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마음을 주고받은 만남

카잔 2016. 2. 13. 17:36

* 주말이다. (주중에 못 다한 일들이 침범한 주말!) 명절이 있던 주간임을 감안해도 이번 주말은 할 일이 많고, 여유는 없다. 원인은 간단하다. 토요일 점심에는 개인 면담과 와우들 저녁식사 모임이, 일요일에는 강연회 하나, 독서토론 미팅 하나, 그리고 식사 약속이 있다. 이만하면 올해 들어 제일 바쁜 주말이겠다. (이제 고작 2월 중순이긴 하지만.)

 

* 이쯤되면 일정을 하나 정도는 취소하고 싶어진다. 다수의 약속 중에는 상대적으로 변경하기 쉬운 약속이 하나쯤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토요일 점심 약속이 1순위다. 개인 면담을 요청한 20대 청년과의 만남인데, 꼭 해야 하는 의무도 하고 싶은 소원도 아닌, 편안한 약속이다. 강렬한 유혹일지라도, 유혹은 유혹일 때 아름답다. 이런 이유로 약속을 취소하거나 변경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는 지금 막 그를 만나고 돌아왔다.

 

* "삶의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 잠깐 재미를 느끼지만 일시적이고요. 퇴근이 늦다보니 주중에는 여유가 없습니다. 회사, 집, 회사, 집을 오가는 루틴한 일상입니다. 그렇다고 엄청 몸이 피곤한 것도 아닌데, 주말에는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생각은 점점 더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 같고, 직장을 옮겨야 할지도 고민입니다." 그가 오늘 나에게 했던 말들의 요지를 정리하니, 나도 모르게 답답해진다.

 

* 그는 나의 책을 읽었고 여러 강연에 참석해서인지 나를 선생이라 부른다. 개인적인 만남은 세 번째다. 사교성은 그의 타고난 기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숫기가 없고 말주변도 없다. 내 동생이라면, "형 따라 와" 하면서 이곳저곳 세상 구경을 시켜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나라고 세상을 많이 알겠냐마는, 현재로서는 그가 자신의 좁은 세계 안에서만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그는 느릿한 말투로 빠짐없이 대답했다. 질문은 짧고 대답은 길어서 나의 밥그릇이 먼저 비워져갔다. 핸드폰 인터넷 창을 열어 내밀며 "너네 회사를 찾아줘 봐" 하고 부탁했다. "나는 홈페이지를 좀 둘러볼 테니, 일단 식사부터 드셔." 잠시 동안 홈페이지 탐색에, 그는 식사에 집중했다. 조직도를 찾아 "너는 어느 부서야?", 회사소개를 보며 "OOO 만드는 회사라고 보면 되나?" 하고 확인하며 미팅에 필요한 정보를 모았다. 그의 회사와 기숙사 동선도 지도를 보면서 확인했다.

 

* 한적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저도 이제 직장인인데..." 라고 지갑을 꺼내드는 그를 만류하고, 카운터로 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그에게 질문했다. "지금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내린다면, 뭐라고 생각해?" 그가 잠시 생각했다. "우선 재밌는 것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할 말이 쌓여갔지만, 내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려면 끝까지 꼼꼼히 들어야 했다. 

 

*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라고 묻는 대화 센스는 그에게 없다. 궁금하지 않은데도 환심을 사려고 묻는 법도 없다. 그가 묻는 질문은 자신의 마음에 맞닿아 있다는 말이다. 나의 견해를 묻지 않았지만, 넌지시 내 생각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음으로, 내게 약속을 요청함으로 내게 귀를 열고 있었다. 그는 사람과의 만남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다. 진솔하고 지혜롭게 생각을 전하는 것이 내 할 일이었다. 

 

* 1) 문제는 삶의 재미거리가 없음이 아니다. 사물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부정적인 일면만을 확대해석하는 태도가 문제다. (우리는 창밖이 내려다보이는 2층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내가 조금 전에 여기서 사람들 구경하는 것도 재밌고,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는 것도 재밌다고 했지? 사실 구경하는 재미는 잠깐이고, 거의 모든 일은 재미와 부담이 뒤섞인 복잡한 인생사겠지. 긍정적인 것만 보자는 것이 아니다. 긍정적인 면을 놓치지 말자는 말이다.

 

* 2) 우리의 기분과 열정은 진공 상태가 아니다. 수시로 변화한다. 일상의 일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으로 변하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바뀐다. 오늘 네가 자주 한 말 중에 "부담 되어서 미루게 된다, 피하게 된다"는 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자신감, 긍정적인 감정, 기쁨, 성취감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겠지. 일상의 사소한 의무와 크고 작은 소원들을 완수할 때마다 우리에게 찾아드는 게 아닐까.

