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부러움을 안긴 사람들

카잔 2016. 2. 25. 11:25

최근 들어 '아! 부럽고만' 하고 느낀 이들이 있다. 작가 장정일! 『장정일의 악서총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쁜 책들에 관한 총람이라니! 내용만 실하다면 매우 재밌겠는 걸. 제목 멋지네.' 책 표지에 병기된 한자어를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의 오해다. '악서총람'은 나쁜 책(惡書)들을 다룬 책이 아니라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에 관한 단상과 리뷰를 담은 책이다. 

 

출판사는 책을 이리 소개했다. "장정일이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독서일기 『장정일의 악서총람』으로 돌아왔다. 책은 음악·음악가를 다루거나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리뷰 11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정한 형식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책과 음악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교보문고 북소믈리에는 "장정일은 그동안 꾸준히 ‘독서일기’를 출간해왔다. 그의 책읽기를 두고 ‘사회적’ 독서와 ‘쾌락의’ 독서 사이의 줄타기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이번 책에서는 그 두 가지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썼다.

 

나는 상상했다. 음악 애호가인 한 작가가 음악을 듣고 읽고 쓰는 모습을! 음악에 취하고, 취하여 쓰고, 읽으며 인식을 넓히고, 확장된 인식으로 다시 음악적 쾌락을 즐겼으리라 생각하니 몹시 부러웠다. 장정일 선생의 수업을 들은 이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매우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란다. 사람들 앞에서는 수줍더라도 음악 앞에서는 자유롭고 편안했으리라. 나는 이번 책이 한 작가의 예술적 카타르시스 기록집으로 느껴진다.

 

물리학자 빅토르 바이스코프는 "삶에서 가장 장엄함 정신적 향유는 모차르트와 '그리고' 양자역학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과학한다는 것』) 모차르트는 금새 이해하셨으리라. 음악, 미술, 뮤지컬, 영화 등에서 얻는 예술적 감동은 누구에게나 익숙하니까. 페터 피셔는 '사유의 기쁨'이 '예술적 감동' 못지 않음을 역설했다. 언젠가 성인이 된 이후의 일생을 아도르노 공부에 마친 60대 학자에게 가르치고 공부하는 삶의 즐거움을 여쭈었던 적이 있다. "인식의 기쁨이 크지요." 인식(앎)에도 느낌에도 기쁨이 있다!

 

예술적 감동과 인식의 기쁨을 모두 추구한 어느 자유로운 영혼을 엿보는 책! 『장정일의 악서총람』은 내게 이런 책이다. 예술과 사회, 인식과 감동의 균형을 추구했지만, 먼저 음악의 감동을 추구했으리라고 짐작해 본다. 나 또한 지적 작업을 할 때 예술적 쾌락, 삶의 희열을 앞서 추구하는 사람이라, 장정일 선생의 작업이 몹시 부러웠다. 부러움에 그치지 않고 책과 독서에 대한 책들만 읽어가며 독서 에세이를 쓸까, 하는 생각도 했다.

 

남쪽에 사는 아무개 씨의 요즘 삶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녀는 나의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중년의 직장인이다. 오랫동안 품어온 작가를 향한 열정의 불꽃이 작년 말에 지펴졌고, 점점 타오르고 있다. 열렬히 배우고 치열하게 글쓰기 과제를 훈련하는 중이다. (다행하게도) 아직까지는 그에게 가르칠 것이 남았지만, 언젠가 그는 작가가 될 것이다. 나의 마음을 담아 그에게 다음과 같은 류의 메시지를 보냈다.

 

"곁에 있는 동학(同學)은 소중하지만 지적 목표는 더 넓게 그리고 멀리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기수를 통틀어 가장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정하세요. 그리고 2차적인 동료(경쟁 상대)로는 '연지원' 정도의 글쟁이로 두세요. 3차적 상대로는 프로 작가로 삼으시고요. 저 역시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할 겁니다. 함께 '성장'을 향해 나아가 봅시다."

 

회신이 왔다. "컨디션은 자라고 하는데 잠이 안 옵니다. 일부러 자려고 노력해도 더 말똥거리만 하네요. 아! 글쓰고 싶다, 글 쓰고 싶다. 이러고 있습니다. 저 밑에 있는 의식이요." 나의 화답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메일의 제목은 <열정 그리고 희열>이었다. 그의 열정과 희열이 부러웠기에 맞춤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두 번을 읽었습니다. 세 번인지도 모르겠네요. 하신 말씀이 제게 자극을 줍니다. 분명 그렇습니다. 무슨 자극이냐고요? 열정 그리고 희열!  저도 알거든요. 잠이 오지 않는 그 가슴 떨림을. 그래서 한동안 강연에서 이렇게 떠들고 다녔습니다. "열정이란 가슴이 떨려서 밤에 잠이 안 오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여 잠 못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가슴이 벅차서 눈이 말똥해지는 것! 그것이 열정이다." 요즘 선생님의 모습은 제게 열정이 무엇인가, 희열이 무엇인가를 상기시켜 줍니다. 열렬한 애정으로 열중하는 마음이 열정인데, 나는 열렬한가, 열중하는 것이 있는가를 묻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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