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9.05.31 마지막 불씨만 남은 화로
  2. 2019.05.22 입가엔 미소가 번졌다
  3. 2019.05.17 뵙고 싶어서 왔어요
  4. 2019.05.15 나에게 최상의 책이란
  5. 2019.05.14 세 줄 일기
  6. 2019.05.12 출간 소식을 알립니다 (2)

유투브에서, 언론에서 자주 뵙는 요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가 된 것이다. 5월 23일을 전후로 바쁘게 보냈다. 와중에도 틈틈이 영상을 찾아 시청했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자서전 『운명이다』를 읽고 싶었다. 오늘 그 마음을 좇아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4부 작별’을 읽었다.

두 번 울었다. 2008년에는 국가기록물 사태가 터졌고 이후 대통령에게 나쁜 소식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정치 인연들이 줄줄이 세무조사를 받거나 구속됐다. 형님이 구속된 직후에는 봉하 방문객 인사를 관두었다. 외출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노짱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 겨울 내내 가끔씩 학자들을 집으로 불러 보았다. 이 모임을 할 때는 며칠 전부터 가슴이 부풀어 올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읽고 메모하고 또 읽으면서 새벽까지 토론 준비를 하곤 했다. (…)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나를 겨냥한 4월에는 이 작업마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덤덤하게 읽었다. 그러고 싶었다. 바람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아래 문단을 읽다가.

“4월 11일 아내가 부산지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같은 날 건호가 귀국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건호가 탄 차와 따라붙은 기자들의 차가 보였다. 공항 입국장에서 사진을 다 찍었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자고 밥을 먹어야 다음날 대검중수부에 가서 조사를 받을 텐데……. 건호가 어디로 가는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흉기로 보였다. 미국에서도 기자들이 건호 집을 포위하는 바람에 손녀가 남의 집에 피신했다고 들었다.”

아비의 심정이 전해져 흐느껴 울었다. 이중의 고통이었다. 당신의 고통 그리고 가족들의 힘겨움을 바라보는 고통.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읽어나갔다. 다시 눈물이 흐른 것은 지난날을 회한 가득한 시선으로 돌아보는 정치가의 마음을 읽으면서였다.

“모든 것이 내 책임이었다. 대통령을 하려고 한 것이 분수에 넘치는 욕심이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꾼 지도자가 되려고 한 것이 나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야망이 있어서 스스로 준비하고 단련했지만, 그들은 나로 인해 아무 준비 없이 권력의 세계로 끌려들어 왔다.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그들이 고초를 겪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을 돕겠다고 소박하게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리라는 것을 꿈에라도 생각했다면 애초에 정치를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살면서 해 보고 싶었던 꿈을 모두 다 접었다. 죽을 때까지 고개 숙이고 사는 것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했다. 재판 결과가 어떠하든 이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한 그리고 체념···. 노짱에게서 강인한 영혼을 느끼고 아모르 파티(운명애)를 생각하며 니체가 떠오르기도 했다. 유시민 지금의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노 대통령의 젊은 날 기록은 의분이 슬픔을 압도하지만, 봉하마을에서 남긴 기록은 회한이 두터워 분노가 잘 보이지 않노라고 썼다. “모든 것이 다 타 버리고 켜켜이 쌓인 잿더미 아래 마지막 불씨가 숨어 있는 화로”와 비슷하다고. 과연 그렇다. 회한에 덩달아 마음이 아파 가까스로 읽었다. 읽었던 챕터 중 하나의 제목은 “수렁에 빠지다”였다.

유시민 이사장은 에필로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함께 고통 받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썼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고백(?)을 써 두었더라. “나에게 그는, 그가 하는 일에 힘을 보태지 않고는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청년 윤동주는 시적 언어로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삶을 노래한 시인이었다. 윤동주를 좋아하는 바로 그 이유로 인간 노무현을 가슴 깊이 존경한다. 청년 윤동주와 마찬가지로 인간 노무현도 나에게는 일종의 예술가였다. 정치적 행동으로, 아니 삶 전체로 수오지심이 빚어낼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인생 예술가.

자기 삶에 날선 비판을 던지는 사람. 이리 쓰고서 멈췄다. 나도 모르게 멍하니 잠시 창밖을 내다본다. 봄바람, 흔들리는 나무, 서서히 흐르는 뭉게구름,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 당신이 떠나시고 이러한 봄의 향연이 열 번이나 반복됐다고 생각하니, 그 속절없는 세월이 야속해진다.

