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때로는 아주 일찍 계획한 것이 발목을 잡는다

카잔 2008. 8. 13. 12:36


때로는 아주 일찍 계획한 것이 발목을 잡는다

내일 모레(15일)면 8박 9일 동안의 뉴질랜드 여행을 떠난다. 늘 그랬지만, 나는 여행을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행 때 입을 티셔츠 한 장 구입하지 못했고, 뉴질랜드에 대한 책자를 읽으며 여행을 준비하는 즐거움을 누리지도 못했다. 선글래스 하나만큼은 꼭 구입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지키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들인데, 나에게는 쇼핑의 필수품인 시간이 없었다. (돈은 조금 있었다. ^^ 호호.)

강연 팔로웝과 출간을 축하해 주신 분들에 대한 인사를 하고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해 두어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했던 게다. 여행 후 바로 이어지는 강연 준비도 조금 해 두어야 했다. 출간 후에 해야 하는 몇 가지 일들도 있다. 결국, 뉴질랜드 여행은 정말 옷만 챙겨서 가게 될 것이다. 하하. 따지고 보면 웨이하이 여행도 그랬고, 베트남 여행도 그랬다.
나에게 여행은, 일상을 살아가는 나를 누군가가 순간이동을 해 주어 다른 나라로 데려가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는 여행지에서도 잘 지내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항상 현재를 잘 즐기는 것이고, 안 좋게 말하면 준비성이 없는 것이다. ^^

때로는 아주 일찍 계획한 것이 나의 발목을 잡는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이 그런 경우다. 할 일이 많고, 출간 후에 이것 저것 시도해 보고 싶은 것도 많아 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한 것이고 지금은 취소할 수도 없다.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계획은 자신의 영혼을 즐겁게 만드는 일로 채워져야 한다. 그래야, 어떤 경우에도 즐겁게 지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획'이 더 중요하고 기쁜 일을 만날 때 작아지고 무색해진다.

뉴질랜드 여행 계획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또 다른 계획을 두고 고민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바로 다음 달에 있을 모 단체에서의 강연이다. 9월은 최소한의 강연을 하기로 생각해 두었다. 7, 8월 조금 바빴기 때문에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쉼과 여유를 누리며 2008년 하반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고 체력을 관리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단체에서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담당자는 친절, 매너, 열심을 모두 가진 멋진 여성으로 보였다. 일정이 안 되면 거절하기 좋은데, 가능한 일정이었다. 결국, 강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것이 마음에 걸린다. 진행을 결정한 최초의 생각은 이거다. '그래, 딱 한 번 인데 뭘. 딱 하루, 강연을 하는 거야. 담당자가 이렇게 열심인데 화답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그리고 한번 더 하는 거야 뭐 조금 더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자기합리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썩 내키지 않은 강연이었지만, 이미 하기로 한 강연이니 나를 설득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잠깐만 의지를 발휘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이런 생각으로 결론이 났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행복을 보류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기분이 좋고 느낌이 좋은 일들을 하자. 그것을 하는 것이 내가 세상에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길이다.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때 가장 잘 섬기고 있는 것이다.'

단체에서 온 강연 의뢰는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9월엔 쉬기로 했다. 일정이 되는데도 거절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직은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거절하지 않으면 그 때 더 중요한 일 앞에 나는 강연 계획을 들여다보며 후회할 것이다. '내가 더 하고 싶은 이 것인데...'
그 날, 와우팀원을 만나고 싶을 수도 있고, 팀원들의 과제를 읽으며 생각에 잠기고 싶을 수도 있다. 그저 사무실에서 글을 쓰고 싶을 수도 있다. 나는 분명 그런 날들을 꿈꾸고 있고, 이를 위해서 때로는 거절이 필요한 게다.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 심중의 말을 조심스레 전해 드렸다. 솔직히,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내 마음을 진솔하게 전했다는 것이 무거운 마음을 견디게 한다. 마음이 무거운 까닭은 처음부터 거절하지 못하여 담당자에게 말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신뢰도 중요한 덕목이기에 한 번 내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되는 게다. 하지만 불과 몇 시간이 지났다는 것, 아직 강연계획서와 프로필을 보내기 전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아본다. 그리고, 아주 강연을 잘 진행할 만한 와우팀원 한 명을 추천했다. ^^

이번 딱 한번쯤 해 볼 수도 있다. 거절은 다음 번부터 할 수도 있다. 허나, 나는 내 인생을 한번쯤 해 볼 만한 여러 가지 일들로 채우고 싶지 않다. 항상 하고 싶고, 할 때마다 즐겁고 신나는 일들로 나의 인생을 채워 가고 싶다. 휴가나 여행지에서는 한 번쯤 해 볼 만한 것들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일상에서는 내 영혼이 즐겁고 행복해하는 일들을 하고 싶은 게다. ^^

담당자로부터 회신이 왔다. 나의 조심스런 어투와 달리 경쾌하게 친근하게 답변이 날아왔다. 미안해하실 필요 전혀 없다고, 혹 10월로 일정을 조율하면 가능한지 물어왔다. 으악! 이제 '복지관 월 2회 강연'이라는 나의 원칙을 두고 또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좋다. 나는 세상에서 온전한 나의 영혼으로 살기를 훈련하고 있는 중이니.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