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커피, 독서 & 브래드랩

카잔 2015. 10. 15. 11:42

1.

적당한 포만감으로 마시는 진한 커피는 내가 즐기는 아침 일상이다. 지금 나는 카페에 앉아 커피를 읽는다. 머그잔을 기울일 때마다 크레마 아래로 기어나오는 까만 속살을 보며 미소 짓는다. 후 불며 커피를 홀짝인다. 키스라도 하듯이 커피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짧은 키스의 반복이 이어진다. 커피 맛은 어쩌면 사랑 같다. 진할수록 향기롭다. 씁쓸함 속 그윽함이 있다. 커피 맛을 모르면 씁쓸하나, 맛에 눈 뜨면 달콤해진다.

 

사랑의 실체가 아무려면 어떤가. 어차피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있을 테고, 회사 일처럼 의무가 있으니 가끔씩은 휴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 사랑 따위 다 안다고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랑에 빠지면, 흑백 세상이 컬러로 바뀌고 시들해던 삶 곳곳에 생기가 돈다. 나는 나이 들어서도 사랑에 자주 빠졌던 예술가들을 질투했다. 사랑의 기쁨이 고통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다름 아닌, 사랑이니까.

 

2.  

들고 온 책을 펼쳐서 맛을 보았다. 한챕터 한챕터를 후루룩 읽어내기보다는 한장 한장을 곱씹었다. 책 제목은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예찬』(김화영 옮김)이다. 시간의 부자가 되기 위해 읽고 있다. "걷는 사람은 시간의 부자다. 그에게는 한가로이 어떤 마을을 찾아들어가 휘휘 둘러보며 구경하고 호수를 한 바퀴 돌고 강을 따라 걷고 야산을 오르고 숲을 통과하고 짐승들이 지나가는 목을 지키거나 혹은 어느 떡갈나무 아래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p.34)

 

언젠가 한 번은 걸어서 고향에 가고 싶더랬다. 300km,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고속도로 기준이니 걸어간다면 킬로미터 숫자가 늘어날 것이다. (이동수단을 자전거로 검색하니 390km가 나왔다.) 보름 정도면 걸어서 도착하지 않을까. 다른 수단을 이용하지 않기로 원칙을 세운다면, 도착일을 정확하게 맞추기가 쉽지 않다. 하루 이틀 또는 그 이상 차이가 날지도 모른다. 묘한 기분이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에는 시간 단위로 측정하지만, 도보의 경우는 일일 단위로 가늠하게 된다. 이것은 시간의 낭비일까, 여유의 회복일까. 

 

연남동 빵 카페 <브래드랩>

 

3.

공간은 중요하다. 어떤 곳에 머무느냐에 따라 우리의 기분, 생각, 활동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경영만큼이나 공간경영을 관심을 둔다. 두 가지 모두 핵심은 자기경영이다. 시간과 공간 그 어느 것도 컨트롤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있다. (자기 몸도 원하는 대로 컨트롤 하지 못하면서 인생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시간경영은 자신을 컨트롤하여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기쁨, 성취, 의미, 가치를 창조하는 활동이고, 공간경영은 에너지를 얻거나 행복해지는 곳으로 자기를 초대하는 노력이다. 

 

나는 지금 연남동 빵집 <브래드랩 BREAD LAB>에서 커피를 읽고, 책을 맛보고, 글을 쓰는 중이다. 뻥 뚫린 창틀 사이로 보이는 전경이 매혹적이다. 갓 나온 크림빵과 진한 커피는 조화로운 맛을 선사한다. 이따끔 참새 한 두 마리가 카페 바닥에 내려섰다가 먹을거리를 찾아 떠난다. 쩨쩨쩨쩨, 짖음인지 노래인지 대화인지 모를 소리가 흥겹다.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살고, 공간은 시마다 계절마다 변한다. 여름과 겨울에는 창을 닫아야 하고, 오후가 되면 사람들이 늘어나 분위기가 인적에 묻힌다. 가을이기에 그리고 오전이기에 더욱 황홀한 시간을 만끽함을 알기에 나는 지금 여기에 오롯이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