 

* 3)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도 하기 시작한 그를 보며 나는 실천할 거리들을 제안했다.) 의무와 소원의 목록을 만들어 보자. 목록으로 적어 두고서 눈 딱 감고 하나씩 처리하는 거야. 2~3주 실험해 보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다른 방안을 생각해 보자. 책을 두 권 추천해 줄 테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신입사원 5주 훈련소』는 직장인으로서의 기본 태도와 마인드를 점검하게 해 줄 거다. 상사에게 혼나는 일이 많다고 했는데, 이 책이 도움 될 수도 있을 거야. 『생각의 법칙 10+1』은 내게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 책이다. 내게도 도움될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일단 한 번 시도해 보자. 혹시 에너지가 더 생기면 주말에 뭔가를 배우거나 운동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겠지. 어때? 뭔가 끌리는 게 있어? 우선적으로 실천해 보고 싶은 것이라든지.

 

* 이런 이야기들을 건넸다. 그는 세 가지 실천거리 중에 목록 만들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고, 책도 읽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작은 구속력이라도 주고 싶었다. "생산적인 구속력이 필요할지 모르니,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마다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서 내게 메일을 보내시게. 월요일은 회사 버전, 토요일 오전에는 일상 버전의 목록을 만드는 거야. 내가 회신을 하든 못 하든, 읽기는 할 테니 꾸준히 한 번 해 보자. 부담되지는 않지?" 그가 기꺼운 목소리로 "네"라고 대답했다.

 

* "삶이 가장 바닥을 칠 때, 그래도 선생님을 만나면 활력이 생겨요." 그가 나와의 만남을 진솔하게 정의했다. 그러면서 가방 안에서 노트 하나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며 말했다. "잘 됐어요. 뭔가를 정리할 노트를 샀는데, 목록 만들기를 이 곳에다 하면 되겠어요." 노트를 읽어도 되냐는 물음에 그가 허락했다. 노트를 펼쳤더니 어눌한 글씨로 나의 장점 2가지와 단점 3가지가 적힌 메모가 눈에 띄었다. 

 

<선생님의 장점>

- 선생님의 책이 좋다.

- 누구보다 객관적이고 부담감이 적다.

 

<선생님의 단점>

- 수업들이 대체로 평일이다.

- 다음 책이 언제 출간될지 미지수다.

- 여행, 그리스인 조르바, 인문(철학 등등)은 공감하기 힘들다.

 

* 나의 단점으로 가장 먼저 떠오른 항목이 주말 수업이 거의 없다는 점이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와 작은 약속을 하나 했다. "너의 도약에 도움이 된다면 주말에 수업 하나를 할게. 아니 두 개를 해 볼게. 도움될 것 같니?" 그가 웃으며 화답했다. 아마 참석하겠지만, 사람 일이란 게 또 모르는 일이니, 괜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너로 인해 오픈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생겨 못 오게 되더라도 마음 쓰지 마시게."

 

* 그의 노트를 쳐다보며 물었다. "부담감이 적다는 말이 무슨 뜻이니?" 말이 느린 그가 뜸도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가 얘기할 때 푹 처지는 얘기를 하니깐, 그렇게 상대방도 부담스러워하고, 얘기를 한다고 해도 반응도 대수럽지 않게 '다른 사람도 다 그래' 이렇게 나오니깐 얘기를 잘 못하겠어요. 부모님께는 걱정부터 하시니까. 선생님은 생각의 강요를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니야' 하는 식으로 반응하지 않고 제 얘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셔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감정적이지 않으시고, 저를 무시하지도 않으시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자기가 경험했으니까 이렇게 해' 한다거나 자기 자랑으로 흐르지 않으시고요. 그런 점에서 신뢰가 가는 것 같아요." 천천히 풀어낸, 처음 듣는 그의 속내에 나는 감동했다.

 

*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초반의 무거운 분위기도 밝아졌다. (나는 상대의 감정을 곧잘 헤아리는 편이니)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것이다. 감정은 누군가에게 공감되면 가벼워진다. 문제는 돌파구를 발견하면 해결 가능성이 보인다. 실천의 문제가 남긴 해도, 공감과 돌파구는 조언을 구하는 이와의 만남을 위한 필수품이다. 때로는 조언이, 때로는 돌파구가 필요하고 어떨 때에는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유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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