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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의식하는 기술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이들은 크게 두 부류다. '시선'을 의식하는 이들과 '존재'를 의식하는 이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대개 자기중심성의 발로다. 타인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평판을 신경 쓴다는 점에서 그렇다. 누군가를 대하면서도 상대를 이해하기보다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비추어 보거나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끊임없이 신경쓰는 것이다. 이것은 나르시시즘이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싶다면 그들의 시선이 아닌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 존재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고 욕망을 헤아리고 불편을 덜어주려는 노력이다. 존재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알기 위해 질문한다.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은근한 질문을 던지는 것과 대조적이다. 타인의 존재를 의식하면 말과 행동..

일급 저술가의 한국현대사

유시민은 일급의 저술가다. 나는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유통업자로 손꼽는다. 유통업의 가치는 유통하는 상품의 가치가 어떠한지 그리고 효과적인 매개가 이루어졌는지에 달려있다. 글로 지식을 유통하는 경우, 다루는 지식의 가치와 전달해내는 필력이 되겠다. 유시민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힘 그리고 정연한 문체와 독자를 사로잡는 문장력을 지녔다.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특히 좋아한다. 서문에서부터 일급의 저술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드러난다. 그는 현대사 서술의 위험성을 몇 문장으로 단박에 전달한다. "우리는 이승만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p.9) 그리..

역사적 유토피아를 꿈꾸자!

누구나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경제적 여유, 낭만적 사랑, 친밀한 우정, 직업적 성취, 몸과 마음의 건강... 꿈의 목록은 희망과 체념을 동시에 안긴다. 바람과 가능성으로 가슴이 떨리는가 하면, 단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지혜라고 타협한다. 현실과의 괴리가 눈에 보이고 유토피아로의 여정은 힘겨워 보인다. 힘겨운 인생살이지만, 가끔씩 인생이 관대해질 때도 있다. 타협하고 체념했던 이들에게 동기부여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다. 인생은 여행, 만남 때로는 위기를 매개로 하여 우리를 꿈과 희망의 세계로 이끈다. 영어 공부 해야지, 일년에 한 번은 여행을 가야지, 종잣돈을 만들어야지, 책을 더 많이 읽어야지... 욕망하며 의지를 다진다. 시간은 포악하다. 모든 기억을 집어삼키고 만물을 약화시킨다. 시간 앞..

이번 한가위를 어찌할꼬

추석 연휴 전날인 오늘, 후배를 만났습니다. 만나서 악수를 하자마자, 그가 말했습니다. "오면서 형 블로그 글을 세 개 읽었는데, 최근 월요일 수업에 관한 글이 인상 깊었어요." "그래, 내가 요즘 그러고 산다." 자연스레 공부와 학습에 관한 대화가 풍성하게 이어졌습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편안하게 견해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후배의 배려 덕분에 3시간 30분 동안 주제를 달리해 가며 진솔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냈네요. 어젯밤에는 한국현대사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1960~70년대의 경제성장, 다시 말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주역이 누구인가를 고찰하는 내용이었죠. 다음 주면 4주차 수업이 모두 끝나는데, 지난 3주 동안 열정적으로 경청한 수강생이 있습니다. 그녀는 수업에서 소개한 영상과 텍스트..

Find something you love

쉬고 싶고 작업하고 싶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스타벅스에 왔다. 얼마간 쉬었고 와우들의 글을 읽었고 포스팅을 하나 했고 아메리카노마저 음미하고 나니 책을 읽고 싶어졌다. 아쉽게도 들고 온 책이 없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눈에 딱 들어온 문구 하나, Fine the roast You love most! 스타벅스 로스트 스펙트럼을 안내하는 전단지를 펼치니 이런 설명이 보인다. "각각의 커피는 절정의 향, 청량감, 무게감과 풍미를 느낄 수 있도록 로스팅 과정에서 각기 다른 시간과 온도를 필요로 합니다. 스타벅스 커피는 세 가지 로스트로 구분되며 원하는 풍미에 따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블론드 Blonde. 블론드 로스트 커피는 로스팅 시간이 짧고 바디감이 가벼우며 부드럽습니다. 미디엄 Medium. 미디엄 로..

