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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1.프랑수아 프레데리크 기. 프랑스 태생이지만 음악적 고향은 독일. 베토벤 스페셜리스트.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관심. "베토벤은 정신적으로 가장 가까이에 있고 또 가장 많이 연주하는 작품이죠."(월간 객석. 2012년 10월호) 2. 그는 내게 피아니스트인 동시에 자신의 가치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다. 다음의 인터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처는 월간 객석) 3. 꿈을 이뤄가는 낭만주의자의 면모가 보다 또렷하게 보이는 대목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단연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고 싶어요." 월간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인터뷰는 2012년 9월 파리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5년 후 그는 자신의 바람을 이뤘다. 2017년부터 2020년에 ..

나의 에너지 발전소

오후 햇살을 맞으며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진심 어린 박수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강연이 끝나고 진행자가 안내 멘트를 하는 사이 나는 화이트보드 뒤편으로 고양이 걸음으로 이동했다. 나를 발견한 참가자 분들이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스스로의 강연에 자주 불만족스러워하는 편인데, 오늘은 그럭저럭 마음에 든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이 붙인 건 내내 '희열'이었다가, 마지막 시간에 '선전'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나는 희열 - 선전 - 선방 - 절망, 으로 강연을 평가한다. 참가자 분들의 반응과는 별도로.) 행복감만이 찾아들면 좋으련만, 피곤함도 나를 껴안았다. 일방적인 접근이다. 나는 거부했지만 녀석이 달려들었다. 힘이 없어서 뿌리칠 수도 없었다. 이럴 때엔 얄밉다. 잘 진행된 강연 직후의 ..

소소한 행복의 장면들

오후 4시, 강연을 마친 피로감을 자동차 안에서 간식과 낮잠으로 달랬다. 달콤한 반건조고구마와 총각네 두유 그리고 30분 간의 느긋한 오침! 오후에 누리는 효과적인 휴식은 또 하나의 아침을 선사한다. 차에서 내려 미리 검색해 둔 카페로 향했다. 살짝 나른하던 몸이 걸으면서 점점 기운을 더해갔다.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아침의 활력을 되찾았다. 5시를 향하는 시각, 아직 햇살이 강렬하다. 차창 밖으로 송도가 보인다.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를 읽었다. 오래 전 읽은 책이고 주요 내용을 익히 알지만, 독서는 때때로 앎이 아닌 자극과 실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책으로 내 삶의 경영 수준을 끌어올리고픈 마음이다. 드러커의 지혜로 기본을 다지고 '타이탄의 도구'로 한층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읽던 ..

깊게 웃고 다시 춤추는 날까지

나는 비전가였다. 자연스럽게 과거형 동사로 표현하게 된다. 하루이틀의 생각이 아니지만 오늘따라 새삼스럽다. 다시 비전가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한가? 비전가라 하기엔 부끄럽고 부족하다. 겸양이 아닌 현실이다. 세상을 향한 공헌이 아닌 내 작은 세계(나, 가족, 우정, 지인들)로 한정해도 마찬가지다. 20대를 이상주의자로 살았다. 현실은 잘 알지 못했기에 한껏 이상을 품었다. 원대하게 꿈꾸었다. 내가 원했던 직업을 갖게 되어 기쁘지만, 더 많은 꿈들이 실현되지 못하고 가슴에만 남았다. 매년 책을 출간하고 싶었고 자주 여행을 다니고 싶었지만, 그리 살지 못했다. 30대는 현실주의자였던 것 같다. 그리 살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삶이 나를 현실인식의 여정으로 이끌었다. 일과 사랑에서 여러 번..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게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이 가고 있는 그 길을 가지 않으련다! 너희들은 내게 초인(위버멘쉬)에 이르는 교량이 아니다!"- 니체, 에서 *영혼과 마음이 중요하다면서 신체적 건강을 간과하는 이들이 있다. 종종 신체 컨디션이 떨어져 울적해하면서도 여전히 영혼만을 중요시한다.자신의 일상이 스마트폰에 의해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면서도 철학이 세상을 바꾼다면서 물질 세계의 저력을 무시한다. 마음 먹은 대로 살아가지 못하면서도(대지의 법칙을 모르니 당연지사다)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면서 일체유심조만을 강조한다.답답하고 아쉬운 일이다. 세상의 반쪽만을 보면서 살아가는 아쉬움! 결코 영혼과 정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니체처럼 "우리는 영혼이자 육체다"라고 시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Work Song 냇 애덜리

