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11

문득, 다른 삶을 그리다

다시 태어난다면... 어머니의 사랑을 오랫동안 듬뿍 받으며 살고 싶다. 사랑만으로 삶이 마냥 행복할 수는 없음은 이번 생을 통해 체험했으니, 내세를 산다면 쪼들르지 않은 정도의 경제 형편이었으면 좋겠다. 어머니가 날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음료 배달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삶, 주말에 함께 공원에라도 산책할 여유가 있는 삶. 다른 어머니가 아니라 사진 속의 저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고 싶다. 어머니와 함께 해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어머니와 둘이서 외식한 적도 없으니(근사한 곳이 아니라 시장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라도 함께 먹어본 기억이 전혀 없다), 함께 영화관에 가거나 백화점 나들이 같은 것도 상상도 못했다. 힘겨울 땐 어머니의 손을 잡아도 보고, 기쁠 땐 가장 먼저 전화도 드려보고 싶다. ..

벚꽃처럼 살다가신 선생님

밤 11시가 넘은 시각, 나는 집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다. 구본형 선생님의 발인미사와 화장식 그리고 유골안치를 마치었던 날(4월 16일)이었고, 저녁에는 살롱9에서의 강연까지 진행했던 날이라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즈음이었다. 3박 4일 동안 진행된 선생님의 조문과 장례식이 끝난 즈음에 강연까지 해야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집앞 거리에서 나는 벚꽃터널을 만났다. 인도를 따라 양쪽으로 늘어선 벚꽃이 만든 짧은 터널이었다. 가로등 불빛 덕분인지, 벚꽃의 내음 덕분인지 터널은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생님이 떠올랐다. 당신은 꽃처럼 아름다웠고, 떠난 후에 당신의 향기를 남기셨다. 봄날에 가신 것 또한 당신다운 떠남이라고 생각했다. 벚꽃인지, 선생님인지 내게 말을 걸었다. "이 녀석, 수고했구나..

나의 어머니

어머니는 바쁘셨다. 학교 어머니회 일원으로서 학교 행사를 돕거나 교회 집사님으로서 결혼식 피로연 준비 등의 교회 행사에 참여하거나 회사에서 긴급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나와 동생의 학비와 생활비를 버느라 바쁘셨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버지가 생활비를 집으로 가져다 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고단하셨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200원 짜리 '스콜'이라는 음료를 배달하셨다. 판자촌의 골목엔 비탈길이 있었고, 우리가 살던 허름한 집의 대문은 작았다. 100cc 짜리 오토바이를 대문 밖으로 내었다가 들이는 일은 힘겨웠을 것이다. 지아비는 심리적 안정을 주지 못했고, 생활고는 어머니께 육체적 편안함을 주지 못했다. 나는 가난..

그립고 보고 싶고 아쉬운.

이런 글은 쓰지 않으려 했다. 넋두리가 될 테니까. 이미 나에게는 일상이 된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게는 관심 없는 일이니까 정말 쓰지 않으려 했다. 내가 'N 사건'이라 부르는 그 일! 절대(Never)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고, 하지만 일어났으니 다시 일어서서 새롭게(New) 시작하자는 뜻에서 이름붙인 N사건은 2011년 1월 17일에 일어났었다. 20개국을 여행한 사진들, 여러 책의 원고들(나는 몇 권의 책을 동시 집필 중이었다), 와우수업을 진행하며 기록해 둔 내용들, 그리고 강연 PPT들이 모두 지워졌다. 2개월 동안의 복구 작업 결과는 '현재로서는 복구 불가'였다. N사건은 지금도 여전히 생각난다. 힘들거나 괴롭지는 않다. 이제는 익숙해졌다. 그저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아, 자료가 있으면..

내 생애 가장 슬픈 스승의 날

배수경 선생님 중학교를 졸업한지 16년 여가 지났네요.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를 기억하시겠어요? 저 희석입니다. 선생님께서 저를 현대영수학원에도 보내주시고, 제게 시집도 선물해 주셨던 그 이희석입니다. 선생님을 찾아오는 길이 참 행복했습니다. 내 삶에 나를 아껴주고 살펴 주신 은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저를 참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군요. 십 수년의 세월을 넘어서까지 제가 선생님을 기억하고 이렇게 찾아오도록 만들어 주신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참 고우셨던 모습은 여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제게 보여 주신 참 스승의 모습은 제 마음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 진학을 함께 고민해 주셨던 기억, 현대영수학원에 있는 친구 분을 통해 제가 학원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준 녀석