두 문장을 적는 사이에 구름이 저만치 흘렀다. 구름 사이로 보이던 하늘 모양도 달라졌다. 구름 모양과 하늘 표정은 잠깐 동안에 잘도 변하는구나. 십년의 세월에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그대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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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새소리를 들으며 앞마당을 쓸고 왔다. 아니다. 쓸 때엔 새소릴 인식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다 쓸고 나니 선연히 들려왔다. 합창이라도 하는 걸까. 십 수 종의 새소리가 일제히 지저귄다.

2주 전 집주인 할머니가 오셨을 때도 마당을 쓸었다. 정오 무렵이었다. “아이고, 땀 나겄어. 해 없을 때 선선해지면 하셔.” 오늘은 어른의 조언을 따랐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갈 즈음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쓸었으니.

가을 낙엽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봄 마당도 사나흘에 한 번씩 쓸어주면 좋더라. 떨어진 낙엽과 꽃가루가 군데군데 뭉쳐 있기 때문이다. 마당과 함께 현관과 계단도 싸악 쓸어냈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재활용 쓰레기를 구별하여 분리 배출도 끝냈다. 내일 아침 일찍 해도 되는 일이었다. 손을 털며 거실로 들어오면서 생각했다. ‘미루지 않고 미리 끝마치니 좋네.’

한동안 테라스에 서서 석양으로 더욱 싱그러워진 초록빛 부용산을 바라보았다. 시원하게 불어오던 봄바람이 나뭇가지와 내 목덜미를 익살스럽게 휘감고 지나갔다.

Posted by 보보

반주를 곁들인 저녁식사 후 서촌 밤거리를 걸었다. 스승과 함께였다. 적당한 포만감과 기분 좋은 취기도 동행했다.

스승의 날이었지만 식사하는 동안 감사의 말 한 마디를 드리지 못했다. 특별한 날 혼자서 뵈니 이것도 저것도 쑥스러웠다. 꽃다발을 준비하려다가 꽃바구니를 연구실로 보내 드리기로 했다. 이런 계획도 말씀드리진 않았다.

둘이서 나란히 걷다가 스승이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오늘 왜 저를 만나자고 했어요?”
뜻밖의 물음에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웃으며 답했다.

“뵙고 싶어서요.”
(웃으시며) “제일 좋은 말이네요.”

마음에서 우러난 대로의 말인데 스승의 화답으로 충분한 답변이 된 느낌이다.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차로 단골 술집을 향해 걸으며 나눴던 이 대화가 지금도 마음을 적신다.

가로등이 적어 거리는 어둑했다. 서촌 카페들이 내뿜는 은은한 조명이 정겨웠다. 내 토트백에는 정성스럽게 쓴 감사 카드와 『그리스인 조르바』 책 한 권 그리고 한정식 집에서 절반쯤 마시고 남은 이차를 위한 ‘화요’가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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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아침 일과를 시작하기 전 『자본과 영혼』을 손에 잡았다가 한 시간 가까이 읽고 말았습니다. 김영민 선생님의 산문집입니다. <글항아리>에서만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로 출간된 작품이네요. 선생의 산문 하나를 읽으려던 계획은 ‘세 개까지만 읽지 뭐’ 하다가 손에서 놓지 못해 급기야 ‘마지막 딱 하나만 더 읽자’는 충동에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짜릿하니 손에서 놓기 힘들더군요. 10~15분의 시간만 할애하려던 계획은 어디론가 증발해 버렸네요.

선생님의 글은, 이라고 써 두고서 한참을 망설입니다. 글에서 받은 감동과 영감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쉬이 떠오르지 않은 겁니다. 깜냥이 된다면 ‘김영민 론’이라 할 만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렇지가 못하고, 그저 일개 독자로서 감상을 표현하면 그만이다 싶으면서도 자꾸 머뭇거리게 되네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몇 번이나 보았는데 별의 크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다루는 주제는 일상적인데 소재를 대하는 태도는 그윽합니다. 깊은 사유, 맑은 감각, 고요한 정취를 풍기는데도 글의 주제는 세속을 떠나 있지 않습니다. 휴대전화를 논하고 재벌 논의를 글 속에 끌어들이고 소비자본주의를 들여다봅니다. 지금 창밖으로 오월의 신록이 보이는데 이에 못지않은 감동이네요. 창밖은 서울이 아닌 양평이 일궈낸 세상인데, 선생의 글은 서울 한복판에 초록 세상을 펼쳐 놓은 셈이니까요.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후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자본과 영혼』을 구입 한 후 매일 조금씩 읽는 중입니다. 한 움큼의 견과류처럼 약간의 양으로도 하루치 섭취량이 충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책에서 받은 영감이나 감동이 커서 나도 모르게 책을 놓고 사유에 잠기는 쪽입니다. 오늘도 네 번째로 읽은 산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감동하여 거실 바닥에 드러눕고 말았습니다. 와! 일급이다, 하는 유아적 감탄을 읊조리며 나동그라진 겁니다.