머리 띵한 월요일의 풍경

월요일은 직장인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부담이 높아지는 날이다. 변화경영연구소 마음편지를 보내야 하고, 머리를 써야 하는 수업이 세 개나 있다. 오전에 마음편지를 쓰고 점심을 먹자마자, 수업을 들으러 가야 한다. 마음편지 작성 시간이 길어지거나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탓에 종종 점심을 간단식으로 해결하는 날도 있다. 오후부터 시작된 수업은 밤까지 이어진다. 13:30 발터 벤야민 세미나, 16:00 『계몽의 변증법』 강독회, 그리고 19:30분 초급 라틴어 수업.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지만, 세상에는 즐기기 힘든 것들도 있다. 하지만 즐기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능숙해지거나 깊어지고 나면, 즐기게 되는 경우도 많으리라. 월요일 수업들은 아직은 즐기지 못하는 대상들이다. 수업을 모두 듣고 난 후면, 나는 ..

강정호의 부상을 바라보며

관련 기사를 읽으니 목구멍이 뜨거워집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안타깝습니다. 강정호 선수의 부상 말입니다. 복귀까지 6~8개월이 걸린다는데, 부디 스프링 캠프때부터는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상을 입힌 상대 선수의 페이스북은 한국 팬들과 일부 미국 팬들의 테러를 당했더군요. 나 역시 속이 상합니다. 매일매일 그의 타석 주요 장면을 관람하는 것은 소소한 기쁨이었거든요. 올해 그 기쁨이 물건너 갔기 때문에 속상한 것은 아닙니다. 강정호가 만난 불운이 아픔과 상실을 야기할 터이기에 안타까운 거지요. 신인왕 경쟁도, 포스트 시리즈 출전도 모두 물건너 갔습니다. 제게도 상실의 아픔이 많아서인지 그의 불운이 예사로워 보이지 않습니다. 정작 그는 덤덤히 자신에게 부상을 입힌 선수를 두둔하더군요. "코클란은..

가을 예찬

낮에는 햇살이 따갑더니 해가 기울면서 금새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맑은 하늘, 큰 일교차, 강한 자외선, 서늘한 바람, 코스모스... 가을이 성큼 다가섰다. 걷기 좋은 계절이다. "진정한 걷기 애호가는 구경거리를 찾아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기분을 찾아서 여행한다. 다시 말해서 아침의 첫걸음을 동반하는 희망과 에스프리, 저녁의 휴식에서 맛보는 평화와 정신적 충만감을 찾아서 여행한다." 가을이야말로 스티븐슨의 이 말을 온 몸으로 경험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몸과 마음이 맞는 이와 '함께 걷기'는 매력적이고, 고즈넉한 마음으로 '홀로 걷기'는 매혹적이다. 가을은 날씨를 쫓아 벗들과 함께 하기에 좋고, 하늘을 벗삼아 홀로 거닐기에 좋다. 구름이 바람의 유혹을 따라 하늘을 배회한다. 나는 가을의 유혹에 못..

강연가로서의 진정성 단상

1.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으세요." 이렇게 말하는 강사와 작가들 또는 일부의 어른들에게 나는 묻고 싶다. "혹시 당신께서는 그 '진정한' 원함을 찾으셨는지요?" 이것은 그들에 대한 의구심이다. 나는 자기이해에 관해서만큼은 쉽게 말하는 이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진정 자기를 알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음을 경험하고 난 후의 신중함이지, 찾을 수 없다는 불가지론은 아님도 덧붙여 두고 싶다. 또한 저리 묻는 이들 중 10% 정도는 진정성과 자기이해를 힘써 추구하리라고도 예상한다. 2. 자기이해는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과정이고, 자신의 일면을 알아냄은 자기경영의 비범한 성과다. 3. What do you really want? 이 질문을 시궁창에 던져 버리자. ..

나는 지성의 탐정이다

고수는 자신을 찾아온 이를 성급하게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걸어온 고난의 여정이 눈에 밟혀 그의 청을 수용하기가 주저되고, 그 과정을 견뎌내는 것이 그에게 가치 있는지를 몰라 그를 살펴보게 되고, 그와 주고 받을 학습과 전수의 관계맺음이 두려워 용기와 포기 사이를 거닐게 된다. 반면 기술과 지혜가 없는 이들의 권함은 거침이 없고, 주저함이 없고, 두려움이 없다. 고단한 훈련의 여정을 겪은 바가 없고, 개인이 지닌 고유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대한 관계를 위해 제자를 진정으로 아껴본 바가 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기술과 깊은 지혜를 지닌 이들의 신중한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자기도 읽지 못하는 책을 권하고, 스스로 오른 적이 없는 산맥을 가리키고, 자신도 뛰어들어 본 적이 없는 강으로 선동하는 이..