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퇴근 길... 하루를 마감하며 우린 종종 통화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불쑥 묻는다. 집에 안 가냐? 방금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수원에서 강연이 늦게 끝나서 이제 막 들어왔어. 이번 주에 베트남엔 안 가냐? 장사가 안 된다. 야!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전화를 했더니 내가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는 장사가 참 잘 되었다며 다시 베트남 떠나라고 말했었다. 그 때도 마구 웃었는데 이 녀석이 오늘 나를 또 웃긴다. 슬쩍 덧붙이는 그 녀석의 멘트에 나.. 쓰러진다. 올 여름 휴가는 베트남으로 갔다 오지. 이 녀석, 오늘 하루 종일 장사는 안 하고 개그 연구만 했나 보다. 웃다가 어찌하다보니 얘기가 배수경 선생님 이야기로 흘렀다. 아직 슬..

만남보다 더한 정성으로 보내드린 이별

나는 분명히 아주 정성스런 마음으로 그녀를 떠나보냈습니다. 류시화 시인의 이별에 대한 조언을 충실히 따르느라 무던히도 애를 썼지요. 맛있는 요리법을 배워 새로운 요리를 시작할 때에도, 참 풍광좋은 곳으로 여행할 때에도, 열심히 하루를 살아 온 얘기를 쫑알대고 싶을 때에도 가장 먼저 그녀를 떠올리곤 하지만... 문자 하나 보내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분명, 그녀와의 이별 후, 나는 더욱 간절해졌지만 더한 정성으로 그녀를 배려했습니다. 류시화의 이별법 사랑이 오실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

여행 길에서

여행길에서 우리의 삶은 늘 찾으면서 떠나고 찾으면서 끝나지 진부해서 지루했던 사랑의 표현도 새로이 해보고 달밤에 배꽃 지듯 흩날리며 사라졌던 나의 시간들도 새로이 사랑하며 걸어가는 여행길 어디엘 가면 행복을 만날까 이 세상 어디에도 집은 없는데…… 집을 찾는 동안의 행복을 우리는 늘 놓치면서 사는 게 아닐까 * 중국 여행을 떠나며 이해인 시인의 시선집을 가방에 챙겼습니다. 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그 풍경 안에 머무르며 시를 읽었습니다. '여행길에서'는 나의 마음에 들어왔던 시들 중 하나입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가슴에 울림을 주었습니다. 찾으면서 시작된 삶이 찾으면서 끝난다는 시인의 말. 그 찾음은 자신이 뜻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요. 뜻한 것이든, 아니든 과정에서 의미와 행복을 발견..

보보의 몇 가지 일상

몇 가지 나의 일상사를 끄적여 본다. 잔잔하지만 소중한 나의 삶이다. 성찰의 시간은 늘 좋다. #1. 방송국 인터뷰 KBS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모 교양 프로그램의 작가였고, 인터뷰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우리 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말에 망설였는데, 작가는 정중하면서도 친근하게 부탁을 했다. 결국 약간의 망설임 끝에 집에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 날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청소를 했다. 짧은 분량이겠지만 TV 인터뷰라는 것은 약간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그런데, 다시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방송 내용이 조금 바뀌게 되어 인터뷰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속 사정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덕분에 집안 정리를 했다. 기쁜 일이다. 몇 지인들에게 인터뷰 건에 대하여 아쉬운 듯 말하였지..

[어머니전상서]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는 가끔씩 보는 KBS 예능 프로다. 오늘 2월 3일편 하이파이브를 (메가TV로) 보았다. 5명 여걸의 어머니께서 등장하셔서 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 라는 코너에서 딸에 대한 솔직한 과거를 털어놓기도 하셨고, 노래방 코너에서는 어머니들께서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셨다. 그분들 중 채연의 어머니께서 나오셔서 노래를 부르신 후에, 딸의 '둘이서'까지 부르셨다. 딸 채연도 어머니가 노래 부르는 것을 처음 본다는데, 어머니는 후렴까지 빠른 박자의 노래를 놓칠 듯 놓칠 듯 하면서도 끝까지 잘 부르셨다. 깜짝 놀라는 채연의 표정 속에 어머니의 애정에 대한 고마움이 서려 있는 듯 하다. 문득,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그리워졌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을 누구보다도 더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