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무엇이 암을 이겨내게 하는 걸까?

카잔 2014. 4. 17. 10:05

 

1.

어제는 친구가 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몸이 아파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기차를 놓친 친구를 20분 정도 기다렸다. 홀로 병원을 둘러보았다. 낯설어서가 아니다. (그간 많이 익숙해졌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이른 아침과 야간 시간을 제외하면, 아산병원엔 사람들이 매우 많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곳엔 환자와 방문객들로 넘쳐난다.  

 

우리는 자신이 머무는 곳만 인식하며 산다. 회사에 있으면 평일날에도 롯데월드와 남이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는지를 모른다. 나도 유럽여행을 하면서야 배낭여행자들이 참으로 많음을 깨달았다. 당연했다. 유럽 배낭여행자들을 한국에서는 만날 순 없을 테니까.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다양한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세상의 실체가 아니다. 저마다의 인식에 의해 걸러진 세상이다. 세상의 일부를 세상의 전부라 인식하며 산다. 그러니 인식해 온 세상도 중요하지만, 인식하지 못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두는 것도 중요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절감할 때, 삶의 지평 또한 넓어진다.

 

2.

친구가 도착했나 보다. 전화가 왔다. 어디서 볼까? 친구가 대답했다. "내가 늘 피 뽑는 곳 알지? 거기서 보자." 전화를 끊자마자 1분이 채 못 되어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병원에 오는 목적에 따라 녀석이 어디부터 들르는지를 대략 알기 때문이다. 오늘은 채혈실이라 생각하여 그 앞에서 기다렸기에. 

 

이제 막 도착했는지 외투를 벗고 서 있던 친구를 뒤에서 껴안았다. 살살 안는 시늉만 하려던 것이었는데, 몸이 닿았다. 그가 작게 소리쳤다. "아아, 아프다." 얼른 안았던 팔을 풀었다. 반가운 마음을 한껏 표현하는 데에도 조심스러움이 필요했다. 이렇듯 암이라는 큰 병은 일상 곳곳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암은 어떤 이들에겐 삶 전체를 지배하는 전제 군주가 된다. 암 환자는 자신의 신체적 지배권을 상당 부분 빼앗길 수 밖에 없다. 아, 무서운 암 세포들! 환자는 다시 지배권을 되찾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병원에서 처방하는 양약에 의존하기도 하고, 건강식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약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나마 신체보다는 정신이 암 세포로부터 지켜내기 쉬운 영역이다. ('그나마' 그렇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친구가 마음마저 암 세포에게 점령당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정신이 기거하는 곳, 마음을 지켜야 한다.

 

암과의 전쟁에서 마음이 최전방인지도 모르겠다. 최전방이 무너지면 다음 격전지까지는 하염없이 후퇴하게 된다. 마음이 약해지면 몸의 건강도 속절없이 약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어제는 어떻게 하면 즐거운 마음, 건강한 마음, 강인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서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눴다.

 

3. 

소설가 복거일 선생의 이야기를 전했다. (선생은 이런 처사를 기꺼워하지 않으시리라. 자신의 사례는 희소한 경우이니, 희망의 확대 재생산을 염려하는 말을 여러번 하셨으니까.[각주:1]) 어쨌든 선생은 말기 암 진단 이후, 일체의 치료를 거부하고서, 해야만 하는 일이자 하고 싶은 일, 글쓰기에 몰두했다.  

 

선생은 2011년 말에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이후,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생산력으로 글을 써오고 있다.[각주:2] 그 중 하나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자신의 암 투병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2012년 이후 그가 최근에 펴낸 책들은 다음과 같다.

 

2014. 4월. 에세이집『삶을 견딜 만하게 만드는 것들』

2014. 3월. 장편소설『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

2013. 9월. 인터뷰집『자유롭게 한 걸음』

2013. 7월. 역사비평『역사가 말하게 하라』

2013. 1월. 경제비평『시장의 진화』

2012. 12월. 장편소설『내 몸 앞의 삶』

 

선생은 암 진단을 받고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아내에게 “다신 병원 안 온다. 한번 입원하면 글쓰기 어렵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작가들도 치료받다가 쇠약해져서 쓰고 싶은 글 다 못 쓰고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동아일보 허문영 기자 인터뷰 中) 소설 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어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고.

강인한 정신력으로 암 진단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암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줄까? 직관적으로 그럴 거라 생각되지만, 장애물이 많다. 신체적 에너지가 극도로 떨어져 조금만 움직여도 몸이 힘겨워진다는 것과 암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란 무지 힘들다는 것은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암 세포를 몸에 지녔다는 말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건강한 이들보다는 훨씬 힘겹다는 뜻이다. 암과 싸우는 모든 과정이 고통을 동반한다. 암 세포를 몸에 지니지 않은 나는, 친구에게 사정 모르는 소리를 했다. 어제 아침에도 말기 암 진단을 받은 저자가 "하던 일은 계속하라"고 권하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몸 컨디션이 괜찮아질 때마다 뭔가를 배우거나 짧게 짧게라도 일을 해 보는 것은 어떠냐?" 

 

우리의 이야기는 결론이 없었다. 병원에서의 항암주사가 도움될지, 자연식을 위해 산으로 들어가는 게 나은지, 새로운 신약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지, 넥시아 등의 한방치료가 좋은지, 몸의 상태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낫는다고 보장하는 정보는 없고 선택지는 많다. 확률 싸움이다. 결정은 오롯이 자신 몫이고.

 

운동을 해야 하는지, 마는지도 의사에 따라 다르다. 암은 현대의학이 쌓아온 지식보다 훨씬 거대한 존재라는 사실이 실감날 때마다, 나는 절망스럽다. "절망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라는 복거일 선생은 "절망에 기대니 마음이 편하다"고 했지만, 나로서는 알듯 말듯한 경지다. 어떻게 해야 암을 이겨낼 수 있는 걸까? 

 

  1. “사람들이 저를 보고 암 치료를 안 한다면 큰 오해입니다. 암이 발병하면 당연히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작가라서 치료에 들어가면 체력이 약해져 다시 글을 쓸 수 없을 상황이 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을 한 겁니다. 제발 잘못된 정보가 나가지 않도록 신경 써 주세요. 저 살날 얼마 안 남았어요.” - 동아일보 <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 中 [본문으로]
  2. “자기를 남처럼 대해야 소설이 써지는 거야. 내가 죽는구나 싶으니까 집중이 얼마나 잘되는지 몰라. 예전엔 한두 시간 정도 쓰면 됐다 했는데 요즘은 그게 아냐. 하루 종일 일하게 돼. 인생 마지막인데 게으를 수 있나. ‘역사 속의 나그네’ 세 권(4∼6권) 매듭짓고 세 권 더 썼어. 논픽션도 여섯∼일곱 권 분량이 되고. 나도 놀랄 정도야.” - 같은 기사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