탁월한 글을 만나니 할 말이 끊이지가 않네요. 머릿속은 저만치 앞서 가고요. 제가 만난 일급의 글쟁이들도 소개하고 싶고 경지에 오른 분들의 통렬한 사유가 어떤 짜릿함을 안기는지도 풀어내고 싶습니다. 할 일이 많은 오늘인데 책에 대해 할 말은 더 많네요.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에게 최상의 책이란 나를 수다쟁이로 만들고, 함께 읽고 얘기하고 싶은 욕망을 안기는 책이구나!’

이제 일하러 가야겠는데 느낌과 감상만 잔뜩 늘어놓은 것 같아 감탄의 이유 하나를 거칠게나마 적어 둡니다. 높은 관점, 새로운 차원에서 건네는 메시지들이 나를 사유로 이끈다. 선생의 문장은 녹록치 않다.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난해한 글이지만 세속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니 선생을 좇아 읽게 된다. 교양서 독자로서, 술술 읽히지 않는 책을 예찬하는 일이 드문데 김영민 선생은 예외다.

Posted by 보보

배움여행에서 만난 분들의 에너지가 남달랐다. 서로 즐거움과 유익을 주고받는 관계로 깊어져 가면 좋겠다. 나도 무언가 기여하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마음으로 경청했다. 이를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자리였으니. 같이 일하다 보면 난관이나 어려움도 만나겠지만 함께 넘어가는 경험도 해 보고 싶다.

존경하는 후배와 함께 컬처웨이 대표님을 뵈었다. 일상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사업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편안했고 따뜻했고 즐거운 대화였다. 작년부터 회사 행사에 네댓 번은 부르셨는데 인문정신 수업이랑 매번 겹쳐서 한 번도 참여하지 못했다. 지금에라도 뵈어 반갑고 감사했지만 대표님을 이리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문경수 선생님으로부터 비보를 들었다. 홍승수 교수님이 지난달에 소천 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잠시 말문이 막혔다. 가슴이 먹먹했다. 직접 뵙지는 못했기에 나의 슬픔에 내가 당황스러웠다. 리버럴 아츠 특강에서 홍승수 교수님의 강연을 자주 추천했고 무엇보다 이충일 교수님께 들었던 홍 교수님과의 일화를 살갑게 느꼈기 때문이리라.

*

와우 모임에서 ‘세 줄 일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담 없는 형식으로 느껴져 귀가 솔깃했네요. 아직은 간소함의 지혜와 기술을 익히지 못해 '세 줄' 대신 ‘세 덩어리’로 며칠 써 보려고요. 제게 적절한 형식이라면 이어가겠지요. 첫 날을 기념하여 포스팅해 봅니다. 자주 올리진 않겠지요. 일기는 가장 내밀한 글쓰기잖아요. 일기쓰기의 가치와 미덕은 그 내밀함에서 극대화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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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오랜만에 신간이 나왔습니다.『교양인은 무엇을 공부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입니다. 3월 12일에 손에 받은 책을 이제야 포스팅하네요. 미루고 또 미루다 어느새 두 달이 지났어요. 미룬 것인지 두려웠던 것인지 모를 마음을 누르고 책을 처음 받고서 썼던 메모를 옮겨 둡니다. ^^

<책상 앞에 놓인 신간을 바라봅니다.
오랫동안, 물끄러미.

여러 생각들이 스쳐가네요. 이제야 나왔구나. 더 치열할 걸! 아, 부끄럽다. 깊은 공부의 신호탄으로 삼아야지. 엄마가 보고 싶네.

읽기를 즐겼고 공부를 잘하고 싶어 쓴 책입니다.
그 행복감과 열망이 전해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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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