"Work Song" : Nat Adderley [Work Song] (1960, Riverside) 코넷 연주자 냇 애덜리(Nathaniel Adderley, 1931~2000)의 "Work Song"은 도입부의 코넷 선율이 “이제 우리 함께 일하자”는 권면처럼 들리는 곡이다. 그냥 일하자가 아니다. 신바람 나게, 명랑하게, 춤을 추면서 일하자는 권면! 만약 곡의 제목이 “Play Song"이었다면 나는 이 곡을 덜 좋아했을 것이다. 놀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란 얼마나 쉬운가! 일하면서 흥얼거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이 곡이 좋다. 일과 재미의 변증법적 통합을 시도하는 것 같아서. 냇 애덜리는 하드 밥의 대표주자 캐논볼 애덜리의 동생이다. 형은 동생의 곡을 즐겨 연주했다. 나는 캐논볼 애덜리 퀸텟에..

갓난아기들처럼 무럭무럭

재식아, 안부 연락 고마워. 형은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마음 터놓고 지낸 친구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 슬픔이요 고통임을 또 한 번 경험하면서 인생의 진실, 나의 강인함과 연약함 그리고 삶의 기쁨과 허망을 느끼는 요즘이야.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진실), 이 정도면 꿋꿋하고 의연한 편이 아닐까(강인함), 나는 왜 이리도 슬프고 허망한 걸까(연약함), 당연하게 느껴진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구나(기쁨의 발견), 추구했던 가치들이 무너지고 흩어졌구나(허망의 침입). 이러한 생각과 감정들이 내면을 떠돈다. 얼마간의 슬픔과 고통을 각오했지만, 조금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네.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작은 일에도 눈물이 핑 돈다. 5월 23일은 노 대통령님의 영상을 보고, 할 일들은 손에서 놓은 채로 울적하게 보..

그 분이 그리울 때마다

8년이 지났다. 그가 떠나고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이 일상을 바꾸어 놓았고, 그토록 비합리적이던 정권이 물러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여러 영상들을 보면서 회한의 눈물을, 이제는 대통령이 된 그의 친구 영상을 보며 희망의 눈물을 흘린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가. 새 대통령이 적폐를 청산하고 새 나라로 바꾸어 주기를. 우리 국민들의 삶이 덜 고단하고 더 행복하기를! 내 삶은 어떠한가. 그 동안 스승이 떠났고, 친구들이 떠났다. 8년 전 장례식 때 상주였던 문재인 전 비서실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문하러 왔고 많은 이들이 격앙되었다.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그때 상주가 다가가서 깍듯이 예를 갖춰 맞이했다. 그 절제, 그 의연함, 그 외유내강의 모습에 많..

겸손하게 사는 비결 하나

“초등학교 시절 나는 형의 교과서와 소설 따위를 꽤 많이 읽어 경우에 따라서는 당시의 시골 학교 동급생보다 아는 게 훨씬 많았는데도 나 자신은 누구보다 더 안다거나 앞서 있다는 생각을 당초부터 하지 않았다.” 3남 2녀의 막내로 자라난 문학비평가 김병익 선생의 말이다.(『글 뒤에 숨은 글』p.12) 누구와 함께 있는가. 이는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물음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함께하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영혼이 연약해서가 아닐 것이다. 상호 교감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리라. “형들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도 더 많이 안다고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스..

세월은 어디로 날아간 걸까

강가에 서면, 나는 돌멩이를 집어 들어 강을 향해 날리곤 했다. 돌은 자신의 필연을 쫓는 화살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휘익, 하고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겠다. 돌은 하늘을 날아서 상쾌했을까, 이내 물속으로 떨어져 아쉬웠을까? 나는 돌을 멀리 멀리 보내주고 싶었다. 돌의 여정은 상황마다 달라진다. 동행이 있으면 힘껏 던지지는 못한다. 저 앞에서 퐁당! 편한 친구가 있을 때엔 있는 힘을 다한다. 저 멀리서 풍덩! 나는 멀리 멀리 던지고 싶었다. 내 젊음이 무사한지 확인이라도 하고 싶은 마냥. 소년 시절, 학교 체력검사에는 멀리 던지기가 있었다. 나는 전교에서 제일 멀리 던지는 학생이었다. 팔 힘이 없어 보이는데 어찌 그리 던지느냐는 물음이 귓가에 선하다. 지금도 그때만큼 멀리 던질까? 강가에 서서 있는 힘껏 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