팔려고 하네요. 여차하면, 관심이 고대 그리스로 갑니다. 우직하게 한 길만 가도 못다 공부할 학문 세계인데... 이러다가 ‘어정쩡한’ 사람이 될까 저어되네요. ^^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만지작거리며,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