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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1. 생각은 행동을 낳는다. 이런 금언 류의 말은 아무렇게나 조합해도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생각' 대신 환경, 습관, 결심 등을 넣어도 공감하는 정도차는 있겠지만, 그럴듯한 말이 된다. 그러니 금언에 속지 말아야 한다. 금언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것은 재치나 재주에 가깝지, 그것이 지성과 지혜를 항상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금언의 가장 큰 유익은 사고를 추동한다는 점이다. 2. 오늘 아침, 샤워를 하고 거울 앞에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며, '못 생긴 남자, 허풍쟁이 남자보다 용기 없는 남자가 더 매력이 없다'는 친구의 말에 관하여 생각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넨 말일 텐데... 나는 그걸 두고 여러 차례, 몇 분 동안에 걸쳐 생각했다. ..

월화수목금금금

[짧은 소설] “자기야, 지수 잘 보고 있어야 돼. 그리고 세탁기에 빨래 꺼내서 좀 널어줘. 부탁해. 나 병원 갔다가 슈퍼 들렀다 올게.” 아이 엄마가 집을 나서며 말했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병원에 다녔는데 거의 다 나아서 마지막 약을 받으러 나간 참이었다. 아내는 ‘부탁’이라고 했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말투였다. 그런 뉘앙스가 아니더라도 남편은 요즘 집안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었다.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신경이 부쩍 날카로워졌다. 세살 짜리 아이를 둔 친구는 아기가 10개월쯤 되면 한창 힘들 때라고 했다. 그 말은 때때로 위로가 되었지만, 짜증이 날 땐 내뱉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는 재갈이 되기도 했다. 지난 주말이 그랬다. 평일에는 퇴근 후 몇 시간을 잘 견디면 되지만, 주말이면 하루 종일 ..

월화수일금토일

[짧은 소설] 두블루 대통령은 격무에 시달렸다. 월요일마다 어제의 휴식이 그리웠다. 어느 날 UN 회원국이 모인 자리에서 의견을 상정했다. “일주일마다 일요일을 하나 더 만듭시다. 월화수일금토일로 살아가는 새로운 달력을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각국 정상들의 머릿속은 잠시 멈췄는데, 제안이 어리석을 만큼 엉뚱해서인지, 멍해질 만큼 반가워서인지 헷갈렸다. “뜬금없을 뿐만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여섯 날 동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라는 성경 말씀도 모르십니까?”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삼은 나라의 대통령들이 한 마음으로 반박했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관습과 전통이 있다는 점은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쉬면 언제 일을 합니까? 세계 경제가 멈추고..

경비

[짧은 소설] 나는 분리수거 의식이 투철하다. 작은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지 헷갈리면 끝까지 검색을 한다. 음식을 담았던 1회용 용기는 세척해서 버리고, 박스에 붙은 스카치테이프도 별도로 분리한다. 사실 종이, 페트병, 유리, 고철류 등을 분류하는 일은 입주민 몫이지만, 분류를 충실히 따르는가의 여부는 입주민마다 다르다.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쓰레기들이 가득한 박스를 분류하지 않은 채로 던져만 놓는 사람도 있고,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부피가 큰 패트병을 공기도 빼지 않은 채 쌓아두고 간다. 어느 날 팻말 하나가 붙었다. “직접 분리수거 하고 가세요.” 우리 아파트 재활용쓰레기 처리장은 지하 4층에 있다. 어느 날, 나는 책이 배달되었던 택..

운명이다

운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후 자서전 제목이다. 서거 1주기를 맞아 고인이 남긴 저서,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 인터뷰, 구술 기록을 토대로 유시민 선생이 정리한 책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틋한 느낌이 드는 밤이지만, 그 분에 관한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 수업을 준비하다가 문득 그가 떠올랐고, 그 분의 뜨거운 삶이 그리워졌다. 잇달아 내 그리운 사람들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결국 자서전 제목을 읊조림으로 마음을 달랜다. 『운명이다』를 뒤적이다가 밑줄 그은 문장들을 만났다. 30쪽에 나오는 "나는 대통령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이하의 문장들을 읽는데, 눈물이 찔끔 났다. 오늘은 7월 31일이다. 한 달의 마지막 날 밤에 울고 싶지는 않아 다른 페이지를 넘겼다. 8월에 다시 자서전을 들..

