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내 삶을 일으켜 주었던 말들

카잔 2009. 3. 19. 05:28


어린 시절, 우리 가정은 가진 것이 없었다. 이로 인해 힘든 건 '내'가 아니라 '어머니'셨으리라. 나는 책임을 진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시던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15살 때부터는 '나'도 가끔씩 힘들어했다. 엄마가 그리웠고,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해야 했다.

 

나를 키워주신 삼촌, 숙모께서 정성껏 나를 보살펴 주셨지만, 그 분들의 애정과 엄마가 안 계신다는 사실은 별개였다. 두 분의 은혜 내게 축복이라는 사실이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지워주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청소년기의 나는 방에서 혼자 울기도 하고. 괜히 밝은 척 애쓰기도 했다.

 

지금은 힘들지 않다. 자주 행복감을 느끼고, 감사한 일이 많다. 이제 더 이상 애써 밝은 척 하지도 않는다. 거짓 미소를 지어야 할 만큼 누군가의 시선이 중요한 일도, 내가 그만큼 불행한 일도 거의 없다. 내 영혼이 기뻐하는 일들만 하려고 애쓰다 보니,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일도 적어졌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늘 "나는 할 수 있다"고 믿는 편이고, 꿈꾸었던 일에 대해서 "난 자격이 없어"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꿈이 소박하긴 하다. ^^) 내 안에는 '원인 모를 자신감'이 넘쳤다. 오늘 글은 그 원인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자신감, 하면 늘 떠오르는 세 사람. 한 분은 선생님이고, 다른 두 명은 나의 친구와 연인이다. 



#1. 배수경 선생님

배수경 선생님은 내 인생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엄마가 돌아가셨던 해에 나에게 '은근한' 관심을 가져 주셨다. '은근한'은 자주 부르거나 말을 걸지는 않으셨지만, 늘 지켜봐 주셨음을 표현한 말이다. 한번은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희.석.이.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

 

내가 고등학교 진학을 인문계로 갈지, 실업계로 갈지를 두고 고민하던 때였다. 나는 인생에 대해 진지하지 않고, 공부에도 관심 없던 척 하거나 실제로 흥미를 붙이지 못하던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따뜻한 눈빛과 애정 어린 목소리로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선생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내게 영향을 미쳤다. 그 진로가 내 삶을 바꾸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저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난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따뜻함과 진정함으로 다가와 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으로 세상이 따뜻함을 어렴풋이 믿게 되었으니까. 선생님은 어둠이었던 시절에 빛으로 다가와 준 분이셨다. 언젠가 나도 빛이 되면 뵐 수 있으리라. 지금도 눈물이 난다.

 

(선생님께서는 2007년도에 지병으로 다른 별로 떠나셨다.)




[배수경 선생님에 관한 글]

16년 만에 찾아뵙는 그리운 선생님

내 생애 가장 슬픈 스승의 날


#2. 양희

중학교 때의 친구다.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 본 목소리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예쁜 목소리를 가졌다. 그 때, 같은 동네에 살았고 겨울이면 노란색 코트를 즐겨 입었다. 내 동생은 양희를 '노란 누나'라고 불렀다.

 

"야... 희석이 넌 뭐든 잘 해 내잖아. 난 그렇게 보이는데..."

 

고등학교 일학년 때,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양희가 했던 말이다. 정확한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양희가 무얼 믿고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예쁜 목소리로 그 얘길 했다는 것이고, 나는 그 얘기를 굳게 믿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정말이냐는 물음에 친구는 한참동안 진지한 부연 설명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그 말로 인해 나 스스로를 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자존감은 수많은 인정과 크고 작은 성취들로 인하여 조금씩 오랫동안 형성된 것이겠지만, 그 말들 중에 자주 생각나는 것이 양희의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이 끊어진 상태로 지냈지만, 가끔씩 참 보고 싶은 친구다. 


아마도 결혼을 했으리라.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친구가 내게 전해 주었던 자신감을 그녀의 아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 싶다는. 별 이상한, 오지랖 넓은 상상을 다한다. 언젠가 식사라도 함께 할 수 있으려나.


#3. MSK

옛 연인의 이니셜이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SK는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오빠의 걸음걸이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당당해요."

 

내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서인지, 삶이 신나던 때이긴 했다. 테헤란로의 역동성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녀의 말은 나를 기분 좋게 했고, 나는 정말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는 가진 것 별로 없던 때였지만, 마음은 풍요롭고 당당했다.

 

간혹, 내가 실제로 그러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SK의 말로 인해 그렇게 되어졌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고 해도 그녀의 말로 인해 명징하게 인식한 것이고,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녀 덕분에 바뀌었으니까. 두 가지 경우 모두, 그녀에게 고마운 일이고, 나에게 좋은영향을 준 것이니까.

*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런 말들만 들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선생님은 나에게 좋은 대학교에 갈 수 없을 거라는 말씀도 하셨고, 어떤 친구는 나에게 아주 못된 사람이라는 말도 했다. 그들 역시 나의 일부분을 정확히 직시했다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그리고 나의 삶 안에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쁜 것들을 걷어내고 싶었고, 좋은 것들을 늘려 가고 싶었다.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나는 배수경 선생님을 떠올리며 조금 더 진지하게 나의 문제에 직면하려 애쓴다. 그저 기분대로가 아니라, 나에게 보다 유익한 결정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감이 사라지려 할 땐 자동적으로 양희와 SK의 말이 떠오른다.


내 인생에 등장하여 일정 기간을 함께 하다가 소중한 말 한 마디씩을 던져 준 그들. 하늘에서 편안히 지내시고, 어딘가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테지. 일상을 나누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가끔씩 나를 일으켜 주는 분들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