깊은 지성의 3가지 특징

1.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산다. 책을 많이 읽으면 깊어지리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생각은 결과를 낳는다. 여러 가지 시시한 책들을 읽느라 훌륭한 책을 진득하게 파고들 시간이 없다. 시간을 들이지 못해 사유하는 힘을 키우지 못한다. 사유의 힘이 느슨하니 고전의 단단한 지성 세계로 침투해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이런저런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타협한다. 빈약한 지적 생활의 악순환이다. 반면 깊은 지성을 갖춘 사람들은 소수의 고전을 독파하면서 최고의 인식을 만난다. 2. 지성이 얄팍한 사람들은 자주 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같은 주제의 강연을 두 번 듣지 않고, 중요한 텍스트도 두 번 읽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자신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발터 벤야민의 을 읽..

오랜만의 성찰을 하고서

금토일 3일이 폭풍처럼 지나간 느낌이다. 드센 바람이 불어 나의 일상이 힘들었다는 뜻이 아닌데도 ‘폭풍’이라는 단어를 쓴 까닭은 홀로 있을 시간이 희소해졌을 때의 내 느낌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폭풍처럼 지나갔다”가 아니라 “폭풍처럼 지나간 느낌이다”고 썼다. 첫 문장을 쓰기 전 나는 ‘살다 보면 정말 폭풍처럼 지나갔다고 표현할 만한 힘든 일이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는 작년에 친구를 떠난 보낸 직후의 날들이 떠다니고 있었고. 지금은 월요일 늦은 오후다. 최근 며칠을 되돌아본다. 금요일은 점심식사부터 와우 10기와 함께 하기 시작하여 파주 여행을 함께 했다. 헤이리 예술마을을 둘러보고 출판단지 내 지혜의숲도서관까지, 우리는 다소 지적인 시간을 보냈다. 도서관 서가를 다니며 와우들과 이..

변신

[짧은 소설]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나는 한 마리의 개가 되어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머리맡에 있던 안경을 집으려는데 내 손이 안경을 잡지 못하고 툭툭 건드려 안경을 미끄러뜨릴 뿐이었다. 왜 이러지? 잠이 덜 깼나, 싶었는데 평소와 달랐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도 사위가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축축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무슨 냄새일까?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냄새였음을 눈치 채자, 이상했다. 나는 냄새에 민감한 편이 아니었다. 시큼한 반찬 냄새도 느껴졌다. 주방으로부터 전해지는 냄새의 성분 하나하나를 맡으며, 무슨 음식인지도 구분해냈다. 이때부터 나의 개 됨을 어렴풋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네 발로 일어섰다. 내 방인데도 시야가 낮..

우정

[짧은 소설] 여고생 진이, 경숙, 주희는 단짝이었다. 같은 반은 아니었지만 점심시간을 항상 함께 했다. 화장실도 같이 다녔고, 시험 때면 같이 밤을 새며 공부했다. 주말에도 만나 만화책을 보거나 가끔씩은 사소한 쇼핑도 함께 다녔다. 어느 날, 진이가 윤리 선생님의 말을 전했다. “어제 윤리가 그러더라. 고등학교 친구들이 평생 변함없는 우정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다고.” “야, 그건 대부분이 그렇다는 거고, 우리는 아니지.” “당연하지. 대학 가도, 결혼을 해도 우리는 변치 않을 거야.” 셋은 우정반지를 맞췄다. 반지를 깜빡한 날에는 두 사람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경숙과 주희는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다. 진이는 경기도로 대학을 다녔다. 새로운 문화와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자주..

하늘

[짧은 소설] 김씨는 이상적인 목표를 추구하며 평생을 열렬히 살았다. 이십 대부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아 날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최근에는 새롭게 착수한 프로젝트에 열정을 느꼈다. 겉보기엔 괜찮은 삶이었지만 내면의 힘겨움도 컸다. 일련의 불행이 그를 덮쳤던 것이다. 처음으로 승진에서 누락됐고, 단짝 친구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로젝트를 둘러싼 부하 직원과도 갈등도 생겼다. 친구를 잃은 슬픔과 삶의 무상함이 몇 달간 지속되었다. 김씨는 강인했지만, 삶의 고뇌는 김씨보다 막강했다. 삶의 힘겨움과 무상함이 교대로 김씨를 찾아왔다. 격랑의 벌판에서도 그는 정신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일을 지켜 나갔다. 때때로 놀라운 집중력으로 일에 몰두하기도 했다. 시련은 더욱 모질어졌다. 정신적 스승이었던 어머니마저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